격려와 단정 사이에서, 내가 배운 말의 태도에 대하여
사람들은 때로, 생각보다 쉽게 말을 얹는다. 시기나 질투를 숨기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을 겁먹게 만들거나,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괜히 시작도 하기 전에, 마음부터 접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모든 말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수록, 현실을 정확히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일도 필요하다. 직접 그 길을 걸어본 사람들이 건네는 조언에는 분명 새겨들을 만한 무게가 있다.
다만, 어떤 말이든 그 안에는 결국 태도가 남는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군가를 존중하며 건넨 말과 단정하며 던진 말은 전혀 다른 흔적을 남긴다. 조언이든, 반대 의견이든, 현실적인 충고든 그 말 안에 상대를 향한 존중이 담겨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위하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경험을 기준 삼아 상대를 단정 짓는 말이라면, 듣는 사람에게 남는 건 위로보다 위축일 때가 많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이미 늦었기 때문에 4년제 대학에 바로 가기는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 한국에서 야구를 했어도 미국 아이들의 피지컬을 따라가기 힘들 거라는 말, 심지어는 이 정도 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교적 노골적인 충고까지.
그 말들이 모두 악의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접 비슷한 길을 걸어본 사람들이었고, 나름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그것은 격려도, 조언도 아니었다. “그러니 네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는 결론만 남는 오만한 말들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비슷한 경험은 반복됐다. 나는 인디애나 대학교에 경영학 ‘지망생’으로 입학했다. 1년 동안 필수 과목을 일정 성적 이상으로 이수해야만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되는 전형이었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이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도전했고, 그만큼 중도에 포기하거나 불합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갓 입학한 한국인 신입생들에게 선배들은 종종 먼저 겁을 주곤 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잘해보라는 응원보다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선배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들은 격려나 진심 어린 조언이 아닌, 빠른 포기와 수긍을 강요했을까.
우리는 흔히 ‘말로만’이라는 표현을 쓴다. 실질적인 행위나 진심이 담기지 않은, 그저 단순한 표출만 남았을 때 쓰는 말이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말은 상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로 남거나, 상대방을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굳혀 버린다.
낯선 땅에서 각자의 이유로 도전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조언보다 존중이 담긴 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쉽지 않을 거야”보다 “그래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어”라는 말. 결과를 단정하기보다, 지금의 용기를 인정해 주는 말.
돌아보면,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순간들에는 늘 그런 말들이 있었다. 방향을 정확히 알려주는 말보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말들. 남들의 시선이 아닌,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 말들. 그런 말들은 곧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고, 무모한 꿈도 품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의 선택 앞에서 함부로 결론을 대신 내려주기보다, 그가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로만 전하는 응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말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그리고 어떤 말은, 한 사람의 다음 발걸음을 결정짓기도 한다.
말은 생각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래서 어떤 말은, 한 사람의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