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 초반, 외로움과 안전지대에 대한 기록
외국에 나오면 유독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다. 원래 교회를 다니지 않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한 번쯤은 교회 문을 두드리게 된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서, 한국인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교 근처 교회에 가보면, 신앙심이 깊어 보이지 않아도 매주 예배에 나오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예배는 죄로부터의 구원이라기보다,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처에 더 가까워 보였다.
외국에 나오면 외롭다. 혼자 온 유학생도, 가족과 함께 온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고들 하지만, ‘살아지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조금 다르다. 시간이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익숙해지는 것이지, 그 전까지는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늘 한국행 티켓을 쥐고 산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 역시 그랬다.
아버지는 우리가 미국 교회를 다니길 원하셨다. 한인 교회에만 머무르면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속도가 더뎌질 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맞이한 미국에서의 첫 일요일, 우리는 지인이 다니던 미국 교회를 찾았다.
새로 온 동양인 가족이 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영어가 서툰 나를 위해 한국어가 조금 되는 교포 친구가 붙어주기도 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솔직히 말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결국 학교에서 만난 한인 학부모님들을 통해 알게 된 한인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한인 교회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들과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말이 통하니 마음이 편했고, 마음이 편해지니 자연스럽게 그 안에 머물게 되었다. 친구들이 생겼고,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 친구들은 내가 학교에서 느끼던 답답함을 풀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 내가 늘 함께 다니던 한국인 친구는 두 명이었는데, 둘 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온 친구들이었다. 같은 수업을 들으면 바로 옆자리에 앉았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늘 그들을 따라다녔다. 눈치가 보이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말도 잘 못 하고 재미도 없는 외국인 옆에 앉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았을 테니까.
내 영어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한 건 10학년을 마치고 들었던 여름학기부터였다. 정규 수업을 따라가기 벅찼고, 한국에서 가져온 학점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해 여름학기로 학점을 채워야 했다.
첫 수업 날의 풍경은 아직도 선명하다. 동양인이라곤 나 하나뿐인 교실. 1년이 지났다고는 해도 자유로운 대화는 여전히 어려웠고, 수업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부족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업이 그룹 프로젝트였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네 명의 백인 학생들과 팀을 이뤄야 했는데, 모두 성적보다는 학점 이수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성적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되도 않는 영어로, 손에 땀을 쥔 채 역할을 나누고 일정을 정했다. 지금 떠올려도 조금은 민망한 장면이다. 아마 그들 눈에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작은 동양인이 꽤 우스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두 달 남짓을 버티고 나니, 실력보다 먼저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11학년이 시작되면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다가갔다. 영어는 서툴지만, 나도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보다 꽤 괜찮은 친구라고. 남은 고등학교 생활을 더 이상 벽에 기대 선 채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조금씩 한국 친구들에게만 의지하던 시간은 줄어들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외국 친구들에게 물어봤고, 점심도 함께 먹었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그들도, 내가 계속 다가가자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눈에 띄게 옅어졌다.
외국에서 산다는 건 여전히 외로운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말이 늘고, 웃으며 이야기할 사람이 생겨도 그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익숙한 얼굴을 찾고, 모국어가 들리는 공간으로 돌아간다. 나 역시 그랬고, 그 선택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시간들도 분명히 있었다.
다만 어느 순간, 알게 된다. 그 안락함이 나를 지켜주던 시점을 지나, 나를 멈춰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결국 조금 늦게, 아주 서툰 방식으로 그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왔다. 완벽한 영어를 갖춘 뒤도 아니었고, 외로움이 사라진 다음도 아니었다. 부족한 채로, 두렵고 불편한 상태 그대로 내 첫 발을 내디뎠다. 나에게 그 한 걸음은 여름학기 교실이었고, 되지 않는 영어로 먼저 말을 건 순간이었다.
당신에게 그 첫걸음이 어디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그 한 번의 선택이 생각보다 오래 당신을 앞으로 데려다줄 거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외국 생활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을 피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외로움을 끌어안은 채로 한 발 더 나아가는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