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가 회의실을 바꿀 때

답보다 먼저, 문제를 이해하게 만드는 질문의 힘

by 유현수

때는 작년 초, 한 보험회사의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관리 및 운영 모델을 디자인하고 실제로 도입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을 때였다. 당시 클라이언트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과 데이터 사일로 (Data Silos)를 큰 고민으로 안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회계와 재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프로젝트 매니저들과, 그들의 업무 방식에 불만이 쌓여있던 재무팀 사이의 갈등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새로운 운영 모델을 설계하고 도입하기 위해 투입된 우리 팀은, 해결해야 할 실무적인 문제들뿐 아니라 클라이언트 내부의 미묘한 사내 정치 속으로도 자연스럽게 휘말리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매니저들은 무언가를 하려 할 때마다 제동을 걸고,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로 이야기하는 재무팀을 골칫거리로 여겼다. 반면 재무팀은 회계나 재무적 이해 없이 많은 것을 요구하고 바꾸려는 프로젝트 매니저들을 '무지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들과 미팅을 진행하다 보면, 원래 논의하려던 주제에서 벗어나 서로의 불만을 쏟아내는 자리로 변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긴장감은 실무자들 사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전체 IT조직과 프로젝트 매니저들을 관할하는 CIO (Chief Information Officer)와 재무·회계팀을 총괄하는 CFO 사이에도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비난과 불만으로 회의실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순간, 프로젝트 팀의 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서로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그 불만들이 실제로 어떤 문제나 결과를 초래하고 있나요?"

"만약 여러분의 직책이 서로 바뀐다면,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어떤 부분들을 가장 먼저 고민해 볼 것 같나요?"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들은 회의실의 공기를 분명히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서로에 대한 불만은 많았지만, 실제로 팀이나 회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불편함'이나 개인 간의 업무 방식 차이에 가까웠고, 명확한 문제나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직책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질문은,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진짜 페인 포인트 (Pain Point)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나열하는 대신, 무엇이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질문이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원하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있고 전혀 엉뚱한 답을 듣게 될 수도 있다. 같은 질문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어떤 맥락에서 던지느냐에 따라 돌아오는 답의 깊이는 크게 달라진다.


그날 팀장이 던진 질문은,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혼돈을 '정돈된 혼돈'으로 바꾸어 놓았다. 질문 하나가 대화의 방향을, 나아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놓은 셈이었다.


직장에서 존경받는 리더나 실무자들을 떠올려 보면,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좋은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그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상황의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 질문은 종종 상대를 깊은 생각 속으로 이끌고, 어느새 회의실은 컨설턴트와 클라이언트의 자리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들의 자리로 바뀌곤 한다.


물론 질문만 잘한다고 좋은 리더나 실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듯, 좋은 해결책은 언제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정의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좋은 질문이 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다소 단순하거나 뻔한 질문을 하려 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


"바보 같은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질문을 잘 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경향이 강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이런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묻는 것이 맞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면 단순한 질문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물론 경력이 쌓이고 직위가 높아질수록,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늘어난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이나 학생들은 '바보 같은 질문'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다. 그런 질문들이 쌓여 기초가 되고, 질문하는 방법 자체를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을 많이 해본 사람이 결국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믿는다.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문제를 많이 풀수록 감각과 노하우가 쌓이듯, 질문을 반복할수록 더 정확하고 본질에 가까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우리가 생각보다 자주 놓치고 지나치는 문제의 핵심을 조용히 드러내 보인다.




우리는 종종 더 빠른 답, 더 그럴듯한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를 풀어주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기 전에, 지금 무엇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 그 질문 하나가 문제의 모양을 바꾸고, 대화의 방향을 바꾼다.


좋은 질문은 상대를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문제는 더 이상 '누군가의 책임'이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무엇을 모르는지를 인정하고, 그 지점에 정확한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질문 하나가 문제의 구조를 드러내고, 서로를 대립시키던 대화를 같은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그래서 좋은 질문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에 가깝다. 우리가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고 싶다면, 답을 서두르기보다 질문 앞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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