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어디까지 나를 담을 수 있을까

보여주기 위해 기록하는 시대에, 기억하기 위해 남기는 하루

by 유현수

최근 한 친구가 '브이로그'를 찍어보겠다고 선언했다. 직장생활이나 운동 과정을 찍어 인스타그램의 릴스나 유튜브 쇼츠로 올리는 'XXX 브이로그'는 이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쳐 지나간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어쩌면 저렇게까지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부업으로 시작해 인플루언서가 되었다는 이야기 역시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나도 해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이미 포화 상태가 되어버린 브이로그 시장에서 나 같은 사람이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떠올리다 보면 그 설렘은 금세 식어버린다.


브이로그라는 형식이,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콘텐츠라기보다 자신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를, 혹은 스스로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을 영상으로 남기는 일. 디지털 전환을 지나 수많은 인공지능 서비스가 일상이 된 지금, 수기로 쓰던 일기장은 노션이나 블로그로 옮겨갔고, 그마저도 이제는 영상이라는 형태로 SNS 위에 올라간다. 무엇이든 공유되는 공유경제의 시대에, 이제는 자신의 하루마저 기록하고 공유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나와 동생의 일상을 캠코더로 담았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나의 말과 행동이 캠코더 안에 고스란히 담겨 내 눈앞에 펼쳐졌다. 조금은 부끄럽고 잔망스러운 나의 어릴 적 모습은 수백 개의 영상으로, 기록으로 남아 우리 집 창고 어딘가에 보관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의 일상은 디지털카메라로 옮겨갔다. 그 안에 갇힌 나는 정적이고 고요하다. 그 사진들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만을 짐작하게 해줄 뿐, 그 순간을 완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 시간이 더 흘러 나의 일상은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에 갇힌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나를 정직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발전으로 세상의 많은 기록들이 서버 위를 떠다니는 시대다. 나만 간직하고 싶던 온전한 나의 기록은, 책상 위의 포스트잇이나 쓰다만 일기장을 제외하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기록을 자발적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지금, 오히려 나에게만 남겨지는 기록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만의, 나에게만 드러내던 기록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프랑켄슈타인 박사라면 어떤 괴물을 만들고 싶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나 대신 집안일을 해주고, 퇴근하면 저녁까지 차려주는 생명체가 생긴다면 삶이 얼마나 편해질까,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런데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존재는 나를 대신해 일을 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기억해주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순간들을 모아 하루를 완성하고, 그렇게 쌓인 하루하루로 나의 일상을 기록해주는 존재. 나의 순간을 더 나답고 온전하게 기억해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어릴 적 캠코더 영상을 돌려보던 것처럼 그 순간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연결되어 돌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도 나는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우리가 먼 옛날 빛나던 순간에 감탄하는 사이, 어둠 속 깊은 곳에 자리하던 인생의 한 장면은 그 자취를 감춘다. 내가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하루의 순간들까지도 하나의 '브이로그'로 기록해주는 존재가 내 곁에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브이로그가 아닐까. 보여주기 위해 편집된 영상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남겨진 기록. 그 별것 아닌 순간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해주는 기록 말이다.


우리는 종종 더 잘 보이는 기록을 고민하지만, 어쩌면 더 필요한 것은 더 솔직한 기록인지도 모른다. 나를 설득하기 위해 꾸민 하루가 아니라, 지나간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한 기록. 그런 기록이 가능해진다면, 그보다 더 정직한 브이로그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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