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게 나쁜 사람들

빌런의 서사를 통해 마주하는 숨겨진 나의 얼굴

by 유현수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다다다』에는 '복잡하게 나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냥 나쁜 사람도 아니고,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니. 표현은 묘하지만,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런 인물들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한다. 처음에는 분명한 빌런으로 등장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과거에는 착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일련의 불운한 사건을 겪으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는 서사가 덧붙는다. 어쩌면 너무 뻔하다고 느껴질 법한 이 레퍼토리는,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때로는 이해를 넘어 동정심까지 불러일으킨다.


영화 『존 윅』의 주인공 존 윅 역시 그렇다. 그는 영화 내내 살인을 저지른다. 살인청부업계 최고의 킬러로서 수많은 이들이 그를 죽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오히려 목숨을 잃는다.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 그의 행동은 분명한 범죄다. 그런 그가 은퇴를 결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순간, 범죄 조직 두목의 아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한 채 심기를 건드린다. 세상을 먼저 떠난 아내가 남긴 강아지를 죽이고, 그가 아끼던 차를 훔쳐 달아난 것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존 윅은 다시 칼과 총을 집어든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총성 속에서 관객들은 환호한다. 우리는 그의 분노에 공감하고, 그의 복수를 응원한다. 어느새 그는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아내와 그녀가 남긴 마지막 흔적까지 잃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존재로 인식된다. 자유를 갈망하는 그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까지 한다.


좋은 이야기에는 완벽한 빌런이 없다고들 말한다. 대신 어딘가 복잡한 빌런이 존재한다. 분명 악역이지만, 이상하게도 이해가 되는 인물. 이런 인물들은 선과 악이 명확히 구분된 이분법적인 이야기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모든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공식은 아닐지라도, 소설과 영화를 떠올려보면 이런 인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톰과 제리』, 조커, 『해리 포터』의 스네이프까지. 악역이지만 어딘가 짠한 인물들이다. 이들의 서사는 관객과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결국 우리는 그들을 더 이상 단순한 빌런으로만 보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유독 이런 빌런들에게 애정을 느낄까. 그들의 서사가 아무리 감동적이라 해도, 그들이 저지른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을 마주한다면, 우리는 공감보다는 혐오를, 이해보다는 회피를 선택하지 않는가. 스크린 속 인물에게는 허용되는 감정이, 현실에서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김영하 작가는 "내가 모르는 내 숨겨진 모습과 만나기 위해 책장을 펼친다"고 말했다.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불안, 마땅한 권리를 요구하고 싶어 하는 마음, 스스로를 속이며 감춰온 감정들. 우리는 존 윅의 직접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의 복잡한 서사를 통해 그런 내면과 마주한다. 빌런을 바라보며 사실은 복잡하게 얽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불안정하고 비이성적인 인간의 모습은 소설과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각기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인물들 속에서 묘하게 닮은 자신을 발견한다. 때로는 너무 직접적이고 솔직한 내면과 마주하게 되어 적잖이 당황하기도 한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 레이 달리오는, 자신을 투명하게 마주하는 것이 성장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책장을 펼치는 우리는, '복잡하게 나쁜 인물들'을 통해 스스로를 정직하게 들여다볼 기회를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진심으로 열광했던 것은, 그들의 화려한 액션이나 극적인 서사가 아니다. 그들을 통해 내가 외면해 왔던 감정과 생각을 마주할 수 있었던 순간, 그 불편하지만 솔직한 대면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소설 속 빌런들은 그렇게 우리의 어두운 단면을 대신 살아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조금은 덜 단순한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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