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축하하는 대신 관계를 확인하는 밤
며칠 전, 생일을 맞아 주변 사람들과 작은 파티를 열었다. 평소 자주 보던 친구들부터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매년 생일이면 이렇게 사람들을 부르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누군가에게 축하받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함께 웃고, 서로의 근황을 듣고, 잠깐이라도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다.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었고,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도 즐거웠다. 낯선 대화 속에서 조금씩 공통점을 발견해 가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 과정이 힘들다거나 부담스럽다고 느낀 적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고 나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이상 새벽 네 시까지 놀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게 되었다. 이유 없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반복되는 출근과 쌓여가는 피로는 우리의 밤을 조용히 잘라냈고, 그만큼 새로운 인연이 들어올 자리도 함께 줄어들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한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이상한 삶을 살게 되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자신과 같은 존재를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다.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세상에서, 단 한 명이라도 자신과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덜 외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협박이었지만, 동시에 간절한 부탁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마음이 완전히 낯설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나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 같은 감정을 느껴본 사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 우리는 계속해서 그런 존재를 향해 걸어간다.
새로운 환경에는 언제나 새로운 관계가 따라온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도시, 새로운 일상. 장소가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적응하는 속도는 모두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사람을 만난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오고 나서야 인간관계의 의미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에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내 인간관계의 중심이 되었다.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를 찾으려면 도서관에 가면 됐다. 그만큼 일상이 겹쳐 있었고, 물리적 거리도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연락이 되지 않는 친구를 찾아 나서기에는 시카고는 너무 크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예전처럼 금방 깊어지지도 않는다. 타인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관계를 쌓아가는 속도도 느려진다. 아니, 어쩌면 사람을 만나는 기회 자체가 줄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직장인 동호회나 각종 모임이 많은 이유를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사람을 만나려면 의도적으로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자리는 쉽게 생기지 않으니 취미나 관심사를 중심으로 사람을 모은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교회에서 사람을 만나고, 러닝이 취미인 사람은 러닝크루에서 사람을 만난다.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현실적인 방식의 연결이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학교 후배와 통화를 했다. SNS로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그런데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어제까지 계속 이야기해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인간관계는 참 묘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도 어제 헤어진 것처럼 편안할 때가 있는가 하면, 자주 보던 사람과도 어느 순간 낯설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이렇게 큰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살아가며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관계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당연하게 여기지 못한다.
사회초년생으로서의 해외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낯선 환경에서 방향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이 과정을 함께 지켜봐 주고 응원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변화를 알아보고, 서로의 성장을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들. 경영학과에서 귀가 닳도록 들었던 ‘네트워킹’이라는 말은 결국 이런 존재들의 가치를 설명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매년 생일마다 사람들을 부른다.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서로의 삶이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시간이 우리를 각자의 방향으로 데려가더라도, 어떤 관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살다 보면 많은 것이 변하지만,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