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나를 비우는 시간 part1
✣ 박연습의 단련일기
아직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한 채 버려지는 물건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유난히 감정이입을 한다. 얼핏 볼품없고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어딘가 쓸모가 보이면 잘 외면하지 못한다. 길에서 물건을 주워올 때도 많다. 몇 년 전에 친구와 작업실을 시작할 때도 부족한 것을 길에서 주워 온 물건으로 해결을 했다. (작업실이 망원동이라 그런지 쓸만한 물건이 많았다)
그렇다고 '맥시멀리스트'는 아니고 취향은 '미니멀'한 편에 가깝다. 채우는 것 보다 비우는 것을 좋아하고,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것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1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원룸에서 여백을 누리기 위해 나름의 효율을 고민하며 부족한 공간을 관리하면서 산다. 하지만 왜인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사사롭고 작은 물건은 비효율적으로 끌어안고 살고 있기도 하다.
오늘은 그 물건 중에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단어장 같은 것을 묶는 데 사용하던 '바인딩 고리'다. 학창 시절에 사용하고 남은 10개 정도 되는 고리를 20년 가까이 작은 비닐에 꼼꼼히 담아 보관하고 있다가 며칠 전에 거의 다 사용을 했다. 드로잉이나 스케치를 할 때 이면지에 구멍을 뚫어서 만든 연습장을 사용하는데 이면지를 한 묶음씩 묶을 때 이 고리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바인딩용 실로 이면지를 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오랜 시간 서랍 속에 밀봉된 채 나를 따라다닌 이 고리가 생각났다. 역할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을까, 연습장이 한 권씩 쌓이면서 며칠 전 마지막 바인딩 고리와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별은 아니고 이사라고 해야겠지만.
주인을 찾지 못한 소소한 물건은
'당근마켓'에 '무료 나눔'으로 올려두고 잊고 있으면 언젠가는 연락이 온다. 나는 '구형 프린터의 검정 잉크, 여분의 문구, 작은 기념품' 등 내가 사용할 일은 없지만,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그렇게 정리를 했다. 필요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소한 것이어서 큰 기대는 없었는데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어도 모두 제 주인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