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형 인간'인데 기록을 안 해서 쓰기 시작하는 글들
브런치에 에세이를 연재해보겠다고 덜컥 작가 신청을 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바쁜 일들을 처리하고 있던 중에. 그리고 하루 이틀 정도 후에 승인 메일이 오고 나서는 하던 일을 제쳐두고, 뭐라도 한자 적고 싶은 유혹에 몸부림을 쳤다. (옆에 있는 사람은 몰랐겠지만 진정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브런치 때문에 발등에 불 떨어진 일을 예상보다 1.3배의 시간이 걸려서야 끝내고 나서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도 끝나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 5개월 만에 찾아온 '쫓기지 않는 시간'의 달콤함에 브런치 따위는 까맣게 잊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메일함이 꽉 찼다는 표시를 보고,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브런치 작가 승인 메일을 다시 발견하고는, 나는 며칠 동안 고민에 빠졌다. 내가 쓴다고 했던 이야기가 낯부끄럽고 거창하게도 '단순하고 소소한 매일의 일상에 만족하는 여자가 대단한 신념과 사고를 가진 남자와 사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남편과 나는 매우 다른 사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이것저것 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중이고, 남편은 오전 8시부터 산악바이크를 타러 나갔다가 돌아와선 좀 전에 또 바이크를 타러 나갔다. 라이프 스타일이 완전 다른 우리지만, 서로의 개인 생활에 전혀 터치가 없고 때로는 취미를 공유하기도 한다. 또 이 에세이의 핵심 키워드인 '단순, 소소' vs '신념, 사고' 역시도 서로를 정의하는 하나의 단어들이다.
다만 걱정인 것은, 그 얘기 중에 우리의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웹상에 털어놓아도 될까라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유명인들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삶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연애시절, 신혼 초 열심히 기록해둔 네이버 블로그는 2014년에 멈춰있고, 의미 없는 방문자가 하루 평균 1~2명, 나마저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처럼 이 글도 브런치의 좋은 글들 사이를 유영하다가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 되기 십상일 테지. 그래도 뭔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최대한 우리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노출해도 될 것들만 적자' 싶다가도 또다시 '누가 보냐, 원래 의도가 날 것들을 기록하겠다는 거 아니었나'라는 원래 취지를 떠올리고는 '솔직히 쓰고 싶은 걸 쓰자' 싶기도 하다. 한 마디로 갈팡질팡 중이다.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약간 고민이 들지만.... 지금 이 순간, 그냥 결정한다.
'그냥 적자'
결혼생활 8년 차, 시간이 더 흘러 우리의 기록을 찾아볼 때 (요즘은 사진도 안 찍는다) 그저 막연한 추억으로만 남는 건 속상한 일이다. 그리고 예전의 나보다 40대의 내가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고, '쓰는 것'에 대한 열망이 넘치고 있다면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기 위해 애쓰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도 기록하는 것이 예의인 것 같다.
원래 기록가였던 30대 초중반의 나를 떠올리며 오늘부터 소소하지만, 때론 진지한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적어봐야겠다. 누군가 읽어준다면 조용히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아무도 읽지 않는 거 같으면 실망하고, 누군가 읽고 있다고 하면 흥분해서 방향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그냥 나 스스로 하는 다짐이 이 브런치의 존재 이유이길 바란다.
이 브런치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쓰는 일기장이 되기를.
40대의 나를 그리워할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노력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