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이 책의 장르를 물어본다면, "과학 분야의 책일 거예요."라고 대답하겠지만 덧붙여 "그렇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라고 뒷말을 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인가 하다가 갑자기 유턴을 하는 구성은, 과연, 스릴러를 방불케 한다. 굉장히 신선해서 읽는 내내 페이지 넘기는 게 아까운 책이었다. 아니, 이 신선한 책은 뭐람?
시작은 어떤 소년이다. 식물에 관심을 보이는 소년은, 훗날 과학계 거장에게 힘을 받는다. 물고기를 발견하고 처음 학명을 부여하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한다. 자녀와 아내의 죽음에도 그의 학문적인 탐구 의지는 굴복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 작가는 그의 어린 시절과 삶을 좇으며 그를 탐구했다. 특별히 그에게 어떤 힘이 있길래 다시 일어설 수 있는가를 알고 싶어했다. 미개척지같은 물 속 생명체를 발견하고 이름을 부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벼락으로 알코올에 담아놓았던 물고기들이 이름표를 잃고 깨지고 부서졌을 때조차 좌절보다는 다시 이름표를 꿰매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내 수전의 죽음에서도 삶의 질서는 흐트러지지 않았던 그였다. 그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곱슬머리 남자애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다. 훗날 데이비드 조던 스타는 '낙천성의 방패'가 그를 일어서게 했던 힘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데이비드 조던 스타는 낙천성이나 긍정성을 가진 인물이었을까. 그가 정말 그녀에게 해답을 줄 수 있는 인물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것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내 주의를 끌었던 이유다.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가 우연히 어떤 비법을, 무정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어떤 처방을 발견한 게 아닐까 궁금했다. 게다가 그는 과학자였으므로, 나는 무엇이든 끈질기게 지속하는 일에 대한 그의 정당화가 내 아버지가 심어준 세계관에도 들어맞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가능성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무언가 핵심적인 비결을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 말이다. 65~66p.
벼락 사고와 수전의 죽음 두 가지 일에서 재빨리 회복한 것에 대해 데이비드는 살면서 언제부턴가 "낙천성의 방패"를 갖추게 된 것 같다는 말로 설명했다. 80p.
그래서였다. 나는 절박했다. 단순하게 말하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120p.
제목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버젓이 존재하며 바다와 강에 굽이쳐 헤엄치는 물고기를 단번에 없애버린다. 독자는 잠시 생각을 한다. 왜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거야? 환경에 대한 경각심인가? 인간들의 탐욕으로 빚어낸 것들이 결국 자연을 죽인다는 그런 류인가?
책을 다 읽고 나면 물고기가 왜 존재하지 않는지 답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작가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더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라는 것을 말한다. 직관적은 '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이라는 뜻이다. 물고기의 외면만 보면서 놓치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분기학자들의 관점을 보여주면서, 물고기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건 생애 전반의 믿음을 뒤흔들어놓을 만큼이니까. 다만, 편의상 분류한 것들이 진리는 아닐 수 있음과 문제 제기 측면에서 신선했다.
즉, 소와 연어, 폐어 세 개의 동물을 보여주면서 다른 하나를 골라내 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사고 체계는 물에 있는 동물과 육지 동물로 분류를 하게 되고, 소를 다른 동물로 빼게 된다. 연어와 폐어는 물에 사는 물고기들이니까. 그러나 폐어의 심장이 소의 심장 구조와 더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를 물에 집어 넣으면 물고기인가? 이런 관점으로 물고기의 분류 체계를 뒤흔드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의식은 보통 세 가지 동물의 그림을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소. 연어. 폐어. "여기서 나머지 둘과 다른 하나는 무엇일까요?" (중략)
분기학자들은 공통의 진화적 참신함을 찾는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을 상기시킨다. 한순간이라도 비늘이라는 외피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더 많은 걸 밝혀주는 다른 유사점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할 거라고. 예를 들어 폐어와 소는 둘 다 호흡을 하게 해주는 폐와 유사한 기관이 있지만 연어에게는 없다. 폐어와 소는 둘 다 후두개(기관을 덮는 작은 덮개 모양의 피부)가 있다. 연어는? 유감스럽게도 후두개가 없다. 그리고 폐어의 심장은 연어의 심장보다는 소의 심장과 구조가 더 비슷하다. 이런 설명들이 계속 이어지며, 마침내 폐어는 연어보다는 소에 가깝다는 결론으로 학생들을 이끌어 간다.
그들이 생명의 나무를 베는 톱질 속도를 본격적으로 높이는 건 이때부터다. 윤에 따르면, 분기학자들은 사람들이 일단 이 사실-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생긴 생물들 중 다수가 자기들끼리보다는 포유류와 더 가까운 관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상한 진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게 보이기 시작할 거라고 했다. "어류"가 견고한 진화적 범주라는 말은 실제로 완전히 헛소리라는 진실 말이다. 윤의 설명을 빌리면, 그것은 마치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이 한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거나 "시끄러운 모든 포유동물은 한 범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뭐, 원한다면 그런 범주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무의미하다. 진화적 관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하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 236~242p. 어디쯤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퇴화, 열등한 존재의 지칭. 작가의 아버지가 말한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말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우생학은 작가에게 민들레 법칙을 이야기 하게 한다. 모든 존재들은 민들레라는 것.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관계성 속에서 중요성이 계속적으로 입증되는 존재. 강등, 퇴화, 하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이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중략)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 226~228p.
많은 생각과 과학이 혼재되어 있는 책이다. 그래서 확실하게 정리하긴 어려운데,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작가의 자기 탐구이자 과학 탐구의 기록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한 개인이 삶의 혼돈의 시기를 거쳐가는 모습과 그녀가 붙잡고 있던 중요한 개념이 흐트러지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래서 숨쉬는 책으로 다가왔다.
곱슬머리 남자애를 잃고 방황하는 작가에게, 확실히 존재한다고 여겼던 분류 개념이 깨어지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현타를 느낌과 동시에 오히려 민들레를 발견하는 과정. 작가는 뚜렷해진다. 마치 성장 에세이처럼, 혼돈에서 방향을 찾는 작가에게 감정 이입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굉장히 매혹적이고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