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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순하다 Sep 22. 2024

소비를 줄이게 된 이유

맥시멀리스트가 꿈꾸는 '느슨한' 미니멀라이프

 어느 날, 알고리즘에 의해 우연히 보게 된 미니멀라이프 영상이 있었다. 하나를 보니 두 개의 영상이 나오고, 두 개를 보니 네 개의 영상이 나오는 알고리즘의 마법에 이끌려 수십 개의 영상을 봤다. "에이, 나는 저렇게는 못 하지. 저 사람들이니까 가능한 거야"라며 마음이 가던 모든 영상을 애써 흐린 눈으로 넘겼다. 그리고 옷방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쌓인 옷과 가방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주방을 보니, 빈틈마다 야무지게 꽂혀 있는 락앤락 용기들과 텀블러들이 얄미워 보였다. 책상 위엔 마시고 남은 일회용 컵들과 먼지가 뽀얗게 쌓인 각종 피규어들, 중요한 메모는 하나도 없는 예쁜 메모지와 펜 여러 자루, 그리고 베스트셀러라서 사두고는 보지 않은 책들까지. 안 그래도 작은 책상 위에 빼곡하게 들어차 나를 비웃는 듯했다.


 나는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웠다. 특히 옷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어릴 때부터 한정된 용돈으로 다양한 스타일링을 하고 싶어 저렴한 옷을 여러 벌 사 모았다. 세일이라도 하면 내 스타일에 맞든 안 맞든, 사이즈 상관없이 언젠가는 입겠지 싶어 일단 사놓고 봤다. 물건도 1+1 이벤트는 참을 수 없었고, 무료배송을 받기 위해 필요 없는 물건까지 함께 구매했으며, 사은품이라도 준다 하면 공짜라는 생각에 오직 사은품을 위한 쇼핑을 하기도 했다. 대량 구매하면 더 싸다는 건 지나가던 고양이도 아는 부분 아닌가? '다다익선'은 나의 모토였고 진리였으며 행복이었다.


 돌이켜보면, 저렴한 옷을 사서 한두 번 입고 저렴한 옷값조차 못해 버린 옷들이 수두룩했다. 내 스타일과 사이즈에 맞지 않아 제품 택조차 떼지 않은 새 옷들이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1+1은 더 이상 진정한 1+1이 아닌 마케팅이라는 걸 알았고, 무료배송 때문에 주문한 물건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 창고에 처박혀 있을 것이며, 사은품은 먼지만 쌓이다가 무료로 나누거나 버렸다. 대량 구매한 물건들은 쓰다 쓰다 질려서, 새로운 것을 쓰고 싶어 눈치를 보며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의 진리이자 행복은 물건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소비 행위 자체에서 온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왜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사놓고 행복해했을까?


 일단 영상에서 봤던 대로 비워내기를 실천해 보았다. 물건마다 사연이 있고, 쓸모가 있을 것 같고, 돈 주고 사서 아깝고, 이렇게 버리지 못할 이유들이 자꾸만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럼에도 조금씩, 정말 조금씩 비워내기 시작했다. 눈에 거슬리는 것들부터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 이렇게 해나가기까지 너무 고민도 많고 힘들었는데 비우는 게 이렇게 힘들다면, 애초에 들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물건을 구매하고 싶을 땐 그 물건의 최후를 생각하며 물건의 형태가 오랫동안 유지될수록, 크기가 커질수록, 처분하기 어려울수록 구매 결정을 더 길고 깊게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영상에서처럼 하얗고 큰 방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모양새는 아니다. 여전히 내 주변엔 물건이 많고, 때때로 거절하지 못한 사은품이나 선물을 받기도 하며, 세일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1개입 보단 2개입이 더 저렴한 (정말 기적 같은) 가격을 보면 원치 않는 추가 구매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도 이런 빈도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가지고 있는 물건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되도록 가성비보다는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오랜 시간 공들여 찾아내며 소비에 대해 한 번쯤 더 생각하다 보니 나의 취향은 더욱 선명해지고 더불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단정한 정리 습관과 절약은 이제 또 다른 진리이자 행복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분들이 본다면, 나는 여전히 많은 소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지나치게 엄격한 미니멀리즘이 아닌,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느슨한' 미니멀리즘이다. 불필요한 소비는 줄이되, 소중한 물건은 유지하며 나만의 균형점을 찾는 지속 가능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보려 한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때,

보통 사람의 단순한 취향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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