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구

by 단정


늑구




수백 명의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날

한 마리의 토종늑대가 열흘 만에 생포됐다


늑구는 이제 만 한 살, 예전 나이는 세 살

사 미터 담벼락도 넘은 녀석이 돌아온 건

오매불망 기다리던 여인네 탓도 아니고

닭 두 마리의 포식감을 위해서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함도 아니고

세상살이가 험해서 동물원을 택했을 수도

미처 하지 못한 일이나 말이 남았을 수도


수백 명의 아이들을 기린 다음날 아침

한 편의 시를 쓰고자 해 다시 책상에 앉아


오십에 읽었다는 <주역>이 혹 사주였다면

어쩌면 그날도 팔자도 이미 정해졌다는 건

늑구한테도 생년 생월 생일 생시가 있겠고

이제 만 한 살 나이도 이미 정한 운명이라면

도대체 왜 땅굴까지 파면서 도망쳤을까를

돌아오지 못함과 돌아옴이 다 운명이라면

여태 돌아오지 못한 이는 어떤 운명인가를


한 편의 시를 쓰고자 하는 일도 역시

내 사주팔자의 운명에 따르면 그만인가를




# 단정,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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