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장미

by 단정


장마와 장미

장미꽃들이 다 시들기도 전에 장마가 찾아옵니다

밤새 내린 비를 맞고 장미들은 고개를 숙여 인내하고, 제철을 훌쩍 비낀 인연들도 그렇게 함께 서 있습니다

고개 숙인 인연들을 향해 아침 인사를 건네보아도 저마다 대답은 없고, 인사도 없이 떠난 인연들처럼 영롱하고도 냉정하기만 합니다

장마는 서사가 있으므로, 서사를 향한 긴 침묵을 필요로 하므로, 하여 서사 없인 장마도 찾아오지 않음을 알고 있으므로, 들뜬 설렘도 없이 모두를 도로 침묵하게 만듭니다

이상기온 탓에 시들지도 못한 장미가 이상기온 탓에 먼저 찾아온 장마를 달갑게 여길 리도 만무하기에, 터벅터벅 제자리를 찾아 도로 떠나는 발걸음은 이내 가볍기만 합니다

네 죄가 아니므로

내 죄이므로

내 성찰의 시간이 그만큼 부족했었으므로

# 단정,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