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차이를 견디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
Konstantinos Males - Coastal Buildings
아침 출근길.
따뜻한 커피의 수증기와 음악이 좁은 공간을
채워주는 시간.
흘러나오는 음악 사이로
이런 일본어 가사가 흘러나왔다.
"몇 년을 만나든 우리는 안녕이라는 인사로 헤어진다"
일본어를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
정확한 해석인지,
아니면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 문장을 가만히 입안에서 하루 종일 굴려보니
이상하게도 인사는 언제나 작별보다 시간을 앞서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어린 시절 엄마, 아빠 다음으로
배운 말 중 하나인 "안녕".
그저 인사할 때 사용하는 추가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시간 속에서 만남과 이별을 지나치며 나눴던 이 두 글자로 만들어진 문장이
안부를 전하기도, 안전을 기약하기도, 평안을 떠안으며
너무 많은 미래를 무책임하게 봉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을 만나든 20년을 만나든
시간의 양은 결국 의미의 밀도를 이기지 못한다.
영악한 나는 헤어짐을 너무 잘 배워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만남 앞에서 사용하는 인사에는
괜히 웃음을 더 얹고
목소리를 밝게 하며 "안녕"이라는 말에
필요 이상의 온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정함과 책임은 같은 속도로 걷지 않는다.
다정함은 순간을 사랑하고 책임은 시간을 견디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래서 다정하지만 무책임하지 않는 인사를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포장된 인사만 해버렸을 때 남기는 책임 없는 약속은 잔인해 보이고 반대로 이 어려운 일을 침묵으로 해결되길 바라면 예의가 아닌 버려진 느낌을 주게 된다.
그렇다면 무책하지 않는 "안녕"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다정하지만 무책임하지 않는 인사를 건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에게 다정하면서 책임감 있는 인사란
상대를 아프게 하지 않거나 기쁘게 만드는 수단으로써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다정하면서도 책임감 있게 하는 것이다.
감당해야 할 것은 감당하되
다음 장면을 약속하지 않는 것.
인사와 함께 상대의 감정을 대신 정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안녕" 뒤에 침묵이 찾아오는 시간을
회피하지 않고 감당하는 것.
조금 덜 예쁘게 인사를 건네고
조금은 더 무겁게 마무리를 짓는 것.
어쩌면 그것이 무책임하지 않는 안녕의 형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