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책 도전기

보기와는 다른 책 만들기

by 김용희

가제본을 제대로 실패한 후 나는 종이책을 만들 때 무엇을 하면 안 되는 지를 확실히 배웠다. 그리고 일단 글을 짜임새 있게 완성하고, 그다음에 책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제본 실패 덕분에 B 플랫폼에 가입하게 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원고가 모인 지금 다시 종이책 인쇄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출판사 경험도 없고, 책을 만든 적도 없고,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책을 찍어낸다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다 모르니까 일단 원고를 가지고, 인디자인에 옮겨서 집에 있는 프린터기로 출력해 보기로 했는데, 막막했던 건 어떤 글씨체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단 거였다.


'나 원래 한글에서는 ㅎㅊㄹ바탕체 좋아하는 데, 책을 ㅎㅊㄹ 바탕으로 인쇄하는 건 촌스러운 거야?'


아무도 답을 해 주진 않았지만, 느낌상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은 명조체가 유행이라는 말을 어디서 듣고, 무작정 ㄴ ㄴ 사이트에서 모든 명조체를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명조체가 유행이라는 것과 달리, 검색할 수 있는 명조체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뭐 아무것도 모르니까, 일단 다 프린트해 보자.'


나는 책을 4~5페이지 완성하고, 한마음 명조 B regular 9.5, 나눔 명조 Bold 9.5, 제주 명조 10, 부크크 명조 9.5, 예스명조 9.5, 바른 바탕 10, 수성바탕체 9.5 등등을 모두 프린트해 보았다. 프린터기가 흔들리면서 인쇄돼서 그런 건지 원래 글씨체가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모든 글씨가 좀 울렁울렁하게 보였다.


'인쇄기에서도 이럴 수 있잖아. 최대한 울렁울렁함이 없는 진한 글씨체를 선택하는 게 안전할 것 같은데?'


지난번 가제본에서는 ㅁㄹ ㅂㄹ 10을 선택했었는데, 글자가 또렷하고 울렁거림은 없었지만, 내가 자간 같은 걸 잘 선택하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책이 좀 정신없어 보인다고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글씨체를 도전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글씨체를 찾았다. 부크크 명조 Bold 9.5와 수성바탕체 10에 자간 103%를 한 게 제일 예뻤고, 수성바탕체 9.5에 104%도 괜찮아 보였다.


그러다 문득 크고 작고, 여백이 있고 없고 하는 책의 판형에 따라 글씨도 책의 이미지도 모두 다 달라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런 변수가 또 있었네.'


밤도 늦었고, 여러모로 막막해진 나는 다음 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에 궁금해진 게 판형인 데, 어떻게 하면 예쁜 책이 나오는 건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냥 독자로 책을 읽을 때는 내가 어떤 기준으로 책을 샀었는지 잘 모르겠고, 그냥 딱 보고 느낌이 좋으면 구매했는데, 만들려고 하다 보니 그냥 딱 보고 느낌이 좋은 게 무슨 느낌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집에 있는 책을 모두 꺼내보고 자로 재보고, 하다가 내가 쓰는 에세이 장르 글에서는 두 가지 판형이 예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1번) 폭 126mm 높이 188mm

2번) 폭 110mm 높이 178mm


먼저 1번 판형을 설정하고, 글씨는 부크크 명조 Bold 9.5로 설정해서, 책을 빠르게 써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본문에 Bold 체를 쓰는 건 독자들에게 자칫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너무 어조가 강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서점에 가서 여러 책을 살펴보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제주에는 서점이 많은 데, 나는 원래 ㄴㅁㅅㅈ 단골이다. 그런데 이날은 한라수목원에서 언니들을 만나기로 해서 주차장에 서 있는데, 이상하게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모두 길이 엇갈렸다. 혼자 덩그러니 한라수목원 주차장에 있던 나는 혹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 ㅂㅇㅂㅅ에 가보라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하고, 모두와 점심시간에 맞춰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 뒤, 서점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나는 제주에 제법 오래 살았지만, 이 서점은 처음이었다. 이곳은 제주에서 발행한 독립출판물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베스트셀러 섹션과 독립출판물 매대를 구경하고 에세이 북 매대도 구경했다. ㅂㅇㅂㅅ는 약간 서울의 대형서점과 같은 분위기가 나서, 구경거리가 제법 많아 기분이 좋았다. 나는 다른 서점에서 자주 못 보던 세련된 편지지 디자인도 꽤 귀엽다고 생각했다. 책 만들기 참고용으로 내가 만들 수 있을 법한 디자인의 책 두 권을 고른 뒤 빠르게 계산하고 나왔다.




식당에 도착해서 친한 언니들한테 구매한 책을 보여줬다. 한 명은 국문과를 나온 해맑은 미자 언니였고, 다른 한 명은 예고를 나와 미대를 졸업한 패셔니스타 혜수 언니였다. 두 언니의 인풋을 합치면, 정말 멋진 책이 나올 것 같았다.


"용희 씨, 차라리 그림 없이 글만 써도 좋을 것 같은데? 아니면, 일러스트 할 거면 이런 느낌도 괜찮고."

몇 차례 언니에게 일러스트에 대한 인풋을 받았던 터라 내가 왜 책을 갖고 나왔는지 감을 잡은 혜수 언니가 말했다.


나는 언니의 말을 듣고 두 번째 가제본은 글만 써서 인쇄하거나, 안 되면 내가 최소한으로 몇 장의 색연필 일러스트를 그려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 이건 어때요? 제가 그린 말 일러스트인데 이런 느낌 괜찮아요?"

나는 혜수 언니에게 얼마 전 내가 그린 말 일러스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너무, 말이 동화 같은 느낌이라 용희 씨 책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맞는 말이다. 나는 판형을 일단 정리하고, 일러스트도 다시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샘플로 인쇄했던 여러 가지 명조체 프린트물을 언니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책 샘플을 만들어 봤는데요. 책 크기에 따라 글씨도 달라 보이고, 자간에 따라 같은 글씨인데도 이미지가 많이 달라 보여서요. 한 번 프린트해 봤는 데 부크크 명조 Bold 9.5와 수성바탕체 10에 자간 103%를 한 게 제일 예쁜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그럴 수 있겠다."

미자 언니가 빠르게 책 샘플을 받아 확인했다.


두 언니 모두 부크크 명조와 수성바탕체를 새로 만들려는 본문 글씨체로 인쇄한 것에 대해 반응이 별로 없었다. 예쁘다는 말도 보기 편하다는 말도... 글씨체는 예뻤지만, 언니들 반응이 뭔가 내가 만들려는 책이랑 안 맞는 것 같았다.


'내 책에는 두 글씨체가 다 안 어울리나 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본문 글씨체에 대한 많은 생각에 잠겨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본문 글씨체' 이렇게 검색어를 넣고, 포털 사이트를 검색했는데, 생각보다 정보가 없었다. 나처럼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정보가 좀 아쉬웠다. 그러다 어떤 분이 올려놓은 글을 발견했는데, KoPub 바탕체를 자간을 좀 줄여 사용했다는 말이 있었다.


'아, KoPub. 나 프린트 안 해 봤는데...'

나는 그분의 말대로, KoPub 바탕체 Light를 10포인트로 설정하고 자간을 5% 줄였다.


"어? 생각보다 예쁘잖아."


나는 두 번째 가제본은 KoPub 바탕체로 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판형은 두 가지로 정해 놨었는데, 본문 서체가 정해지자, 페이지를 1번) 판형으로 설정하고 빠르게 책을 완성해 나갔다. 그러다가 5챕터가 되었는 데도 40페이지 밖에 되지 않아, 다시 2번) 판형으로 바꾸고 5챕터를 채워 보았지만, 오히려 37페이지가 되었다.


1번) 폭 126mm 높이 188mm

2번) 폭 110mm 높이 178mm


'엥? 판형이 작아지는 데, 왜 페이지가 안 늘지?'


생각해 보니, 여백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책이 크면 한 챕터당 빈 페이지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작은 책은 빈 페이지가 거의 들어가지 않고 내용이 꽉꽉 찼다.


'아... 책 지면을 넓게 쓰면 글도 많이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책을 만드는 것은 책을 보는 것과는 정말 다른 세상이구나.'


때마침 내가 틀어온 너튜브에서는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 흘러나왔다.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모든 과정을 어떤 지혜를 얻기 위한 실험으로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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