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말 일러스트는 처음입니다만...
B 플랫폼에 글을 쓰면서 첫 책을 출판하기로 마음먹고, 빠르게 원고를 정리해 나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급한 것도 없는 데 왜 이리 열심히 하냐고 하지만, 너무 늘어지면 내가 지쳐버릴 것 같아 어쩌면 속도를 높이는 작업은 나를 동기 부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지금 3가지 버전의 각기 다른 원고가 있는데, 이 중 어떤 책을 먼저 출판할까 고민이 많다. 주변에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논의한 결과, 여러 사람이 가장 궁금해할 것 같은 '승마' 이야기를 먼저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지금 혼자서 작업 중이기도 하고 써도 써도 아쉬움이 남는 게 글 쓰기기에 스스로 마감일을 설정하고 그 기간을 맞추기로 다짐한 것이다.
먼저, 지금 가지고 있는 원고를 책 콘셉트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어쩌다 글 한 편을 재밌게 쓰는 것은 가능했지만 책에 실린 모든 글을 조화롭고 재밌게 쓰는 것, 마지막까지 독자의 시선을 끌고 가는 필력은 쉽게 얻기 힘든 일 같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고 해 보고 안 되면 다시 해보자는 심정으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도전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일러스트에 막혀, 3일째 종일 말 일러스트를 그리는 중이다. 어제오늘 그린 그림만 50장은 넘은 것 같다.
"말 그리다 사망할 것 같아요."
메신저 절친 단톡방에 말했더니, 절친들은 말은 너무 그리기 까다로워서 프로작가들도 말 그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내가 그리는 말은 잘 못 그리면 소처럼 나오기도 하고, 용처럼 나오기도 했다. 몸이 너무 두꺼우면 소, 너무 얇으면 용, 적당해야 말이 나왔다. 또 턱선을 너무 둥글리면 용이 되거나 약간 비열해 보이는 말이 되기도 하고, 너무 두꺼우면 미련한 말이 되었다. 그리고 코를 너무 둥글리면 뱀처럼 나오기도 했다.
"휴, 이게 되긴 되는 건가?"
나는 구도를 잡을 줄 몰라 무작정 스케치북을 펴고, 연필로 말 느낌을 그려나갔다. 그러다 맘에 드는 선이 나오면 트레이싱지에 그림을 베껴서 먹지로 스케치북에 옮기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그리고를 반복했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내게 이 방법이 그림 그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가까스로 표지용 말 그림을 완성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말 갈퀴가 너무 하늘로 솟아서 머리 뽕이 너무 심상치 않게 나왔다.
"망했쓰."
진이 빠져 있는데, 나의 절친 모자리나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강생이 뭐 해? 바빠?"
"말 그려요."
"말은 또 왜 그려? 언니 오늘 시험 끝났다. 우리 강생이 언니가 빙수 사줄게. 나와"
금속 공예를 전공한 모자리나 언니는 얼마 전부터 사회복지학을 공부 중인데, 오늘 시험이 끝나서 홀가분한 마음에 빙수를 쏘기로 했다. 나는 워낙 답답하기도 했고, 언니를 보면 기분이 나아질지도 몰라 빙수 가게로 달려 나갔다.
"요새는 뭐 한다고 또 조용해? 넌 조용하면 바쁜 건데... 지난번 만든다던 책은 어떻게 됐어?"
생각해 보니, 가제본을 만들겠다고 언니한테 PDF 파일을 보여주고, 오늘 처음 만나는 거였다.
"처음 만들려고 했던 책은 PDF로 볼 땐 예뻤는데, 막상 인쇄를 하니까 거리에서 나눠주는 팸플릿처럼 나와서요. 예쁘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고... 백과사전 같은 책이 나왔는데요. 그래서 엎었고요. 얼마 전부터 B 플랫폼에 글을 쓰고 있어요."
"오잉? 우리 강생이 컴퓨터도 못 하는 데, 용케 거기다 글은 적네. 아주 잘 됐다. 이참에 컴퓨터도 배우고..."
언니는 내가 컴퓨터를 좀 더 가까이하는 게 장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B 플랫폼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요... 희숙이 언니는 희언니로 김숙이 언니는 김언니로 했는데요. 언니는 뭔지 알아요?"
"나? 나도 있어? 나는 코커스패니얼 닮았으니까, 코카라고 해줘. 하긴 요새 마약이 너무 이슈라서, 코카라고 하면 또 오해할 수도 있으니..."
해맑게 자신의 애칭을 고민하는 언니에게 나는 B 플랫폼에 있는 '모자리나 언니가 추천하는 어우늘'이란 글을 보여주었다.
"나? 나는 모자리나야?"
'내가 좀 심했나?' 하며 언니의 얼굴을 살피는데... 언니는 모자리나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글을 읽던 언니가 글이 맘에 들었는지 체념한 듯 말했다.
"그래. 그냥 모자리나 할게."
언니는 그렇게 모나리자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나는 언니가 못자리나 인 게 재밌고 좋은 데 혹시라도 언니가 기분 나빠하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었다. 그런데 오늘 모자리나 언니가 모자리나를 받아들여 줘서 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요즘에 종이책을 다시 만들 생각에 일러스트 그리고 있는데, 일러스트는 진짜 힘든 것 같아요."
모자리나 언니는 그림에 조예도 깊고, 그림도 제법 그린다. 나는 언니에게 그간 그린 일러스트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니, 그니까 너는 그림은 아니다."
안타까운 듯 언니는 말했다.
"요즘은 AI가 그림 다 그려주는 데, 우리 강생이는 컴퓨터를 못 하니 어쩔 거야."
언니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듯했다.
"아니, 그래서 제가 트레싱지와 먹지 사다가 나름대로 해보고 있어요. 지난번 가제본에서 사진 빼고, 시 빼고 하니까 글이 12장 남더라고요. 그래서 이런저런 원고들을 다시 써 보았는데... 첫 책은 승마 이야기를 출판하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책 표지 만들어 봤는데, 어떤 것 같아요?"
언니는 천천히 내가 만든 표지를 살펴보았다.
"아니, 근데 일러스트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많잖아. 의뢰하면 되지."
"그게... 제가 총 50권 찍을 건데, 비용도 만만치 않고 일러스트를 의뢰하기는 그래서요... 그림 잘 그리는 주변 지인들에게 한 장씩 받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그림을 받는 것도 미안한 일이고 그림을 계속 그려보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일러스트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들고... 또 그렇게 한 장씩 받다 보니 그림체가 다 달라서 한 권을 통일성 있게 만들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제가 하는 데까지 해 보려고요..."
언니는 천천히 표지를 살펴보고 말했다.
"말머리 뽕이 너무 심한데?"
"제 말이... 지금 그래서 집에 가서 다시 그려보려고요. 내지에는 말 만나는 장면, 타는 장면, 말에서 떨어지는 장면 이렇게 6장 정도 말이 가는 것처럼 하면 재밌지 않을까요?"
"아이디어는 좋은데, 그게 가능해?"
"저도 그려본 적이 없어서 그리기 전까진 뭐가 나올지 몰라요. 일단 그냥 트레싱지 100장 사놨어요."
"100장? 그래 그거면 될지도..."
모자리나 언니는 특별한 확신 없이 말했다.
그렇게 모자리나 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말머리 뽕을 낮추기 위해 많은 말을 그렸다. 드디어 최종으로 말머리 뽕을 낮춘 2마리의 말을 완성했는데, 한 마리는 말 갈퀴를 긴 머리 남자처럼 휘날리는 왕자님 같은 말이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말고삐를 헤어밴드처럼 두른 스포티한 남자 느낌의 말이었다.
'괜찮은 거 같은데, 그림 보는 눈이 없으니... 이게 잘 된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어떤 게 더 나은 지 감을 못 잡겠던 나는 원래 표지의 말머리 뽕이 심한 그림과, 새로 그린 말 그림 2장을 미대 나온 혜수 언니에게 보냈다.
"언니, 어느 말이 나아요? “
"용희 씨, 새로 그린 건 둘 다 별로고 표지 말이 제일 멋진데요? 선도 동그랗고 더 여성적이고요. 새로 그린 말들은 더 잘 그렸긴 하는데, 색종이로 접은 말처럼 딱딱하고 매력이 없네요... 처음 그린 말이 가장 매력적이에요."
'아...'
결국 나는 말머리 뽕 말로 다시 돌아왔다. 혜수 언니가 말에 확신을 두고, 머리 뽕이 심한 말을 표지모델로 확정했다. 이어 내지 일러스트를 그리기 위해서, 트레싱지와 먹지를 이용해서 이 말의 다양한 모습을 그렸다. 구도를 못 잡으니까, 트레싱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말의 뛰는 높이를 조절했다.
"됐다..."
그렇게 나는 총 6장의 다양한 말 일러스트를 완성하고, 모자리나 언니에게 보냈다.
"말머리 여전히 벌크 업 됐는데?"
언니는 내 그림을 보고 한마디 했다. 나는 언니의 이런 말투가 너무 재밌다.
"이거 저거 하다가 저게 제일 매력적이래서 그냥 저걸로 했어요."
모자리나 언니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는 혜수 언니에게도 6장의 다양한 말 일러스트를 보냈다.
"용희 씨, 저는 역시 이 말 맘에 들어요. 6장 다 좋아요."
혜수 언니가 말했다.
나는 이제 모든 게 끝났나? 하는 심정으로 되물었다.
“진짜요?”
"네, 괜찮아요. 다 좋아요."
다음 날 나는 트레싱지에 그렸던 다양한 6장의 말 일러스트를 도화지에 옮기는 작업을 했다. 이곳에 옮긴 뒤 색연필로 채색할 작정이었다. 트레싱지 밑에 먹지를 대고, 먹지 밑에 화지를 대는 방식으로 복사했는 데, 밑에 있는 도화지를 보고 그릴 수 없는 관계로 손이 다른 곳에 붙거나 말꼬리가 다른 곳에 붙기도 했다.
이런저런 상황이 많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 종일 그려 총 6장의 괜찮은 말 일러스트를 완성했다.
새로 산 HB 연필은 이미 몽당연필이 되어있었고,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아파져 왔다. 연필이 다 닳아서 이 이상은 말을 그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연필 원래 이렇게 빨리 닳는 거야? 학교 다닐 때는 1자루 쓰는 데 꽤 걸렸던거 같은 데? 신기하네.'
나는 도화지에 옮긴 총 6장의 그림 중 2장을 정성껏 채색했다. 한참 열심히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고성희 님이 생각났다.
고성희 님은 잡학 다식한 친구로 나에게 애정 어린 쓴소리도 잘해주는 데, 모든 걸 예리하게 관찰하는 스타일로 스치듯 한 말들이 대부분 다 맞는 말이다. 나는 그래서 고성희 님과 대화하는 걸 즐긴다. 고성희 님은 책을 엄청 좋아하기도 하고 빨리 읽기도 하고 책에 매우 익숙하기도 하다. 과연 고성희 님은 내 원고를 보고 무슨 말을 해줄지가 문득 궁금했다.
"성희 님, 잘 지내요? 저 책을 한 번 써봤는데 이게 표지이고요. 이게 일러스트고 이게 안에 내지예요. 지난번 추천해 주신 승마 아카데미에 다녔던 이야기를 한 번 써봤어요."
고성희 님은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평소 바쁜 관계로 답장이 늦을 것을 예상했는데, 운 좋게도 오늘은 빠른 답변이 왔다.
"용희 님, 괜찮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근데 말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웃는 상으로 하시는 건 어떨까요?"
'아니, 성희 님. 글만 잘 보시는 줄 알았는데 그림도 잘 보시나? 눈썰미가 좋으시네.'
생각하면서 나는 무슨 말을 할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처음에 나는 말 눈을 만화에 나오는 왕자님 눈처럼 멋지게 그렸었다. 그걸 본 사람들이 말이 너무 느끼하다고 했다. 그래서 왕자님 눈은 포기하고 점만 찍었더니 말 눈이 작다는 평이 많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국적 느낌이 왕창 묻어나게 천마총 벽화나 평창 올림픽 인면조 느낌의 말 눈을 그려봤다. 그게 혜수 언니가 가장 좋다고 했던 머리 뽕이 잔뜩 들어간 말 느낌이었고, 나는 그 말 눈으로 움직이는 말 일러스트 최종 6장을 완성했던 거였다.
나는 그간 그렸던 많은 말 눈을 성희 님께 보내며 말했다.
"성희 님, 이 중 어떤 눈이 제일 나아요? 지금 영혼을 불태우는 중이요. 그림 그리다 사망할 것 같습니다. 너무 만화 같나요?"
"그림 잘 그리시네요? 용희 님, 마지막 거에서 조금만 더 역동적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지금도 나쁘지 않은 데 이왕 하시는 거 좀만 더 힘내서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성희 님의 따스한 말을 듣고 왠지 모를 용기를 얻어 말 눈을 다시 그렸다. 마지막 힘을 짜내 말 6마리를 그리고 다른 디자인의 말 눈 6개를 그렸다. 눈만 그리면 전체적 느낌을 알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을 다시 그렸고, 하는 김에 사람들이 고르기 쉽게 각각의 일러스트에 번호도 적았다.
"저는 3번이 좋은 것 같은데요?"
성희 님이 답했다.
나는 새로 그린 말 눈을 혜수 언니에게도 보냈다.
"용희 씨, 3번이 제일 나아요."
그렇게 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늘까지 말 일러스트와 눈을 확정했다.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없는 내게 절친들의 도움은 눈물 날 만큼 고맙다.
내일은 이 일러스트를 다시 도화지에 옮기는 작업을 해야겠지? 내일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도 모른다. 그림을 그린적이 없어서 그려봐야 뭐가 나올지 알기 때문에... 나는 이 것만 완성하면 당분간 말 일러스트는 진짜로 절대 절대 안 그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