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맛집

6. 거문오름 콩국수 맛집 '선흘방주할머니식당'

by 김용희

"그니까, 콩국수. 아 진짜 먹고 싶다."


승마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커피 한잔하기로 한 우리는 영평동에 있는 한 카페에 앉았다.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2층 카페인 이곳은 소파도 푹신하고 북쪽으로는 귤밭 뷰가 남쪽으로는 한라산이 보인다.

대형카페인 이곳은 직접 구운 쿠키도 맛이 있는데, 좋은 곳임에도 근처에 너무 유명한 카페가 있어서인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좋은 분위기에 사람이 많지 않아 나는 오래 앉아 편하게 대화를 즐기고 싶을 때 이곳을 주로 찾는다. 우리는 이번 학기 마지막 승마 수업을 마치고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으로 카페 한편에 앉았다.


승마 수업에서 나는 마지막까지도 낙마를 피하려 혼을 불태웠다. 이제 6월 중순에 들어서니 제주도도 차츰 더워지기 시작하고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말을 타고나니 다리도 손도 모두 덜덜 떨렸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도내의 맛집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콩국수 얘기를 했다.


"고래콩물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콩국수 진짜 맛있어요."


우리 수업의 패셔니스타이자 노는 데 일가견이 있는 혜수 언니가 말했다. 나는 언니의 말에 포털사이트에서 '고래콩물'이라는 식당을 검색했다. 검색하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콩국수 비주얼은 장난 아니게 맛있어 보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그만 '콩국수. 아 진짜 먹고 싶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나는 이곳 제주에 온 지 7년째인데, 생각해 보니 제주에서는 내 최애 음식인 콩국수를 먹어 본 적이 없다. 육지에 있을 때는 사람들과 점심시간에 종종 콩국수를 먹기도 했었는데, 이곳에선 혼자 콩국수를 먹으러 식당에 찾아가기도 그렇고 도민들은 일부러 콩국수를 먹으러 찾아다니진 않는 눈치다. 아니면 나의 지인들이 콩국수를 별로 안 좋아하거나.


콩국수는 꽤 호불호가 있는 음식 같다. 보통 밍밍한 콩물에 말아 넣은 국수의 맛을 좋아하기 힘든 데, 나는 단백질을 좋아하는 타입으로 콩국수를 먹으면 부담 없이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한다는 기쁨이 있다. 왠지 모를 포만감과 몸에 힘이 나는 느낌도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여름철이 지나면 먹을 수 없다는 희소가치도 한몫하는 것 같고, 더운 날씨에 쉽게 쉬어버리는 음식으로 재료의 신선도가 보장되지 않으면 맛있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아무튼 갑자기 제주에서 ‘콩국수'를 생각하니 지난 몇 년간 나는 좋아하는 음식도 다 잊어버리고 살 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흔한 콩국수 한 그릇 먹지 못할 만큼 바빴던 내 자신에 대해 뿌듯함과 연민이 동시에 느껴졌다.


혜수 언니의 추천을 듣고 내게 콩국수를 한 그릇 대접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혼자 '고래콩물'을 찾아가긴 좀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어제도 오늘도 만난 승마팀 언니들한테 내일 함께 '고래콩물'에 가자고 하기도 힘든 노릇이었다.


'아, 콩국수 진짜 먹고 싶단 말이지.'


다음 날 나는 <미쓰 탠저린> 언니에게 삼의악에 가자고 연락할까 하다가 언니가 부담스러울까 봐 참았다. 참고로 탠저린 언니는 첫 만남에서 내게 귤을 잔뜩 주었고, 그때부터 내게 언니는 <미쓰 탠저린>이 되었다. 다음 날이 되자 거짓말처럼 <미쓰 탠저린>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설마? 뭐야. 나 지금 언니랑 통 한 거야?‘

탠저린 언니는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빈말을 잘 안 하는 데 오랜만에 연락해 온 언니에게서 거문오름 국제트레킹 행사기간이라며, 거문오름에 가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거문오름을 사랑하기도 하고 어제 언니를 만나고 싶었기도 해서 바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거문오름 트래킹코스는 A 코스인 태극길 코스와 B 코스인 용암길 코스가 있다. 용암길 코스는 정상에서 분화구 분기점까지 1.8km를 걸은 뒤 추가로 6km를 더 걸어야 하는 코스로 생각보다 긴 코스이다.


처음 우리는 이 용암길 코스의 존재를 잘 몰랐고, 원래 가던 대로 정상에서 분화구까지만 보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이 기간에만 볼 수 있는 길이라는 해설사님의 설명에 우연히 용암길로 들어섰다.


용암길은 곶자왈 지형으로 바위 위 나무 덩굴과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이 묘하게 어우러져 원시림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숲이다. 미디어에서는 이곳을 '신비의 숲', '비밀의 숲'으로 부른다. 이곳은 돌에 이끼가 많아 비가 오면 트레킹이 어려운 곳으로 오늘 우리는 운 좋게 날씨와 여러 여건이 받쳐줘서 신나게 탐방했다.


탐방을 마치고, 약 8km 정도를 걸은 우리는 오후 1시 30분이 되어서야 용암길을 모두 빠져나왔다. 나는 당이 좀 떨어진 것 같아 중간 쉼터에서 해설사님께 딸기 사탕 3개를 받았으나, 그걸로는 나의 허기를 다 채울 순 없었다. 한국인은 식사 시간 딱딱 맞춰 밥은 먹어줘야 하는 법.


셔틀버스 정류장 근처에 도착했을 때 내 눈앞에 엄청난 건물이 보였다. 바로 '선흘방주할머니식당'. 딱 봐도 맛집 포스가 풍겨왔다.


아주 예전에 난 성산일출봉에서 아침 일찍 문 연 식당을 찾다가 어떤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음식을 주문한 내게 할머니는 플라스틱 바가지 같은 걸로 성게미역국을 퍼줬었는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 손맛을 잊을 수 없다. 그 집은 도심에 있는 번쩍번쩍한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의 외관과 견주어 볼 때 겉보기엔 허름해 보이는 집이었는데 할머니의 손맛 덕분인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맛은 슴슴하고 밍밍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산 식재료를 그대로 살린 엄청난 맛이었다.


나는 한눈에 이 집이 그 집과 비슷할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면, 보통 12시에 딱 맞춰 점심을 먹는 내가 8km를 걸었고, 오후 1시 30분이 넘어서까지 공복 상태였기 때문에 뭐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언니, 우리 점심 뭐 먹을까요?"

배가 고픈 나는 거문오름 트레킹을 하면서도 내내 언니에게 점심 메뉴를 물어봤다.


"여기 선흘리인데, 노형까지 콩국수 먹으러 가긴 좀 멀죠. '고래콩물'이라는 식당이 있다는 데 정말 맛있다는데요?"


"거기 '고래콩물' 유명하죠. 예전에 저희 아버지께서도 콩국수 좋아하셔서 거기서 콩물만 사다가 잡숫기도 하셨었는데요?"

언니는 친절히 웃으며 답했다. 나는 오늘 언니와 함께 '고래콩물'에 가볼까 생각했었지만, 아마 이 길을 빠져나가면 점심시간이 다 지난 시간일 텐데 지친 몸을 이끌고 노형동까지 갈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지금 눈앞에 '선흘방주할머니식당'이 나타난 것이다. 아마 헨젤과 그레텔이 숲 속에서 과자 집을 만났을 때 이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마침 건물도 딱 그렇게 생긴 이층 집이었다. 건물 앞에는 과자 대신 노란 현수막으로 '할머니가 용암 해수로 매일 만드는 해수 두부와 단호박 면에 검은콩 콩국수 정말 맛있어요!'라는 글이 붙어있었다.


'바로 저기야! 내가 찾던 콩국수 집' 나는 왠지 인생 콩국수 집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엄습했다.


"언니, 콩국수 좋아해요?"

나는 옆에 있는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탐방안내소로 돌아가는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탐방 안내소 근처 식당 알고 있는 곳 없죠?"

언니는 이 집 외관이 미심쩍은 듯 내게 물었다.


"네. 이 근처는 아는 데가 없어요."

안타깝게도 얼마 전 상춘재의 이사 이후 이곳에 내가 아는 맛집이 없다.


언니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식당의 등장에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그럼, 여기 들어가 볼까요? 오늘 뭐 어쨌든 우연의 연속인데, 밥도 한 번 모험을 걸어보죠."


나는 평소 조심성이 많은 언니가 모험을 걸어본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주차장을 살펴보니 차가 많은 편이었고, 가게에서 젊은 연인이 두부를 사서 나오는 게 보였다. 왠지 대박집까진 아니어도 크게 맛이 없을 것 같진 않았고, 어차피 맛이 없다고 한들 콩국수는 어쨌든 콩 맛이 날 터였다.


"언니, 여기 괜찮을 것 같아요. 들어가요."


나는 크게 망할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언니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의 인테리어는 일반적인 분위기였고, 매장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저희 식당은 아들이 직접 재배한 두부콩, 검은콩, 단호박과 농사꾼이었던 할머니가 직접 재배하는 곰취, 삼채, 물외 등 각종 나물을 채소와 천연 조미료로 만드는 건강을 배려한 음식들입니다. 미세플라스틱 걱정 없는 용암 해수를 이용하여 매일 만드는 해수 두부와 서리태콩 국물에 단호박을 듬뿍 넣은 면의 검정콩 콩국수는 정말 맛있습니다. 된장, 고추장, 짠지, 오이지, 곰취장아찌, 멸치어 간장 등 직접 만든 발효식품을 사용하며 오메가-3가 풍부한 들기름을 사용하고 있는 건강 음식 전문 식당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진실해 보이는 듯한 현수막과 더불어 다른 쪽 벽에는 'KBS 6시 내 고향'과 'MBC TV 살맛 나는 세상'에서 방영되었던 기념사진이 걸려 있었다. 두부 만드는 과정과 설명을 곁들인 사진액자도 걸려 있었다. 뭔가 여기 온 손님들과 소통하기 위한 정성이 느껴지는 느낌이 있었다.


메뉴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삼채곰취만두, 도토리부침개, 두부 한 접시, 두부전골, 도메칼국수, 검정콩국수, 고사리비빔밥, 흑돼지보쌈이 있었다. 두부 한 접시 9,000원, 삼채곰취만두 12,000원, 흑돼지보쌈은 50,000원이었고, 그 외의 모든 메뉴는 10,000원이었다. 나는 며칠 간의 소원대로 '검정콩국수'를 시켰다.


"용희 씨, 저도 오래 걸었더니 더워서 콩국수 시킬게요."


언니와 나는 사이좋게 콩국수 한 그릇씩을 시켰다.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온 사이 음식은 이미 나와 있었다.


"용희 씨, 벌써 음식이 나왔어요. 여기 진짜 빨라요."

"아, 그래요?“

나는 언니의 말에 콩국수 면이 불을 세라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나는 먼저 단호박 면을 맛봤다. 면은 다른 집 콩국수보다 좀 굵은 면발의 칼국수면이었다. 면발은 쫄깃하고 좋았는데, 얇은 칼국수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호불호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콩국수에는 국물이 중요한 법. 나는 빠르게 국물을 들이켰다.


"이거지. 이렇게 진한 콩 국물 정말 좋아해요."

나는 언니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여기 콩국수 괜찮은데요?"

언니도 한 숟갈 떠먹어 본 뒤 한마디 했다. 한참 콩국수 국물을 들이켜다가 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용희 씨, 우리 도토리 부침개도 먹어볼래요?"

마침 우리가 앉은 테이블 오른쪽으로 커다란 음식사진이 추가된 대형 메뉴판이 붙어 있었는데, 콩국수가 맛있다 보니 다른 음식들이 모두 궁금해졌다.


"좋아요. 언니. 혹시 다 못 먹어도 우리 한 번 먹어봐요. 맛있을 것 같아요."


이윽고 도토리 부침개가 도착하고 우리는 음식 맛이 궁금해서 빠르게 맛봤다. 나는 도토리 부침개는 세상에 존재하는 음식인지도 몰랐고 생전 처음 먹어보는 데,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용희 씨, 이거 먹으니 삼채곰취만두도 먹어보고 싶지 않아요?"

"맞아요, 언니. 하나가 맛있으니까 두 개 시켜 먹어 보고 싶고, 두 개가 맛있으니까 세 개 먹고 싶네요. 이 집 왠지 다 맛있을 것 같은데요? 음식도 다른 데서 쉽게 먹어보기 힘든 메뉴들인 것 같아요. 제주스럽고...“


나는 언니와 만족한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나중에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니, 이곳은 도민 맛집으로 음식의 간이 세지 않아 좋다는 리뷰가 많았다. 건강한 밥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재방문하고 싶다는 글도 많은 것 같다.


방문했을 때는 몰랐지만 이 집의 대표메뉴는 언니가 먹고 싶다던 '삼채곰취만두'였다. 나는 다음번 거문오름에 방문하면 이 집에서 '삼채곰취만두'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도 같은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가 쉬고 있는 데 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용희 씨, 식당 이름 나온 사진 있어요? 지인이 본인도 가신다고 알려달래요."


나는 식당 간판이 잘 나온 사진을 언니에게 보냈다. 아마 언니의 반응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이 집은 도민 입맛에도 잘 맞는 집 같다.


<선흘방주할머니식당>

선흘리 2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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