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몬 님과 함께하는 수요일
세상을 살다 보니 유일하게 남이 잘되길 바라는 분은 스승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운 좋게도 인생을 살면서 좋은 스승님을 많이 만났고, 그분들과 오랜 세월 우정을 나누고 있다. 스승은 어떤 형태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스승님으로 모시는 분들의 기준은 확고하다. '자신의 분야에 지독한 전문성을 갖고 있을 것.'
많은 사람이 스승을 자처하지만,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에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과연 그 분야의 전문가인가 아닌가?
그런 연유로 나는 여러 분야의 좋은 스승님이 많다.
나는 우연히 옛 스승인 시몬 님을 만났다. 시몬 님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인물로 생각이 자유롭고 만약 여러 옵션 중 골라 도전을 해야한다면 가장 어려운 일을 서슴없이 고르는 도전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는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이지만 책을 많이 읽고 공부가 높아 폭넓은 시야를 가졌다. 그는 타인의 삶에 관여하길 싫어해서 모두와 스치듯 지나가길 원하지만, 특이하게도 천성적으로 타고난 편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여러모로 그가 궁금한 나는 그에게 어떻게 편안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지 물었는데,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높으면 굳이 자기 자신을 가공할 필요가 없고 어딜 가도 내 모습 그대로 사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내면의 강함을 갖추면 외부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다. 그와 만나면 나는 쉴 새 없이 펜대를 굴린다. 나의 그릇으로는 쏟아지는 그의 이야기를 다 담아낼 재간이 없기 때문에.
"용희 님, 그간 어떻게 지냈어요? 저번에 쓴다던 책은 잘 돼 가고 있나요?"
오랜만에 뵙는 시몬 님께 그간 연락이 없던 게 면목 없기도 하고 아직 책이 나온 것도 아니라 특별한 결과물이 없기도 해서... 부끄럽지만 샘플을 보여드렸다.
"열심히 살고 있네요. 많은 사람이 생각하거나 계획을 세운 것을 행동한 것으로 착각하죠. 그것은 행동이 아닙니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 행동한 것이라고 봐야 해요."
나는 사실 2주 전에 이미 나의 출간 예정인 첫 책 '제주의 말 타는 날들'의 원고를 다 끝냈고, 프린트도 완료해서 이제 마지막 수정작업만 남겨두고 있었지만, 웬일인지 그 뒤로 원고가 손에 잡히지 않아 마무리를 못 짓고 있었다.
혼자 생각해 본 것은 '아마 내가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있나?' 하는 점이었다. 시몬 님의 이야기에 주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사실은 원고는 이미 거의 완성이 되었는데, 마무리를 못 짓고 있는 시점에 시몬 님을 찾아왔어요. 제가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두려워서인 것 같아요."
시몬 님은 나의 원고를 찬찬히 훑어보면서 말했다.
"결국 용기가 이겨요. 결국 내놔야 합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에요. 결과물을 내지 않으면 그것은 행동한 것이 아니죠. 남들의 평가는 신경 쓰지 말아요. 어차피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결국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책을 써야 해요. 한두 권은 쓸 수 있지만, 책은 평생 써야 하니까 자기 자신에 뿌리를 두고, 수평으로 확장을 해 나가야 합니다."
시몬 님은 많은 책을 저술하셨다. 나는 그가 워낙 뛰어나서 하루아침에 명성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도 나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첫 책을 쓸 때 떨리지 않았는지, 어떤 계기로 책을 내게 되었는지, 책을 쓰고 나서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내게 당연히 처음에는 무섭고 두려웠고 떨렸으며, 무슨 이런 책을 쓰냐는 타인의 질시와 욕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내 레거시는 남아 있잖아요. 제가 쓴 모든 게 제 콘텐츠가 되었고, 역사의 흔적에 남아 있죠.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란 말 들어 봤나요? 숫자는 설명할 필요가 없잖아요. 결국엔 그 모든 걸 이겨내고 행동하는 자가 되어야 해요."
나의 펜대가 바빠졌다.
"책은 오래 고민한다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아니고, 고민하지 않고 썼다고 해서 외면받는 것도 아니죠. 내놓기 전에는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아무도 몰라요. 그냥 계속 꾸준히 쓰는 거죠.“
아... 나는 이빨리 승마책을 마무리해서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 말을 들으러 오늘 시몬 님을 만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용희 님에게도 대체 불가한 핵심 역량이 있을 겁니다. 그걸 찾아가 보도록 해요. 결국 핵심 역량을 갖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책을 쓰면 좋을 거예요. 요즘은 책을 만들기 쉬운 시대가 되었잖아요. 얼마 전에 저도 편지글로 책을 만들어 봤는데요..."
그는 내게 최근에 쓴 편지 책을 보여주었다. 나는 책을 살펴보다가 그의 초창기 책들도 보여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흔쾌히 내게 지금 구하기 힘든 절판된 책들을 모두 보여주었다. 에세이부터 전문서적에 이르기까지 그가 얼마나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왔는지 알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게 꼭 맞는 건 아니에요. 열심히 부지런히 산다고 해서 꼭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죠. 자생력 있고, 인정받을 수 있고, 존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결국 자기 발전이 중요한 거죠."
나는 그의 많은 책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능한 한 많은 내용을 눈에 담아 가고 싶었다.
"이런 내용이 있네요? '지나친 한 우물을 파지 말아라.', '직업과 관련된 인연을 중시하라.', '타인보다 자신을 중시하라.'... 저는 이 중에서 자기 자신을 중시하라는 말이 많이 와닿아요. 여기 이런 말도 쓰여 있네요. '타인을 중시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적고, 열등감이 팽배한 사람이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무래도 체면을 중시하다 보면 타인 중심의 삶을 살게 되는 데 그게 절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중시하며 살아야 해요. 많은 사람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잖아요. 결국 타인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자기 발전에 중요합니다."
"혹시 그런 것도 있으세요? 머리가 복잡한 날 책을 읽으면 생각이 좀 정리되거나, 자기 객관화가 되는 경험이요."
"있죠. 저는 이른 아침과 자기 전 저녁에 꼭 공부 해요. 지난 5년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렇게 꾸준히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제게 공부는 의식과 같은 거예요. 기도하듯 공부하죠."
나는 기도하듯 공부한다는 말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내게도 기도하듯 하는 일이 있을까? 기도하듯 공부한다는 말은 누구나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제가 진짜 보고 싶었던 책인데. 시몬 님의 첫 책 아닌가요? 내용이 진짜 궁금했어요. 어떤 내용을 쓰셨을지..."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몬 님의 첫 책을 집었다.
"다른 책은 지금 한 권씩밖에 없어서 드릴 수는 없고, 그 책은 제가 드릴게요."
"진짜예요? 제가 받아도 되나요?"
"네. 괜찮아요."
나는 무려 저자 사인과 함께 시몬 님의 첫 작품을 받았다. 이 책은 중국 배낭 여행기로 시몬 님이 내 나이쯤 홀로 중국을 여행하며 감상을 쓴 책이다. 제목이 독특한 만큼 표지 디자인도 특이했다. 젊은 시절 그의 어린 얼굴이 낯설었지만, 시몬님의 문체는 그대로여서 친숙하게 느껴졌다.
"용희 님 책 잘 되길 바라요."
그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뿌리내렸다. 어쩌면 나도 오랜 세월이 지나, 시몬 님처럼 누군가에게 출판 경험을 이야기하며 디딤돌이 되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의 책을 옆에 두고, 나만의 레거시를 만드는 길에 젊은 시절의 그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