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여기 찰옥수수를 파네요?"
승마 수업 쫑파티를 위해 다 함께 노형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다 계산대 옆 찰옥수수 매대에 시선이 멈췄다.
소산오름 <뽀글 머리 어머니>께 여쭤보았을 때 제주에 찰옥수수가 없다고 들었는데, 노형하나로마트 찜기에 떡하니 진열되어 있는 게 아닌가?
‘<뽀글 머리 어머니>께서 찰옥수수가 농작이 안 되는 땅이라고 말씀하신 걸 내가 제주에 없다고 이해한 건가?’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제주에 찰옥수수 많은데?"
옆에 계시던 김 반장님이 말씀하셨다.
"많아요? 어디예요? 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요..."
"여기도 있고, 오일장에 가면 많아."
"오일장에요? 정말이에요? 거기 가면 찰옥수수를 쪄서 팔아요? 생것으로 팔아요?"
"찐 것도 팔고 생것도 팔고 다 팔아."
나는 제주에 살면서 한 번도 오일장에 가 본 적 없다. 물건 흥정을 좀 못하기도 하고, 장서는 날짜를 제대로 모르기도 하고, 붐비는 곳에서 주차나, 북적이는 사람들을 모두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서울에 있을 때 전통시장에 대한 강렬한 첫 추억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느닷없이 홍시가 먹고 싶어 제법 큰 전통시장을 찾았다. 시장이 처음인 나는 두리번두리번하며, 주위를 구경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물건을 사고팔고 있었고, 나는 어떤 농산물이 좋은 지도 잘 몰랐기 때문에 기웃거리며 무작정 걸었다. 내가 시장에 들어간 시간은 날이 좀 어둑어둑해질 때였는데, 언제가 이 시장의 마감 시간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몇몇 가게는 문을 닫았고, 몇몇은 열고 있었다.
"뭐 찾아?"
연세는 있으시지만, 강단 있어 보이시는 까만 머리 할머니께서 내게 말을 걸었다.
"홍, 홍시를 찾는데요?"
"홍시? 이거 사면 돼."
"이, 이거요? 한 박스인데요?"
"한 박스가 낱개로 사는 것보다 싸지. 홍시 좋아하지?"
"네. 홍시 좋아해요."
"그럼 이거 사면 돼. 이거 맛있어. 대봉감이잖아."
나는 감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홍시는 원래 단감보다 대봉감이 맛있는 법. 하지만 색이 좀 마음에 걸렸다.
"근데 이거 좀 땡감 같은데요?"
"아, 원래 홍시는 땡감이다가 홍시로 되는 거야. 이거 가져가면 금방 익어."
나는 나무에서 홍시가 되었을 때 감을 따는지, 아니면 감을 따서 두면 홍시가 되는지, 시장에서 낱개로 홍시를 살 수 있는지 등등 모르는 것 투성이었기 때문에 할머니 말씀을 믿고 그냥 한번 사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이 탐스러운 땡감이 좀처럼 홍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뭐야. 홍시 사려고 갔는데, 땡감 한 상자를 사 왔네.'
나는 그때 시장에 대한 약간의 불편함이 생겼다. 하지만, 이곳 제주에서 찰옥수수를 구하는 거면 한 번쯤 위험을 무릅쓰고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혹시 장서는 날짜는 언젠지 아세요?"
나는 김 반장님께 물었다.
"아마 2일, 7일일걸? 잠시만... 여보! 오일장이 2일, 7일 맞지?"
김 반장님은 미자 언니에게 물었다.
"응 맞아. 오일장은 2일, 7일"
나는 어느새 우리 곁으로 다가온 미자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거기 주차 편해요?"
"응. 주차 편해. 거기 주차장 진짜 많거든."
주차장이 많다는 말에 나는 과감히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에 방문했다. 가는 길에 현금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카드도 받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냥 가보기로 했다.
주차장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3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기로 했다. 3 주차장 가기 전에 노상 주차장들이 보였지만, 그게 차를 대도 되는 시장 주차장인지 아니면 식당 주차장인지 몰라 그냥 공식 주차장으로 표기된 3 주차장을 골랐다.
3 주차장은 건물로 되어 있는 주차장인데 진입하면서 정면으로 가까이에서 비행기가 떠 오르는 것이 보이는 인상적인 장소였다. 나는 자리가 많이 비어있는 옥상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를 마치고 옥상 주변을 둘러보니 눈앞에 시원한 전망이 펼쳐졌다. 저 멀리 쌍둥이 빌딩과 한라산이 보였고, 나는 잠시 멋진 경치를 즐기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 닿자마자 바로 시원하게 시장이 펼쳐졌다.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묘목 매장이었고, 그 뒤로 분식집, 야채가게가 보였다. 나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이곳에 익숙해지기로 다짐했다.
나는 찰옥수수를 찾다가 분식점 앞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찰옥수수를 발견했다.
'드디어 찰옥수수 찾았다.'
찰옥수수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나는 옥수수가 식어버릴 것이 염려되어, 나가기 전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나갈 때 다 팔렸으면 어쩌지?’
고민도 되었으나, 아무래도 식은 옥수수를 먹는 것보다는 나중에 사는 게 현명할 것 같았다. 분식집 옆으로 호떡집도 보였다.
'와. 저 집 호떡도 맛있겠다.'
제주에서 호떡은 대형마트에서 파는 레토르트 호떡만 먹어봤었는데, 제주 호떡 맛은 어떨까? 내 눈이 자꾸 새로운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곳은 <제주시 도두1동 1212번지>에 있는 전통시장으로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오일장이다. 제주시 전통오일시장은 조선시대 보부상들의 상거래 터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100년이 넘는 역사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 익숙해질 겸, 구경도 할 겸 해서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군데 군 데서 중국인들과 미국인들의 대화가 들렸다. 외국인을 보고 수군대는 한국 사람들의 소리도 들렸다.
"언제부터 이곳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지? 외국인들이 이렇게 많네?"
영어를 하는 외국인을 보면서 한 부부가 말했다.
"그러게. 외국인들도 여기서 볼 게 많은가 보네."
이런 풍경에 나는 마치 이곳이 어느 외국의 전통시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도민이지만 현지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니, 제주를 제대로 여행하는 기분이 물씬 풍겨왔다.
입구에서 바로 연결된 야채 시장 뒤로는 할머니 장터가 펼쳐졌다.
"고마워요."
누군가 방울토마토를 구매하고, 할머니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고 있었다.
'나도 좀 팔아드리면 좋겠는데... 아 맞다. 나 현금이 없는데?'
나는 이곳에서 카드를 받아주는지 감이 없었다. 결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은 무작정 걸으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옷 가게 아주머니께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는 계좌이체로 받는다고 했다. 나는 왈가왈부하는 게 성격에 맞지 않아 앞으로는 카드가 되는지는 묻지 않고, 그냥 가게마다 계좌이체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코너를 돌아 다음 골목으로 들어서니, 새 파는 아저씨가 보였다.
'와, 여기 진짜 뭔데? 여기 새도 팔아?'
나는 새를 파는 신기한 풍경에 옆에서 사람들을 좀 구경해 보기로 했다. 주인아저씨와 초등학생 그리고 아이의 엄마가 새 장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재밌어서 사진을 찍었다.
주인아저씨는 새 장에서 하늘색 앵무새와 연두색 앵무새를 꺼내 분홍색 새장에 넣어 주며 아이에게 말했다.
"하늘색이 수놈이고, 연두색이 암놈이야. 청소는 여기 받침대를 이렇게 빼서 씻어주면 되고, 모이통은 여기 있고..."
아마 이 상황은 아이가 한 쌍의 앵무새를 구매하는 상황 같다. 아이는 무척 좋아했다. 행복해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도 행복해 보였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보며 방긋 웃었다.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왠지 모를 훈훈함이 느껴졌다. 다음 매대에는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리고 있었고, 그 앞에 엄마와 구경하는 아이가 보였고, 옆으로 장수풍뎅이 매대와 거북이, 금붕어도 보였다.
‘와. 진짜 없는 게 없구나.’
금붕어 집 옆으로 돌아서니 선인장을 파는 가게가 보였다. 예쁜 선인장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전에 집 앞 꽃집에서 선인장을 한 번 구매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특별히 선인장을 좋아해서는 아니고, 꽃집 주인의 센스가 너무 멋져서 화분이 세련돼 보였기 때문이다. 한 번 가격을 문의해 보니, 선인장이 20만 원이라고 했다. 아무리 물가가 비싼 제주라고 하지만 선인장이 20만 원이라니... 가격에 깜짝 놀라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었다.
한데 그 선인장이 이곳에서는 2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내가 꽃집에서 봤던 선인장과 종류가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전문가인 내 눈으로는 그냥 같은 선인장처럼 보였다.
'저 선인장 하나 살까?'
나는 가격이 진짜 2만 원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주인아저씨한테 괜히 헛된 기대를 하게 할까 봐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선인장 매대 앞에서 한 참 망설였다.
‘저 선인장은 말이야. 작은 밀짚모자를 씌우면 참 귀여울 것 같단 말이지.’
선인장을 보며 나름의 데코레이션을 상상해 봤다. 꽤 예쁠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반려 식물이 이미 많은데, 또 들이기엔 좀 부담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선인장은 뿌리가 짧아 물을 줄 때 줄기에 닿지 않게 기술적으로 줘야 죽지 않는
데 나는 그 섬세한 기술이 좀 부족하다. 괜히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는 선인장들을 죽일 순 없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매대를 지나쳤다.
나는 이제껏 사람들이 왜 시장을 이용하는지 자세히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한 곳에서 다양한 물건을 고르고 구매할 수 있다는 게 새삼 편리하게 느껴졌다.
제주 사람들은 백화점처럼 층층이 올라가는 매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한 번에 시야가 탁 트여있는 곳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나도 이제 제주 사람이 다 된 건지 이 오일장이 정말 편하게 느껴졌다.
일단 한눈에 모든 곳이 보여서 좋았고, 서울의 농수산물 시장처럼 부지가 크지 않고, 오밀조밀 모여 있는 데다가 조금만 돌면 없는 게 없다는 점이 좋았다. 한 마디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곳이다.
제주에 살면서 어떤 물건이 필요할 때마다 어디서 사야 하는지, 그곳에 가면 있는지 건건이 확인하고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진작 이곳에 왔으면 모든 걸 손쉽게 구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맛에, 시장에 오는 건가 보네.'
나는 시장을 몇 바퀴 더 돌아보기로 했다. 아까 지났던 할머니 장터를 벗어나니, 저세상 색감의 알록달록한 옷들이 진열된 의류매장이 보였다.
'와, 옷집이다. 여기서 잘 고르면 예쁜 것도 살 수 있겠는데?'
나는 쨍한 색감에 이끌려 의류매장을 집중적으로 구경하기로 했다. 어떤 가게에는 감귤 스커트, 동백꽃 스커드도 팔았다.
'감귤 스커트는 하나 사도 입고 다닐 수 있지 않나?'
나는 잠시 감귤 스커트를 입고 제주 시내를 다니는 상상을 해 봤다.
'너무 튀나...'
무엇보다 사이즈가 맞을지 몰랐다.
한참을 가다 보니 자신이 원색임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새빨간 민소매 원피스가 보였다.
'와. 색감 끝내준다.'
나는 이 세상에 없을 듯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빨간 원피스를 구매하고 싶었지만, 빨간색이 잘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역시나 구매하기엔 뭔가 좀 부담스럽긴 했다.
이리저리 다니다가, 노란색 티셔츠에 곰돌이 프린트가 새겨진 옷을 걸어 놓은 한 옷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이건 여자 옷인가요?"
나는 웃는 얼굴이 선량해 보이는 단단한 체격의 사장님께 질문했다.
"남자 옷인데요. 요즘은 여자분들이 많이 사가요."
이곳 상인 분들에 비해 젊은 나이대의 사장님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럼 저 옷 저도 입을 수 있나요?"
사장님은 내가 가리킨 노란 옷을 꺼내 주시며 말했다.
"네, 입으실 수 있죠. 요즘은 남자분들도 까만색 별로 안 찾으시고, 밝은 색감을 많이 찾으시고요. 여자분들도 바지를 딱 붙는 걸 많이 입으시니까 길이가 길고 펑퍼짐한 상의를 많이 사 가세요. 그래서 저희 가게가 남자 옷 전문이긴 한데 여자분들도 많이 사가요. 요즘은 남자 옷, 여자 옷 경계가 없어요."
나는 남자 옷이라 하니 사이즈는 대충 입으면 맞을 것 같고, 옷을 몸에 한 번 대보고 어울리는 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나쁘지 않은데?’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확인한 후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았다. 매장 안에는 남자 옷이라고 보기에는 예쁜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가 많았다. 곰돌이 티셔츠, 미키 마우스 티셔츠, 스마일 마크 티셔츠... 내가 좋아하는 귀여운 느낌의 옷들이 많았다.
"사장님, 센스가 좋으신 것 같아요. 티셔츠가 다 예쁜데요?"
나는 톡톡한 면이 좋았고, 이미지들이 고급스러워 보였고, 전반적으로 가격 대비 괜찮은 물건이라 생각해서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별다른 대답은 없으셨다.
미키 마우스 옷을 집는 데 사장님이 설명을 덧붙이셨다.
"그거 다 정품 미키 마우스예요. 제가 동대문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데, 디즈니가 워낙 깐깐하다 보니 동대문 상인들이 다 같이 디즈니에 로열티를 내요. 그래서 동대문 미키마우스는 모두 정품이에요."
나는 팔랑귀는 아닌 데, 어쩐지 이 미키마우스가 참 예뻐 보이더라니. 정품이었구나.
"미키마우스는 원래 잘 안 들어와요. 들어올 때 있고, 안 들어올 때 있고요. 오늘 운 좋게 들어온 날에 오신 거예요."
나는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만지작거리면서 사장님께 질문했다.
"그럼 동대문에 가서 직접 물건을 해 오세요?"
"전에는 서울에 직접 가서 물건을 해왔었는데, 요즘은 가지 못하고 있어요. 제가 거래하는 집이 있어서 그쪽에서 제 스타일을 잘 알다 보니까 카탈로그 보고 주문하면 저에게 물건을 보내줘요."
"하긴, 매번 서울에 가서 물건 해오는 게 쉽진 않죠. 그래도 디자인은 다 예뻐요. 그럼, 나중에 제가 사장님께 물건 또 사러 오고 싶으면, 2일 아니면 7일에 와야 하는 거죠?"
"네. 그때 오셔야 해요."
"그럼 혹시 여기 말고 다른 시장도 다니세요?"
"저는 여기랑 세화오일장이랑 서귀포향토오일장을 다녀요."
"거기는 며칠이에요?"
"세화오일장은 0일, 5일이고요. 서귀포향토오일장은 4일, 9일이에요."
사장님은 재빨리 다른 옷들도 보여주시며 말씀하셨다.
"요즘에는 이런 디자인도 유행이에요. 야자수가 그려진 이런 티셔츠요. 지난 장에 많이 팔았거든요."
나는 사장님이 권해주시는 야자수 티셔츠를 봤는데, 시내에서 입기에는 좀 휴양지 느낌이 났다.
"저는 미키마우스가 더 예쁜 것 같아요."
"그렇죠. 시장마다 다니면 찾는 스타일이 다 다른데요. 세화는 바닷가다 보니까 야자수나 휴양지 느낌 나는 옷들이 많이 팔리고, 제주시랑 서귀포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캐주얼한 옷들이 많이 팔려요."
“아. 그런 것도 있구나..."
나는 역시 패션의 세계는 오묘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장님과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눈 뒤 미키마우스 티셔츠 2개랑 처음에 반해서 들어갔던 노란 곰돌이 티셔츠를 사서 매장을 나왔다. 그간 세화오일장이 궁금했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세화오일장에 가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았다. 거기서 우연히 이 사장님을 만나면 색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나오는 길에 모자 가게에서 노란 모자를 발견했다.
'혹시 나 노란색 좋아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모자를 써봤는데, 모자가 너무 커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 모자 이렇게 쓰는 거 맞아요?"
나는 모자가게 사장님께 여쭤보았다.
"그거는 푹 눌러쓰는 거예요. 햇빛을 완전히 다 가려주는 거예요."
나는 이 모자를 살까도 생각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부담스러워서 사지 않았다.
좀 지나다 보니, 고무신에 그림을 그려서 파는 매장이 보였다.
'이건 뭐지? 희귀 아이템이다. 진짜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저세상 감성.'
매대에 나와 있는 모든 고무신에 노란 꽃, 빨간 꽃, 파란 꽃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용과 어른용이 있었고, 하절기용 고무신과 동절기용 털고무신이 있었다. 나는 너무 특이하고 귀여워서 이건 정말 희귀 아이템으로 소장 각이라고 생각했다.
'아까 본 감귤 스커트랑 빨간 꽃고무신 신으면 진짜 대박이겠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이건 고무신인데 내가 쓸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 내기 제주 시내를 이 고무신을 신고 다닌다고 상상하니 그냥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고무신은 포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충동구매를 잘 참은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줄이 너무 길어서 여기에 이 사람들이 대체 왜 서 있는지 궁금해졌다.
'여긴 뭔데?'
나는 줄 앞까지 가서, 빠르게 상호를 확인했다.
<춘향이네>
메뉴판을 보니 순대국밥이 보였고, 여름 별미 콩국수라고 쓴 종이도 보였다.
'설마, 이 사람들 콩국수를 먹으러 여기 이렇게 서 있나? 그건 아닐 것 같은데?‘
포털 사이트 검색을 해보니 이곳은 순대국밥 맛집이었다. 먹장어와 파전도 맛있고, 가격 착하고 맛도 좋다고 많은 사람의 칭찬 글이 많았다.
'나도 줄 서서 한 번 먹어볼까?'
나는 한번 줄을 서서 먹어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인기 있는 집 4인 테이블을 나 혼자 차지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다음에 희 언니나 모자리나 언니랑 시간이 맞으면 한 번 와봐야지.'
하지만 2일과 7일로 날짜를 꼭 맞춰야 하므로 못 먹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속상해하며 돌아서려는 데, 포털 사이트에 올려진 영업시간이 보였다.
'뭐야? 이 집은 2일 하고 7일만 하는 게 아니라 매일 하나 보네?'
장날 이외의 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날은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매일 영업한다고 나와 있었고 일요일은 휴무였다.
나는 다음에 꼭 한번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춘향이네>에서 돌아 나오는 데 오이 파는 집이 보였다. 나는 요즘 오이가 좋아졌는데, 지난번 승마 쫑파티에서 미자 언니가 채소류로 오이를 고르고 글램핑장에서 오이를 깎아줬다. 언니랑 함께 먹다 보니 오이도 꽤 맛있는 채소란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제주 오이 맛을 보고 싶었다. 당근이나 무 같은 채소는 제주산이 훨씬 맛이 좋다. 오이는 어떨지 궁금했다. 여러 야채가게를 기웃거리다가 오이가 꼭지부터 끝까지 균일하게 생겼고, 유독 싱싱함이 느껴지는 가게 앞에 섰다.
주인아주머니는 눈에 아이라인 문신을 새기셨는데, 나는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아주머니의 카리스마 덕분에 아무 말을 못 하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아주머니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장사는 무지 잘되는 집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매력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손님이 계속 들어와서 사람들이 구매를 다 하고 갈 때까지 나는 그냥 뒤에 서 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힐끗 한 번 보고, 살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셨는지 저쪽으로 가버리셨는데, 나는 쭈뼛쭈뼛 한마디 했다.
"오이."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아 아주머니가 못 들으신 것 같았다. 나는 아주머니께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했다.
"오이. 이거."
아주머니는 나를 보시더니 한 말씀하셨다.
"이거는 제주 오이고, 저거는 육지 오이인데, 육지 오이는 하나 더 드려요."
나는 아주머니를 보고 말했다.
"제주 오이."
아주머니는 무서운 얼굴로 빙그레 웃으시며 오이를 담으셨다. 내 오이가 있는 봉투에 자색 양파를 3개나 담아주시며 말했다.
"이거는 익혀서 먹으면 안 되고, 생으로 먹어야 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장을 나오며 나는 왜 말을 그렇게 못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는 카리스마가 있으셨지만, 무려 내게 덤으로 양파를 3개나 더 주셨다. 나는 양파를 생으로 먹는 걸 상상해 봤는데, 오이 깎아 먹으면서 같이 먹으면 되나? 언제 어떻게 먹으면 되나? 모든 게 감이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번에는 농산물을 사면서 덤을 더 받았다는 것이 기뻤다.
이제 찰옥수수만 사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분식집 아주머니가 찰옥수수는 3개에 5천 원이라고 하셨다. 먹어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비싼 건지 싼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사 보기로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5천 원에 덤을 한 개 보태서 4개의 옥수수를 주셨다.
나는 이 시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옷도 예뻤고, 없는 게 없고, 나는 이번에 구매도 잘했으며, 덤도 받았다. 다음에는 희 언니나 모자리나 언니와 이곳에 와서 순댓국도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나 왠지 여기 자주 올 것 같아.'
나는 이제야 사람들이 왜 시장을 찾는지 좀 이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