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승마 수업 쫑파티 날 글램핑장에서

by 김용희

어느덧 이번 학기 승마 아카데미도 끝나간다. 한 학기 동안 우리는 말을 처음 만져보았고, 말에게 고삐를 씌우는 두려움을 함께 견디고, 달리는 말 등에서 우정을 쌓았다. 보통 시작이 어렵지만, 끝내는 일은 더 어려운 법. 인생에서 그냥 하던 대로 계속하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승마 수업의 이별이 아쉬운 우리는 시내 글램핑장에 모여 쫑파티를 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글램핑을 계획한 건 아니고,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했었는데, 우리 승마선생님인 <덜커덩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 7시 반에 끝나는 관계로 괜찮은 식당을 예약하지 못했다. 도민들은 보통 저녁 있는 삶을 살고 있어 식당들도 일찍 마감한다. 선생님께서 술을 못한다고 하셔서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장소를 물색했지만, 술집이 아니면 제주의 식당은 보통 일찍 마감하기 때문에 우린 야영하기로 했다.


"아니, 얼마 만에 하는 야영이야. 꼭 MT 가는 것 같네. 아, 대학 때 생각난다."

나는 마냥 들떠서 재잘거렸다.


"시내 가까이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어?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은 것 같네?"

경제적인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왕언니 송미자 언니가 말했다.


우리가 예약한 글램핑장은 제주대학교 근처에 있는 글램핑장으로 1박에 75,000원이다. 우리는 총 6명이라 인당 12,500원에 밤늦게까지 놀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이 정도 가격이면 시내 롤러 스케이트장보다 싼 것 같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나는 오랜만에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하고 즐겁게 놀 생각에 더 들떴다.


"장을 봐야 하는데, 장 볼 사람들은 오늘 4시에 노형동 하나로마트로 오세요."


우리의 오락 부장 한 때 잘나가는 패셔니스타 혜수 언니가 단톡방에 공지를 남겼다. 나는 특별히 하는 역할도 없지만 잘 노는 사람들은 장을 어떻게 보는지 배우러 따라갔다. 나도 이젠 언니들에게 잘 배워 보고 싶달까?


야영 경험이 풍부한 혜수 언니는 상황을 진두지휘하며 빠르게 장보기를 리드했다.


"수박 사고, 상추 사고, 고기 좀 사면 되고. 광어도 사고... 제 차에 장작은 있고, 숯 좀 사야 하고요. 불판도 대형으로 2개는 갖고 가야 해요."


언니의 빠른 판단력과 손놀림은 가히 멋졌다. 나는 혜수 언니의 이런 시원시원함이 좋다.


"아니, 이게 그건가?"

미자 언니가 남편 김 반장님께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어머니 친구분이 추천했던 그 육회."


얼마 전 미자 언니 어머니는 60년대에 만났다가 헤어졌던 제주 친구를 다시 찾았다. 미자 언니네 집에 처음 놀러 갔을 때 언니는 어머니가 오래전 헤어진 친구를 찾고 있다고 했다. 언니의 어머니와 친구분은 공장에서 만나 함께 어려운 시절을 버텼었는데, 친구분이 고향인 제주로 내려가면서 60년 동안 연락이 끊겼다고. 하지만 얼마 전 미자 언니와 어머니는 신문에서 그분 이름이 적힌 신문 기사를 봤다고 했다.


"용희 씨, 이분 찾을 수 있을까?"


언니는 나에게 신문 기사를 보여줬다. 신문에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폐허로 변해버린 제주 중산간 마을에 지어진 독특한 건축물인 '테쉬폰'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테쉬폰'은 아일랜드 출신 선교사인 맥 그린치 신부가 도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60년대 초부터 한림읍에 목장을 조성하면서 지은 아치형 지붕의 건축물로 주거시설과 창고, 돈사를 단기간에 지을 필요가 있어 고안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 신부님은 도내 7개 지역에 개척 농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테쉬폰 마을'을 세웠고, 이후 ‘테쉬폰’은 제주 공동체 회복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되었다고 했다. 신문 기사에는 예전에 '테쉬폰'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와 있었는데, 인터뷰에 응했던 주민 중 한 분이 언니의 어머니가 찾는 친구분이라고 했다. 60여 년이 흐른 후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친구를 찾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제주니까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제주는 동네 주민끼리 친하기 때문에 만약 그분이 한동네에 쭈욱 살고 있다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기 이름도 나와 있고 이분이 사셨던 동네도 있으니까 거기 가보시면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 주에 어머니 오시니까 한 번 같이 모시고 가보지. 뭐."


결국 미자 언니는 어머니의 친구분을 인터뷰했었던 ‘테쉬폰' 연구자의 도움으로 친구분을 찾았고, 결국 60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함께 우정을 나누다가 '노형 하나로 마트 육회'가 끝내주게 맛있다는 추천을 했던 거였다.


"아니, 그니까 어머니 친구분이 그러시는 데 원래 이 하나로 마트에는 육회 파는 요일이 있대. 그날이 오늘인가 봐. 이게 진짜 맛있다는데? 뭉태기는 1인 2팩만 판다고 하네?"

미자 언니가 말했다.


'뭉태기? 뭉태기가 뭔가?'

나는 뭉태기란 게 뭔지 잘 몰랐다. 그냥 뭔가 고기의 한 종류인가 보다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보통 육회는 자잘하게 써는 데, 이 뭉태기라는 것은 말 그대로 뭉태기로 썰어져 있다.


"이거 맛있을까?"

미자 언니 남편 김 반장님이 말했다.


나도 확신 없이 뭉태기를 보면서 말했다.

"만약에 먹어보고 너무 맛이 없으면 그냥 구워 먹어도 되지 않을까요? 소고기잖아요."


그때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혜수 언니가 말했다.

"이거 먹으려면 고추장이랑 마늘, 참기름이 있어야 해요. 제가 가서 가져올 테니까 2층에 가서 술 고르고 계세요."


우리는 결국 뭉태기와 제주 흑돼지 삼겹살, 목살, 라면, 술, 음료, 마시멜로 등을 사서 장보기를 마무리했다. 역시 평소 레저를 좀 즐겨 본 사람들은 다른 것 같다. 사람들끼리 호흡이 척척 맞아서 빠르게 일이 마무리됐고 나는 그냥 따라만 다녀도 돼서 편했다. 우리는 각자 짐을 나눠 차에 싣고 글램핑장으로 향했다.


글램핑장은 대형 식당 옆에 자리 잡고 있는데, 언뜻 보기엔 그냥 도심 같다.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른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상상 못 한 곳에서 숲이 나온다. 글램핑장 화장실 근처에는 ‘밤에 엄마 노루가 새끼 노루를 찾는 울음소리가 들릴 수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라는 당부의 말이 쓰여 있다. 이곳은 도심이지만 동시에 숲속인 신기한 곳이다.


글램핑장 입구에는 손님들이 예약한 텐트 번호가 표기되어 있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이 8번이네요?"

"어? 거기 번호가 있어?"

"네. 여기요. 혜수 언니 이름이 쓰여 있어요."


우리는 짐을 들고 8번 텐트가 있는 곳으로 갔다. 도착한 곳은 마당이 있는 큰 텐트였는데 안에는 침대와 에어컨 화장대도 있었다. 텐트 앞에는 발코니에 천막이 처져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 놓인 공간이 있고, 발코니를 지나 마당으로 나가면 바비큐를 구울 수 있는 화로가 놓여 있었다.


"여기 좋네."

"이런 데가 있었어?"

"여기 좋은데요?"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감탄했다. 사실 나는 5년 전에 이곳을 알게 되었는데, 한 번 와 본 뒤 또 오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무리 제주에 살더라도 일상에서 일부러 야영장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글램핑장에 들어선 나는 들뜨기 시작했다.


"아, 진짜 좋다. 이런 기분은 대학 때 느끼고, 처음이네."


사람들은 각자가 들고 온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미자 언니가 냉장고 정리하는 것을 도왔다. 언니는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순식간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언니 이게 거기 다 들어가요? 언니 정리 진짜 잘하시네요?"

나는 언니의 빠른 손놀림에 감탄하며 말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인생 경험이 많고 자립심도 강한 것 같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랄까? 말을 강하게 리드하려면 그런 면모가 있어야 하는 것도 같고... 암튼 내게는 부족한 여러 가지 경험을 이렇게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배워나가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


"나 상추 씻어 올게."

미자 언니는 상추를 들고 수돗가로 갔다.


"앗 따가워."

고기를 굽기 시작한 김 반장님이 말했다.


"여기 야외라 벌써 모기가 있네?"


따끔거리는 걸 참으면서 고기를 굽던 김반장 님의 말씀에 어느새 도착한 막내 부부 유진 씨와 도진 씨는 차에 있던 뿌리는 모기 퇴치제를 가져왔다. 사실 나는 가방에 라벤더 오일이 있었고, 그걸 바르면 모기 물린 게 금방 가라앉는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 이곳 분위기와 라벤더 오일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여기 보세요."

사진을 잘 찍는 유진 씨가 말했다.


"유진 씨 사진 진짜 잘 찍는 데, 다들 빨리 서. 유진 씨 사진은 사진작가가 찍은 것처럼 나와."

미자 언니가 말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우리는 캠핑장 앞에 섰다.


"고기 다 구워졌네. 다들 한 점씩 먹어봐."


김 반장님이 말했다. 고기 한판을 굽고 나서 힘이 다 빠져버린 김 반장님은 발코니 한 구석에 철퍼덕 주저앉으셨다.


"숯이 좋아서 불은 잘 붙었는데 타지 않게 굽기 진짜 어렵네."


우리는 김 반장님을 뒤로한 채 우르르 달려가 고기를 맛봤다.


"아니 그니까 이 맛이지."

"음... 진짜 맛있다."


고기 맛에 숯불 향이 입혀져서 맛집 못지않은 풍미가 느껴졌다. 타지 않게 세심하게 구워주신 김 반장님이 고마웠다.


"이제 제가 구울게요."

도진 씨가 팔을 걷어붙였다.


"오빠가 음식을 좀 잘해요.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고."


사이좋은 부부답게 유진 씨가 한마디 했다. 유진 씨와 도진 씨는 평소 도내 관광지도 많이 다니고 맛집도 많이 다닌다.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나중에 도진 씨가 음식점이나 카페 창업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오. 진짜 셰프 등판이네."

미자 언니가 말했다.


나는 셰프가 구워주는 돼지고기 맛은 어떨지 상상하면서 한쪽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우리는 참숯과 번개탄을 같이 사 왔는데, 김 반장님 말씀이 번개탄 덕분에 지금 고기가 잘 익고 있는 거라 했다.


‘다음번 야영할 때는 번개탄은 꼭 챙겨야 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미자 언니가 말을 걸었다.


"용희 씨 책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데?"


나는 가방에서 준비해 온 샘플을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승마팀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혹시나 불편한 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다.


"표지랑 내지 일러스트는 어느 정도 된 것 같고요. 원고를 집에 있는 프린터기로 한 번 뽑아 봤는데, 대략 이런 느낌으로 나올 것 같아요."


"난 지난번 것 보다 이게 훨씬 괜찮은데?"

김 반장님이 말했다.


"지난번 책은 숲에서 동물 만나는 이야기인데요. 그건 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리 이야기를 먼저 내려고요. 승마 이야기."


"지난번에서 내용을 다 바꾼 거야?"

김 반장님의 질문에 미자언니가 말했다.


"승마 이야기가 좀 더 특이하고 사람들 반응도 좋아서 승마를 먼저 내기로 했대."


"언니 그러면 다 다시 쓴 거예요?"

가만히 듣고 있던 유진 씨가 물었다.


"네. 그냥 새로운 책을 다시 썼어요. 승마 이야기인데 지금 단톡방에 책 보낼게요. B 플랫폼에 있어요."

그렇게 나는 단톡방에 e-book 링크를 보냈다.


"이건 뭔데? 우리 선생님 이름이 <덜커덩 선생님>이네?"

종이책 샘플을 보던 김 반장님이 내게 질문했다.


"원래는 <까칠한 제임스>로 하려고 해서 e-book에는 제임스로 되어 있는데요, 고민하다가 좀 더 친근한 게 좋을 것 같아서 종이책에는 <덜커덩 선생님>으로 썼어요."


"뭐야 용희 씨. 나는 제임스가 좋은데. 선생님 이름 제임스로 바꿔줘요."

혜수 언니가 아쉬운 듯 말했다.


"저도 제임스가 좋아요."

옆에서 있던 유진 씨도 말했다.


“뭐야, 덜커덩이 낫지.”

김 반장님은 덜커덩이 좋은 눈치였다. 별안간 글램핑장에서는 선생님 이름을 정하기 위한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가만있어봐. 그러면 이 중에서 제임스가 좋은 사람 손 들어봐."

김 반장님의 정리에 여자들이 모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덜커덩 선생님>이 좋은 사람 손 들어봐."

남자들이 모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정리하자면 여자들은 다 제임스를 좋아하고, 남자들은 다 덜커덩을 좋아하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선생님 이름을 고민하는 사이, 진짜 승마 선생님이 글램핑장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반려견 '뿌꾸'와 함께 왔는데, 나는 선생님이 하얀 진돗개를 키우고 계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작은 개인 줄 몰랐다.


"아니, 얘가 그 선생님 프로필 사진에 있던 그 개 맞아요? 사진으로 볼 때는 커 보였는데, 얘 왜 이리 작아요. 원래 아기였어요?"

"4~5개월 됐어요. 아직 더 커야 해요."

"얘 진돗개 아니에요? 사진으로 봤을 때는 진돗개인 줄 알았는데, 종류가 뭐예요?"

"시바예요."

"아, 시바. 그럼, 그 센터에 돌아다니는 주먹만 한 아기 백 시바가 이렇게 큰 건 아니고, 얘는 또 다른 아이예요?

"다른 아이죠."

선생님이 대답했다.


"나 얘 본 것 같은데? 센터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미자 언니가 말했다.

"우리 수업할 때 건물 옆쪽에 있었어. 가끔 봤는데."


미자 언니는 푸들 두 마리를 키우는 데, 언니네 집에 놀러 갔을 때 본 언니 모습은 꽤 다정다감했다. 그래서인지 언니는 자연스럽게 센터 개들에게도 관심이 있었나 보다. 승마 아카데미에는 동물이 많은데, 마장으로 향하는 입구에서 항상 졸고 있는 고양이 가족이 있고, 가끔 사무실과 마방을 돌아다니는 콜리도 있고, <오늘의 선생님>이 주로 데리고 다니는 주먹만 한 아기 시바도 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키우는 ‘뿌꾸'는 처음 봤다. TV에서 본 시바는 엄살도 심하고 심술궂었던 것 같은 데 '뿌꾸'는 조용하고 얌전했다.


"아, 용희 씨. 선생님 오셨으니까, 선생님한테도 한 번 여쭤봐. 어떤 이름이 좋으신지."

김 반장님 말씀에 선생님은 어리둥절해하셨다.


"아, 제가 책을 쓰고 있거든요. 선생님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선생님은 어떤 이름이 좋으세요?"


"제임스?"

선생님 입에서 제임스가 흘러나왔다.

"거봐 거봐 용희 씨. 선생님도 제임스가 좋다잖아요. 빨리 제임스로 바꿔요."

혜수 언니가 말했다.


"아니, 보내주신 링크에 제임스라고 되어 있던데요..."

선생님은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임스라는 이름은 e-book에 올린 이름이고요... 하나가 더 있는데..."


"뭔데요?"

선생님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내게 물었다.


"그 저기... 덜커덩 선생님이라고요. 선생님을 보면 너무 혼나서 제 심장이 덜커덩 내려앉아서... 덜커덩 선생님이요."


나는 혹시나 기분 나빠하실지 몰라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작가님 마음대로요. 작가의 의도대로 하면 좋겠어요."


'뭐야. 제임스.'


순간 나는 마음의 짐이 좀 내려가면서 안도감이 들었다. 처음 글을 쓰면서 우왕좌왕하는 내게 작가님 '의도대로'라는 말은 영원히 감동으로 남을 것 같았다. 나는 감동한 걸 티 내지 않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이제 선생님은 <덜커덩 선생님>인 걸로요."


그렇게 선생님 이름은 까칠한 제임스 대신 덜커덩 선생님으로 결정됐다.


어쨌든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돼지고기를 구워 먹던 우리는 선생님을 대접하기 위해 소고기 ‘뭉태기'를 꺼냈다. 혜수 언니는 빠르게 양념장을 만들었다.


"저기, 뿌꾸도 뭘 좀 먹여도 될까요?"


혜수 언니는 빠르게 수박씨를 바르며 말했다.

"시바는 수박씨 발라줘야겠네요."


'뭐야 언니 지금 묘하게 웃긴 거야?'


밤은 깊어져 가고, 술잔이 한두 잔 오갔다. 마당에 장작은 타들어 가고, 우리의 우정은 깊어져 갔다.


"언니, 마시멜로 구워 먹을래요?"

유진 씨가 내게 말을 건넸다.


"마시멜로 구워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우리 한 번 해봐요."


우리는 커다란 마시멜로를 꼬챙이에 끼웠다. 동그랗고 커다란 마시멜로가 귀엽게 느껴졌다.


"나도 할래."

"나도 나도"

미자 언니와 혜수 언니도 마시멜로 꼬치를 들고 함께 불 앞에 앉았다.


"제가 사진 찍어 드릴게요."

도진 씨가 핸드폰을 들었다.


"뭐야. 뭐야. 이거 어떻게 굽는 건데?"

미자 언니가 마시멜로를 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 순간 언니의 마시멜로가 불탔다.


"아니, 원래 이거 불붙어요?"


나는 너무 놀라 언니의 성화 봉송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사진이 찍혔고 언니의 마시멜로는 숯 검댕이 되어 있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마시멜로의 맛은 타버린 껍데기를 벗기고 먹으면 달고나와 비슷한 맛이 났다.


"이거 참 재밌네."


나는 사람들이 왜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지 몰랐었는 데 마시멜로 자체보다 그냥 굽는 게 재미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


"김 반장님, 노래 선곡 좀 해주세요. 지난번에 미자 언니네에 갔을 때 김 반장님 노래 덕분에 좋았는데."


내가 처음 미자 언니네 놀러 간 날, 언니는 나에게 집에서 로스팅한 핸드드립 커피를 내주었고. 김 반장님은 잔잔한 노래를 틀어주었다. 두 분의 편안한 분위기 덕분에 나는 5시간 넘게 언니랑 얘기했다.


"그럴까?"


김 반장님 폰에서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왔다.


"역시 선곡은 김 반장님."


나는 잠시 김 반장님이 틀어주시는 음악에 취했다. 우리는 음악과 함께 미자 언니네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와 덜커덩 선생님이 승마를 하게 된 이야기, 도진 씨네 형이 얼마 전 제주도에 놀러 왔던 이야기를 들었다.


"아 맞다. 저 트렁크에 불꽃놀이 있는데."


나는 얼마 전 낮에 함덕 해수욕장을 걷다가 대형 불꽃놀이를 주웠다. 관광객들이 밤에 놀다가 빠뜨리고 간 것 같았다. 바닷가 환경정화 차원에서 주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갖고 있으면 혹시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실어둔 거였다. 여태까지 본 적 없는 대형크기의 스파클라였다. 내가 차에 불꽃놀이를 가지러 간 사이 사람들은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 찍을 준비를 해 놓았다. 내가 돌아오니 누군가 외쳤다.


"용희 씨. 단체 사진 찍게 저기 셔터 누르고 와."


달려가서 셔터를 눌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3초 뒤 사진이 찍혔다. 나는 열심히 뛰어갔는데, 자꾸 머리카락만 나왔다.


"아니, 그럴 거면 선생님이 그냥 우리를 찍어요."

역시 까칠한 제임스가 한마디 했다.


"아니, 그니까 이게 왜 안 되지?"

나는 그냥 이 상황이 너무 웃겼다.


보다 못한 김 반장님이 한마디 하셨다.

"용희 씨. 내가 의자에서 일어날 테니까 빨리 누르고 여기 앉아."


나는 일단 반장님이 하라는 대로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얼굴이 잘 나왔다.


"다음 학기에도 승마 등록할 거지?"

한바탕 기념사진이 끝난 뒤 미자 언니가 물었다.


"저는 할 거예요."

"저도요."

나와 혜수 언니가 대답했다.


"저희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혹시 다음에 제가 일을 할 수도 있고요."

유진 씨가 말했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별다른 할 말이 없었지만, 서로 그냥 자리에 앉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아쉬움이 한 데 섞여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러 마음을 뒤로하고 자정쯤 우리는 헤어졌다.


"언니, 잘 지내요. 나중에 우리 또 만나는 거죠?"

유진 씨가 내 차에 짐을 실어 주며 말했다.


"그럼요. 또 만나야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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