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돈을 아껴 드립니다.

by 김용희

제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화 중에는 조냥정신이 있다. 조냥정신은 절약정신을 말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제주의 조냥정신은 섬이라는 특성상 제한된 자원을 아껴서 함께 나눠 쓰려는 습관에서 형성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화산섬 제주는 토질이 좋지 않아, 농사짓기에 좋은 땅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 예로 특이하게 제주에서는 요즘에도 찰 옥수수를 구할 수가 없다. 나는 찰옥수수가 먹고 싶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해보려 했지만 초당 옥수수만 있고, 찰옥수수는 절대 없는 현상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아는 게 많으신 소산오름 <뽀글머리 어머니>께 옥수수에 대해서 여쭤보기로 했다.


"제주에서 찰옥수수 살 수 있는 곳 없죠? 찰옥수수를 한 박스씩 살 수는 없고, 조금 사다 먹으려고 하는 데 찾아도 도저히 없네요."

"제주에 찰옥수수 없어. 초당만 있지."

"왜 그래요?"

"땅이 안 좋으니까. 찰옥수수 자랄 땅이 아니야. 다른 작물도 다 그래."

"제주 당근 맛있잖아요. 무도요."

"제주 당근도 동쪽 지역에 나는 땅에서만 자라고. 무는 한 철이지."


내가 아는 <귤 밭 하는 언니>도, 원래는 부모님께서 농사에 자신이 있으셔서 '제주에는 논농사가 많이 없으니, 가서 지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이곳에 논농사를 지으러 내려오셨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논농사가 안 돼서 포기하고 밭농사인 귤 농사로 바꾸셨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제주는 먹거리가 귀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좀 신선하게 느낀 게 사람들은 식당에서 음식이 남으면 잘 싸 간다는 점이었다. 싸가는 사람도 싸주는 사람도 거리낌이 없다. 서울에서는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혹은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싸가는 사람도 많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남은 음식을 집에 싸 가는 게 자연스럽다.


농작물이 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작물이 모두 비싸다. 농사가 잘 안 되는 땅이라 많은 작물을 육지에서 수입해 오는 경우도 많아 도선료가 추가되고 그러다 보니 물가도 비싸다. 사람들은 바가지요금이라고 많이 하던데, 바가지도 있지만 도민들도 그 돈을 똑같이 내고 물건을 산다. 관광지에 가면 도민할인이 있는데, 관광지 빼고 일상생활에서의 도민할인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서로 농작물을 나눈다. 농작물이란 게 금방 따서 일정 기간 지나면 다 버려야 하는 데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서로 좋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가 직접 기른 농작물을 줘서 상대방이 건강해지면 그것도 참 좋은 일이고 말이다. 적은 자원이라도 서로 나누다 보면, 서로 상생할 수 있고 그게 제주인의 지혜인 것 같다. 그래서 제주는 상상 그 이상으로 서로 나누고 돕는 공동체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다.


또 다른 조냥정신의 예는 물허벅이라고 하는 데, 나는 사람들이 메고 다니는 걸 본 적은 없지만 박물관에 가면 자세히 볼 수 있다. 불룩한 배에 주둥이가 병처럼 좁은 항아리를 말하는 데, 물이 출렁거려도 흘러넘치지 않게 설계되었다. 예전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것 같은데, 제주 토양은 현무암으로 되어 있어서 빗물이 땅으로 모두 스며들어 바닷가에서 솟아난다. 그래서 여자들은 물허벅을 메고 바닷가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서 물을 길어야 했다고 한다. 어렵게 구한 귀한 물이니만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노력하면서...


어쨌든 이런 이유로 제주 사람들은 아끼는 걸 잘한다. 아끼는 것만 잘하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의 돈도 내 돈처럼 아껴주려 노력한다. 딱히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 때도 종종 그렇게 한다. 그래서 제주 문화를 잘 못 이해하면 불친절하다고 오해할 수 있는 사례가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단골 병원의 간호사 선생님들과 친해진 나는 대상포진에 걸리면 아프니까 좀 맞고 간다고 했었다.


"아니, 그거는 나이 들어서 맞아야 효과가 있지. 지금 맞으면 효과가 없어요. 비싼데 돈 아깝잖아요. 나중에 효과 있을 때 맞아요."


한사코 안 된다고 하셔서 결국 못 맞고 왔는데, 지금 비싼 돈을 써서 효과 없는 주사를 맞느니, 나중에 나이가 되어 효과가 있을 때 주사를 맞으라는 배려에서 하신 말씀으로, 모든 게 대략 이런 느낌이다.


어느 날은 변기 부품이 고장 나서, 수리 아저씨를 불렀다.


"내가 다음번에 또 오면 출장비를 또 받아야 하니까 그럼 너무 미안하니까... 이번에 고치는 김에 변기 2개 다 부품 갈아요. 부품값은 얼마 안 해요."


그렇게 아저씨는 한 번에 변기 부품 2개를 다 갈고 바람과 같이 사라지셨다. 부품은 개당 5천 원, 출장비는 한 번에 2만 원이니까 상대방을 생각해서 2개를 다 가는 게 낫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전부터 제주도는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이 집 뭐가 고장 나면 저 사람이 와서 고쳐주고, 이런 일이 익숙해서 서비스를 해주고 돈 받는 걸 유독 미안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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