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맛집

7. 모자리나 언니가 검색해 본 '달그락식탁'

by 김용희

"용희, 너 호옥시 목요일 3시에 일 있어?"

모자리나 언니의 메시지였다.


요즘 나의 목요일은 매우 한가롭다. 나의 일주일 중 가장 자유롭고 편안한 요일이 목요일이랄까?


"없어요. 왜요?"

"호옥시 설명회 갈래? 혼자 가긴 뭐해서 물어본 거."


혼자 가기 뭐하다는 언니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언니는 부끄러움이 많고 남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아마 누군가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하는 것도 싫고, 그곳에 가는 것도 부끄러운 데 그나마 좀 편한 내게 어떻게 할지 한번 물어본 걸 거로 생각했다.


나는 언니가 어렵게 말을 꺼냈을 거로 생각하고 몹시 어려운 자리 아니면 언니와 함께 가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뭐, 특별히 나와 관련은 없지만 설명회가 하루 종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눠준 자료에 필기하다 보면 시간은 빨리 가겠지.'


"저랑 상관없긴 한데, 그냥 갈게요. 언니, 가시면 같이 가요."


그렇게 나는 나랑 전혀 관련이 없는 설명회에 모자리나 언니와 참석하기로 했다.


"면목 없지만, 내 차가 고장이 나서, 우리 용용이 차 타고 가야겠다. 언니가 대신 밥 살게."

언니는 나와 관련 없는 설명회에 가자고 하고 차까지 태워달라는 게 미안한 눈치다. 나는 요즘 운전하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아 운전은 뭐 크게 상관없다. 언니는 요즘 나를 강생이* 대신 용용이로 부르고 있는 데, 사실 용용이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 나를 부르던 별명이다. 어른이 되어 제주에서 만난 언니를 통해 들으니 용용이가 왠지 더 친근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약속 날 아침 언니는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니까 점심은 여기서 먹고, 차는 여기서 마시고, 설명회 장소는 여기."


언니는 각각 3곳의 주소를 링크로 첨부했다.


"언니, 그러면 1시에 첫 번째 장소에서 만나요?"


"응, 1시까지 와."


언니가 보낸 첫 번째 장소는 <제주시 아라일동 6134-4>에 위치한 '달그락 식탁'이었다.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음식점 사진을 찍고 들어갔다.


"아니, 분명히 네 차가 오는 걸 봤는데,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어? 어디 갔다 온 거야?"

"언니, 저 요즘에 인★ 하잖아요. 저 인플루언서가 꿈이라 가게 앞 사진 좀 찍고 왔어요."


나는 언니에게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아휴, 우리 용용이 때문에 미치겠네. 너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잖아? 무슨 인플루언서야? 디지털도 모르는 네가 SNS를 한다는 것도 기적인데..."


"언니, 그니까 여기 이 앱으로 제 얼굴 좀 찍어주세요."


나는 일단 언니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언니는 조용히 받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근데 카메라를 의식하지 말아야지. 카메라만 대면 사진이 이상한데?"


"아니, 그러니까요. 언니가 찍어 주니까 제가 어쩔 줄 몰라 죽겠네요."


"야야, 넌 안 되겠다. 인플루언서 한다는 애가 표정이 왜 그래?


내가 봐도 영 어색하다. 우린 그렇게 적당히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나는 언니의 사진도 찍었다.


"야야, 어떻게 네 사진보다 내 사진이 더 잘 나오냐?"

내가 봐도 언니 사진은 눈도 땡그랗고 예쁘게 나왔긴 했다.

"하다 보면 언젠간 되겠죠. 인플루언서."

나는 그냥 아무 말이나 했다.


"음식은 내가 시켰어. 돈가스랑 제육 백반. 이 집의 대표메뉴야."

언니가 말했다.


"언니, 이 집은 또 어떻게 알았어요? 저 처음 와보는데?"


나는 큰길에서 골목 쪽으로 들어온 이 집이 사람들 눈에 띄긴 어려운 것 같은데, 언니가 나를 초대한 게 좀 의외라서 말했다.


"내가 또 우리 용용이랑 오려고, 엄청나게 검색했잖아. 내가 남자랑 와야 하는데, 왜 너랑 이러고 있냐고."

언니는 갑자기 어지럽다는 듯 말했다.


"제가 남자친구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오늘 아침에 보니까 약간 긴 머리 남자 같아 보이기도 하던데?"

난 신경을 많이 쓴 언니에게 좀 미안한 마음에 내 특기인 아무 말하기를 시전 했다.


오늘 우리가 방문한 '달그락 식탁'은 제주 식재료를 이용해 정갈한 가정식을 선보이는 곳이다. 예전에는 함덕에 있었다고 하는 데, 최근 아라동으로 이전해서 오픈했다고 한다. 300시간 숙성한 흑돼지 등심 돈가스와 흑돼지 앞다리살로 과일 숙성해서 불 맛나게 볶아주는 제육볶음이 이 집의 대표메뉴라고 했다. 인테리어는 깔끔한 우드톤으로 되어있고, 은은한 전구색 조명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는 벽 곳곳에 진열된 그림 액자들도 예쁘다고 생각했다.


"인플루언서 하려면 이런 것도 찍어야지."


언니가 가리킨 벽을 보니, 하얀 천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일단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포털 사이트 검색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 그림이 예전 함덕에 있을 때 매장 전경이라고 했다.


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음식이 나왔다.


제육볶음이 먼저 나오고, 7가지 반찬이 나왔다. 쌀밥과 묵 국도 나왔다. 돈가스는 주인공답게 맨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이제 먹어도 돼?"

밥상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언니가 물었다.


"네네."

사진도 잘 못 찍는 데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이러고 있는 내가 좀 짠했다. '그래, 일단 먹고 생각하자.' 나는 인플루언서의 꿈은 잠시 접고, 언니랑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 돈가스는 고추냉이를 찍어 먹어야 해."

"그럼 겨자의 용도는 뭐예요?"


내 질문이 너무 복잡했는지 언니는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나는 겨자의 용도는 돈가스 소스에 섞는 거로 생각했다. 일단 겨자는 그냥 두고, 고추냉이를 돈가스 윗면에 올린 뒤 돈가스 뒷면에 소스를 찍었다. 한 입 깨무는 순간 육즙과 어우러진 고추냉이 맛이 어우러졌다.


"맛있지? 나는 원래 돈가스 별로 안 좋아하는 데, 얼마 전에 고추냉이와 함께 먹는 돈가스를 알게 된 후로 계속 먹고 있어. 이렇게 먹으니까 괜찮지 않아?"

모자리나 언니가 내게 물었다.


"진짜 맛있는데요?"

나는 돈가스에 고추냉이 범벅을 하며 답했다. 원래 초밥을 좋아해서 코끝을 쨍하게 울리는 고추냉이에 익숙한데, 돈가스에 발라서 그런지 초밥을 먹을 때처럼 쨍한 느낌은 나지 않았다. 이렇게 먹으니까 느끼함도 잡아주고, 고추냉이도 너무 맵지 않고 좋은 것 같았다. 언니와 나는 가게에서 준 고추냉이를 다 먹고, 고추냉이를 조금 더 달라고 했다. 돈가스도 제법 많이 남아있어서 고추냉이가 더 필요했다. 아무래도 우린 입맛이 비슷한가 보다.


고추냉이가 잔뜩 묻은 돈가스를 다시 한 입 베어 먹는 데, 튀김옷이 팍 벗겨져 나갔다. 나는 벗겨진 튀김옷을 상에 내려놓았다.


"아니, 너 지금 돈가스 옷 벗긴 거야? 이게 뭐야. 다 먹어야지."


언니가 나를 놀리느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언니의 말에 나는 다음 돈가스 조각부터는 튀김옷까지 깔끔하게 다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왕 언니가 초대한 건데,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게 다이어트를 가르쳐주는 날씬한 언니가 보면, 돈가스는 먹을 때 튀김옷을 다 벗겨야 한다고 펄쩍펄쩍 뒤겠지만, 나는 날씬한 언니는 잊고 오늘 모자리나 언니와 함께하는 시간에 그냥 충실하기로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 와서 점심을 먹는 여자분들이 많았다. 이 집은 여자 혼자 와서 점심 먹기 좋은 집인가? 손님들의 모습이 어떤지 살펴보니 한국인인데 머리를 금발로 탈색하고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분이 보였고, 옆 테이블에는 운동복 상의에 레깅스를 입고 헤드폰을 쓴 여자분이 보였다.


‘저마다 개성이 독특하고 아티스틱한 사람들이 오는 곳인가 보네. 연인들이 데이트할 때 특별한 분위기를 원하면 한 번 와도 좋겠다.' 주변 손님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변을 살피다가 제육볶음도 한 점 먹었다. 얇게 썬 돼지 앞다리살의 질감이 느껴졌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제주에 와서 경험해 보니, 돼지는 앞다리살이 맛있는 것 같다.


제주에는 종종 마트 축산코너에 가면 아주 얇게 썬 돼지 앞다리살을 판다. 보통 '불고기용'으로 명시되어 있는 이 고기는 다른 고기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쫄깃한 식감도 좋다. 원래 고기의 '불고기용'은 대부분 양념해서 먹는 용도인데, 나는 '불고기용'을 사다가 과감히 그냥 구워서 소금을 약간 뿌린다. 제주도의 고기가 신선해서 그런지 간단히 구워 먹어도 크게 비리지 않고 좋다.


나는 다이어트를 조언해 주는 날씬한 언니를 만난 후 양념에 재운 고기는 피해야 한다는 말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제육볶음은 익숙한 질감의 쫄깃한 앞다리살에 살짝 입혀진 양념 맛이 좋았다.


원래 제육볶음에 후춧가루를 많이 뿌리면 뒷골이 확 당기는 데, 불편한 후추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좋았고, 과일로 고기를 숙성해서 그런지 뒷맛에 쨍하게 느껴지는 설탕 맛이 없는 것도 좋았다. 양념이 너무 세면 물도 많이 먹히는데 적당해서 물도 별로 먹히지 않았고 속도 괜찮고 부대낌도 없었다.


"언니, 제육볶음도 맛있네요."


"괜찮네. 처음 오는 집은 어떨지 잘 몰라서 신경 쓰이는 데, 너랑 와서 다행이다. 너는 뭐 맛없어도 괜찮다고 할 거니까... 내가 부담 없잖아."


"그렇죠. 제가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 않으니까요."


"어떤 집은 돈 내고 먹는 데, 내 음식보다 못하면 속상한데 여기 좀 괜찮네."


"맞죠. 그래서 전 언니만 따라다니잖아요."


난 함께 나온 샐러드 반찬과 도토리묵 국도 좋았다. 나는 원래 묵 국을 좋아해서 종종 집에서 해 먹기도 하는데, 이렇게 적은 분량에 한 끼 먹을 만큼 주는 게 좋았다. 국그릇을 들고 국물을 원샷하다가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는 묵 국을 원샷하는 나의 터프함에 놀란 듯하다. 우리는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음식값은 각각 만원에 부가세가 붙는 듯했다.


"언니, 이제 어디로 가요?"

“이제 두 번째 코스로 가야지. 커피 마시러.”


나는 언니가 보내준 두 번째 주소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시동을 켰다.



* 강생이: 강아지의 제주 방언


<달그락식탁>

아라일동 6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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