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 맛집

8. 모자리나 언니가 가고 싶던 프로방스 '그루카페'

by 김용희

"여기 카페 지나다니면서 많이 봤었는데... 혼자 들어가긴 뭐해서... 너랑 같이 들어가 보려고."

두 번째 행선지로 향하면서 모자리나 언니가 말했다.


"소산오름 쪽 같은데요? 여기 전부터 공사하던 곳인데... 타운하우스 아니었어요? 전 여기 너무 오래 지어서 부도난 타운하우스인 줄 알았는데요..."


"그래? 타운하우스였어? 난 카페인 줄 알았는데?"


나는 언니가 보내준 링크에 있는 <제주시 아라일동 385-12>로 차를 몰았다.


"저쪽이 주차장이네."

언니의 말에 나는 카페 건너편 공터에 차를 세웠다.


"여기 좋지 않니? 산도 있고, 근교로 나온 것 같고..."


"언니 저 여기 진짜 자주 와요. 제 놀이터 삼의악 오름. 어제도 비 오는 데 뛰어가서 수국 찍고 왔어요."


"야. 너는 이럴 때는 '언니 좋네요. 놀러 나온 것 같아요.' 해야지. 너 언니가 신경 써서 데려왔는데..."

나는 차에서 내리며 아차 싶었다. 내가 너무 센스가 없었다.


"알았어요. 아니 이렇게 멀리 나오니 공기가 다르네."

나는 이곳에 처음 도착한 때로 시간을 되돌린 듯 능청스럽게 말했다.


"하하하"

내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언니는 먼저 카페로 들어갔다.


나는 언니를 뒤따르면서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지나가면서 자주 봤던 곳인데, 공사가 너무 오래 진행되어 난 여기가 미분양된 타운하우스인 줄 알았다. 아니면 처음에 타운하우스로 지었는데, 건물이 미분양되어 새 주인이 인수하면서 카페로 변경한 건가 싶기도 했다. 방치되던 건물에 갑자기 카페라니? 이 건물에 어떤 사연이 있을지 시작부터 궁금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카페로 들어가려다 하트로 조경된 나무가 귀여워 사진을 찍었다. 모자리나 언니가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도 덩달아 자연스럽게 나왔다. 건물이 다른 건물보다 상대적으로 작아 언니가 카페 문에 꽉 낀 것처럼 나왔다.


'뭐야? 사진이 꼭 스머프 마을로 들어가는 것 같네.'


카페로 들어서니, 원룸 정도 크기의 공간이 나왔다. 이 작은 곳이 다 인가? 카페로 쓰기에는 너무 작았다. 카페 왼쪽으로 카운터가 있었고 오른쪽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창가 옆으로 바(bar)로 된 테이블이 있었고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가 놓여있었다. 창문은 3개였는데 좌석은 창문 하나당 2개씩 놓여 총 6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서오세요."

분홍 옷을 입은 예쁜 사장님이 우리를 반겼다.


"언니 제가 살게요."

언니가 내게 밥을 샀기 때문에 커피는 내가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야. 됐다. 커피까지는 언니가 사야지."


나는 오늘은 상황상 그냥 모자리나 언니에게 대접받는 게 나을 것 같아 뒤로 물러섰다. 어쨌든 그래야 부탁한 언니 맘이 편할 테니까.


"너는 뭐 마실 거야? 너 커피 끊었다며?"


나는 한동안 1일 1잔의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시다가, 날씬한 언니를 만나 1일 1~3잔의 아메리카노로 바꿨다. 그러다 문득 커피가 피부를 너무 건조하게 만든다는 걸 깨닫고, 커피를 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문제는 피부는 촉촉하게 돌아오고 있었지만, 머리는 점점 더 '멍'해지고 있단 것이었다. 점심식사 후 문득 커피가 당길 때, 딱 마시면 머리가 쨍하게 돌아오는 그 느낌이 있는데, 마시지 못하니까 금단현상에 시달려 며칠째 '맹'한 상태로 돌아다니는 중이다.


"내가 너랑 같이 오려고, 네가 마실만한 걸 검색해 봤지. 이 집은 장미하고 백향과로 만든 '장미살롱'도 좋을 것 같고, 석류로 만든 '핑클루비'도 좋을 것 같더라."


미리 고민해 준 언니의 정성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메뉴판을 살펴봤다. 메뉴판에는 아메리카노 5,000원, 카페라떼 5,500원, 우도땅콩크림라떼 7,000원, 아몬드크림라떼 7,000원, 국화차 5,500원, 히비스커스차 5,500원이라 적혀 있었고, 장미와 백향과로 만든 장미살롱, 석류로 만든 핑클루비, 파인애플로 만든 파인땡큐, 청포도로 만든 리얼봉봉과 허니브레드는 모두 6,500원이라고 쓰여있었다.


나는 '우도땅콩크림라떼'도 당겼다. 하지만 이곳에서 한순간의 달콤함에 이끌려 전반적인 몸의 혈액순환 및 건조한 피부를 바꿀 수는 없었다. ‘참자.' 나는 다른 메뉴들도 고려해 보기로 했다.


나는 히비스커스를 마실까도 고민해 봤다. 커피를 끊고 요즘 나는 히비스커스차를 즐겨 마시고 있는데

히비스커스를 마시면 잠시 머리가 쨍한 느낌이 들어 좋아한다. 아마 미네랄과 구연산이 들어있어서 그런 것 같다. 대부분 히비스커스는 티백으로 나오는데 이곳에서 마시는 건 밍밍하고 재미없게 느껴졌다. 이곳은 사장님의 센스를 담은 커스텀 메이드 음료가 많은 데 기왕 왔으니,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그니쳐 메뉴를 맛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장미살롱'이요."

여러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장미살롱'은 특이한 메뉴 중 가장 먼저 쓰여 있고, 다른 곳에서 많이 못 보던 차다. 카페에서 장미차를 파는 곳은 요즘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석류도 있는데?"


‘석류?’ 언니의 말에 내가 석류 차를 마신 적이 있나 생각해 봤다. 나는 곧 시중에 판매되는 석류 주스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석류는 다른 데서도 마실 수 있으니까 장미로 선택할게요."


언니는 좋은 선택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언니는 곧 사장님을 보며 주문했다.

“저희 '장미살롱' 하나 주시고요.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한 잔 주세요."


주문하는 동안 나는 뒤로 돌아 카페에 진열된 레이스 커튼과 아기자기한 미니어처 사진을 찍었다. 레이스 커튼은 진짜 딱 내 스타일이다.


주문받으며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원래 저희 손님들은 야외에서 많이 마시고 가시는 데, 오늘은 옆 땅에 공사를 하고 있어서 야외 좌석에 손님이 없어요. 한데 지금 2번 방에도 사람이 있고, 3번에도 있고, 4번에도 있는데요..."


'여기, 뭔데? 2번, 3번, 4번? 이 건물 뒤로 있는 건물들 다 카페로 쓰는 건가?"

내가 공사 중 타운 하우스라 생각했던 다른 건물들도 모두 카페로 이용되고 있는 눈치였다.


"저희 한 번 둘러보고 결정할게요."

부동산을 보러온 재벌 사모님처럼 모자리나 언니가 말했다.


'여기 집보러 온 느낌은 뭐지?'


나는 언니와 건물을 살펴보기로 했다. 전에 친구와 파주 프로방스 마을에 놀러 간 적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풍겨오는 이곳 분위기가 프로방스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물론 이곳은 규모가 훨씬 작지만, 개인이 하는 곳이란 걸 감안하며 부지가 넓은 편이었다. 아기자기해서 나름대로 귀여운 맛도 있었다.


건물 하나는 작은데 부지가 넓고 건물이 많았다. 화장실과 실외 테라스까지 포함해서 건물은 총 5동이 넘었다. 주황색 벽돌과 하얀 벽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낮은 건물에 놓인 나무 테이블이 스머프 마을에 온 것처럼 느끼게 했다. 곳곳에 걸린 레이스 커튼, 말을 형상화한 작은 목공예품, 6월의 장미와 조경으로 동그랗게 잘 이발 된 화이트핑크셀릭스가 예뻤다.


"여기가 외부 좌석인 것 같고, 저기가 화장실인가 보네."

언니의 말에 나는 건물 사이사이를 걸어봤다.


"2번 건물에는 테이블이 2개 들어가네요."

2번 건물에는 성격 좋아 보이는 아저씨 2분이 대화하고 있었다. 만약 둘러보고 자리가 없다면 그 옆 테이블에 앉아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튼튼해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가 맘에 들었다. 뒤로 돌아보니 외부 테라스가 보였다.

"옆 땅에 지금 포크레인 파고 있어서, 여기 외부 좌석에 앉지 못한다고 한 것 같아요."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화장실을 지나 우리는 다음 건물로 향했다. 길이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다시 2번 건물 사이로 지나가야 다음 건물로 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설계가 진짜 특이하네.'

이곳은 정말 어디서도 보지 못한 공간 설계였다.


다음 3번 건물은 앞에 있는 다른 건물보다 조금 컸다. 문이 2개 있었는데, 한쪽 문을 들여다보니 캔들과 아로마 오일을 조향하는 공간이 보였고, 다른 쪽 공간은 카페로 이용중이었다. 호기심에 카페 쪽 문을 열어보니 테이블 2개가 놓여 있었고, 안쪽 테이블에 아주머니 3분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3분과 눈이 마주쳤다. 여기 들어오면 가만 안 두겠다는 싸한 눈빛이 느껴졌다.


나는 차마 공간을 다 구경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언니는 바닥에 놓여 있는 하트 벽돌에 심어진 풀을 찍고 있었다.


"나 하트 별로 안 좋아하는 데 앞으로는 사랑에 빠질 것 같아."


부동산 보러온 사모님 모드에서 소녀 감성으로 다시 패치한 모자리나 언니와 함께 카페 곳곳을 찍었다. 평화롭고 행복했다.


언니는 나의 인플루언서 꿈을 도우려고 사진을 찍는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찍어주려 했다. 하지만 왠지 언니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몸이 굳어 버렸다.


"야. 너 진짜 똥폼 잡지 말고, 자연스럽게 좀 해봐."


언니의 말에 몸은 더 삐그덕거렸다.

'휴. 인플루언서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언니, 이건 뭔데요? 엄청 귀엽다."


나는 바닥에 심어진 나물 같은 꽃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하얗고 작은 꽃이 바닥에 쫙 깔려 있어서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름 있는 꽃들보다 이렇게 작고 이름 없는 꽃이 순수해 보이고 좋다. 나는 풀꽃에 취해 계속 사진을 찍어 댔다.


"가만있어봐."

언니는 앱을 이용해서 식물의 이름을 알아냈다.


"이 꽃 이름이 '개모밀덩굴'이래. 아래쪽은 덩굴 형태로 뻗어가나 보지?"

나는 언니의 이런 디지털을 잘 다루는 모습에 진심 반할 것 같다.


"야야. 우리 것 나왔다."

언니 손에 들려 있는 진동벨이 마구마구 울려댔다.


우리는 처음 들어섰던 1번 건물로 갔다. 사장님이 창문으로 음료를 내주셨다.


'저 모습 참 재밌네. 건물 옆 창문으로 음료 내주는 거. 가게 놀이 하는 것 같잖아.‘


"저희요. 그냥 여기서 마실게요."


나의 동의 없이 언니가 말했다. 나는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들이 있는 2번 건물의 옆 테이블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 하지 않는 언니가 싫어할 것 같아 그냥 1번 건물에 있기로 했다. 이곳은 동그란 머리에 목공예로 된 간이의자가 놓여 있어서 영 의자가 불편해 보였지만 언니가 30분만 있다가 가자고 해서 큰 문제는 안 될 거로 생각했다.


"네가 들어."


불현듯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의 말에 따라 내가 옮겨야 할 쟁반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옮기기 힘들 것 같았다.


쟁반은 손잡이가 달린 나무도마 위에 플레이팅용 브레드 도마 2개를 올려 그 속에 홈을 파고 컵을 넣어 놓았다. 그러니까 내가 들어야 할 것은 손잡이가 달린 나무 도마, 그 위에 놓인 플레이팅용 브레드 도마 2개 또 그 위에 음료가 든 컵 2개,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신 백설기 떡 2개까지... 곧 떨어질 것 같은 게 겹겹이 쌓여있고 이 정도면 옮기기 난이도 거의 최상이다.


"언니, 저 이거 엎을 것 같아요."


나는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전에 아버지께서 음식물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고추장 그릇에 가득 담겨있던 음식물 쓰레기였다. 딱 보는 순간 '아, 이건 내가 엎을 수 있다.'라는 예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설마 이걸 엎을까?'하며 아버지께 들고 가 보았지만, 거실 한가운데에 진짜 엎었었다. 아버지도 아마 '쟤가 엎을 것 같은 데 설마 저걸 엎을까?' 하는 생각으로 보고 계시다가 역시나 엎은 후로 아버지께서는 음식물 쓰레기는 직접 처리하셨다. 이 멋진 음료 플레이팅을 보고 있자니, 난감하셨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내가 이 집에서 이걸 엎으면 모자리나 언니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가방 들고 있는데?"

망설이는 나를 보며 언니는 말했다. 언니의 손을 보니, 하얗고 무거워 보이는 가방이 손목 감겨 있었다. 저 상태로 이 위험한 쟁반을 나르기에는 언니가

엎을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에이, 모르겠고 그냥 내가 가져가야겠다.'

나는 혹시 진짜 여기서 이걸 엎으면 끝이라고 생각해서 조심조심 제대로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옮겼다.


"저쪽이 우리 집 포토존이에요."

사장님은 안쪽에 있는 창가를 가리켰다.


나는 다행히 쟁반을 잘 옮겼다. 쟁반을 창가에 두고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찍었다. 언니는 그냥 옆에서 쓱쓱 사진을 찍었다.


"내가 찍은 것 봐봐."


언니는 사진을 보여줬는데, 구도가 멋졌다.


"뭐예요? 언니 사진 잘 찍어요? 예쁜데요?”

"야. 내가 너랑 같은 줄 알아? 이래 봬도 언니 미대 나온 여자야. 너랑 급이 같겠니?"

모자리나 언니는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역시 배운 여자는 다르네요."

"그럼, 우리는 그냥 쓱쓱 찍어도 구도가 다르지."

"언니도 인★ 해요?"

"나는 그런 거 안 해"

"그럼, 언니. 저 인플루언서 돼야 되니까 그 사진 다 저한테 보내주세요."

나의 말에 순순히 언니는 50여 장의 사진을 내게 전송했다.


"알았어. 이 언니의 힘으로 우리 용용이를 인플루언서 만들어줘야지."


언니는 평소 언행이 까칠해서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안들어줄 것 같은 데도, 이렇게 말하면 또 순순히 들어준다. 언니는 빠뜨린 사진이 있을세라 꼼꼼히 점검해서 사진을 보내줬다. 나는 이 언니의 까칠함과 순수함 이 둘을 넘나드는 아찔한 매력이 좀 재밌다.


"아까 이 명함 받았는데, 여기 친구들하고 와야겠다."

언니는 내게 명함을 보여줬다.


”근데 여기는 4월부터 10월까지만 한대. 우리 오늘 좋은 날 왔다."


나는 명함 사진도 찍었다. 사진 찍으면서 나는 이곳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누가 왜 이런 건물을 지었고, 대체 왜 11월부터는 영업을 안 하는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나는 사장님께 직접 질문하기로 했다.


"사장님, 여기요. 원래 타운 하우스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저희 남편이 설계하고 저희가 지은 거예요. 근데 너무 오래 공사해서 그렇게 느끼셨을 수도 있어요. 5년 동안 공사했거든요."

“아, 5년 동안 공사하신 거예요?”

나는 그제야 이곳이 그동안 미분양된 타운하우스처럼 보였던 게 이해가 갔다.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처음부터 타운하우스가 아니라 여기를 카페로 설계하신 거예요?"

"네. 그렇죠... 저희가 지은 거니까요."

"부지가 엄청나게 넓던데요?"

"네. 저희가 땅을 샀는데 사고 보니까 부지가 너무 넓어서 건물을 이렇게 짓기로 한 거예요. 예전에는 목공도 했었는데 지금은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못 하고 있어요."

"혹시 여기 여름에는 건물 하나당 다 에어컨을 켜나요?"

지금은 선선해서 문 열어 놓으면 시원하고 좋은 데, 여름에는 어떻게 운영하는지 문득 궁금했다.

"그럼요. 그렇게 해야죠."


"혹시 도민이세요?"

나는 결정적인 질문을 날렸다. 이쯤 되니 이분들이 제주 실정을 잘 아시는 분인지 아니면 우연히 이곳에 터를 잡은 외지인인지 궁금해졌다.


"네, 저희 토박이.“

사장님은 당황해서 대답하셨다. 토박이 도민에게 도민이냐고 물어보는 외지인 클래스.


"저도 토박이예요."

모자리나 언니가 뒤에서 소리치는 게 들렸다. 역시 언니는 센스가 빠르다. 언니의 말에 사장님은 말씀을 이어갔다.


“저희 겨울에는 농장도 운영해요. 그래서 11월부터는 문을 닫아요."

나는 그제야 왜 이 카페가 11월부터 문을 닫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겨울에 눈이 오면 길이 다 얼어버려서 카페 문을 닫는 것도 괜찮은 선택 같았다.


"근데 건물을 이렇게 나눠서 지으시면 청소하기 힘들지 않으세요? 그냥 쫙 이어진 건물보다는 손이 훨씬 많이 갈 것 같은데요? 조경도 잘 되어 있는데 그것도 다 가꾸려면 눈코 뜰 새 없으실 것 같아요."


나는 보통 사람이 손 대기엔 일의 양이 어마어마할 거로 생각하고 사장님께 말을 건넸다. 예쁜 사장님의 얼굴이 금방 울상이 되었다.


"힘들어요. 일 장난 아니에요. 밥도 못 먹고. 이러고 있잖아요."

"그래도 지금 이 일이 막 싫어서 하시는 것 같진 않아요. 얼굴이 좋아 보이세요. 진짜 싫어서 하시는 분들 보면 얼굴에 다 티가 나요... 그나저나 사장님 엄청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저쪽 뒤에 가니까 아로마 가게도 있던데요."


"그건 저희 시누이가 하는 건데, 지금은 출타 중이에요."

"그렇군요."


사장님은 평소에 걱정하던 게 있으신지 말씀을 이어갔다.


"저희 여기 노키즈 존으로 운영하고 있거든요. 아이들 오면 벽돌 바닥으로 되어 있어서 많이 다쳐요. 계단에서 넘어지고 막 까지고... 저도 아이를 키우는 데, 제가 아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예요. 요즘은 노키즈 존에 대한 비난도 많잖아요."

사장님은 노키즈 존 운영이 마음에 걸린 듯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래도 노키즈 존을 좋아하는 어른도 많으니 괜찮아요."

나는 때론 시끄럽고 정신없는 분위기를 싫어하는 어른들도 많기에 사장님을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다.


나는 사장님과 마저 대화를 나누고 자리로 돌아왔다. 언니는 뭔가 핸드폰을 하고 있어서, 나는 셀카를 찍었다.


"너, 지금 나 찍는 거 아니지?"

핸드폰을 쓰다가 언니가 물었다.


"저 찍어요."

"야, 너 그만 찍어. 잘 찍지도 못하는구먼."

"언니 근데 제 사진이 중국 사람 처럼 나와요."

나는 언니에게 사진을 보여줬다. 지금 바람이 창을 스치고 지나가서 머리가 싹 날릴 때 찍으면 예쁠 것 같았는데 계속 잘 안됐다.


"아니, 그러니까... 요즘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오는 필터를 걸어서 사진을 찍고 거기서 또 포토샵으로 보정해야 하는 거야."


이 언니 설마 과외받나? 언니는 어디서 이런 정보를 다 얻는 걸까? 나는 언니가 존경스러웠다. 언니 말대로 자연스러운 필터를 걸어 사진을 찍었지만, 그냥 나는 과하게 보정된 사진이 더 맘에 드는 것 같았다.


"커피나 마시자."

언니의 말에 비로소 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한 입 마시고 생각해 보니 장미차가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탄산과 백향과가 들어간 장미 에이드가 나왔다. 나는 평소 탄산은 거의 마시지 않아서, 당황스럽긴 했자만, ‘요즘은 날이 더워졌으니까 한 번쯤 마시는 것도 좋겠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커스텀 메이드 메뉴에도 모두 탄산이 들어가는지 궁금해졌다.


언니랑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떠날 시간이 되었다.


"언니, 저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나는 화장실이 있는 건물로 갔다. 화장실도 따로 한 건물로 되어 있었고 문을 여니 디퓨저에서 화이트 머스크 향이 났다.


'이게 그 시누이분이 만든 디뷰저인가 보네. 향이 꽤 좋다. 이 집 분들은 다 센스가 있고 손재주가 좋으신가 보네'


화장실 문에는 '바람에 문이 파손될 수 있으니, 문을 잘 닫아주세요.'라고 쓰여있었다. '역시 바람이 많은 제주도답다.'고 생각하며 문을 여는 데, 진짜 문이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다. 뭔가 문이 나 있는 방향과 바람의 방향이 오묘하게 맞아 문이 날아갈 수도 있는 각도인가 보다.


나는 돌아가는 길에 건물 사이의 미로를 빠져나가기 귀찮아서, 1번 건물의 뒷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문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니, 왜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놀란 사장님이 말을 거셨다.


"언니, 어디로 갔어요?"

"방금 뒷문으로 나가셨는데요?"

나랑 언니는 서로 만나기 위해 건물을 빙글빙글 돌았나 보다. 뒷문에 나가보니 언니가 보였다.


"너 어디 갔었어? 여기서 기다렸는 데?"

"이쪽으로 돌아서 정문으로 들어갔죠."

암튼 우리는 다시 만나 카페를 나왔다.


"언니, 여기 오니까 멀리 나온 것도 아닌데 근교에 놀러 온 것 같아요."

"그치? 나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니까."


"담에는 우리 다른 데도 가봐요."

"그래, 그러자. 여기 참 좋았다."


나는 언니가 오늘이 좋았다고 하니 기뻤다. 나는 다음 일정인 나에게 필요 없는 설명회 장소로 향했다. 밥과 차를 대접받았기 때문에 졸린 걸 무릅쓰고 최대한 열심히 필기했다. 언니가 멍때리고 있을 때는 슬라이드 사진도 찍어서 언니에게 보내줬다. 나오면서 언니가 한마디 했다. 나는 언니가 내게 감사 인사를 할 거로 생각하고 귀를 기울였다.


"있잖아. 너 혹시 2년 후에 시간 되니? 나 여기 오늘 잘못 온 거 같은데? 2년 있다가 왔어야 할 것 같아. 2년 후에는 너 바빠질 수도 있지? 우리 또 와야 할 것 같은데... 나 너 예약할게."


나는 언니가 넘 웃기고 오늘의 기억이 좋았으므로 언니에게 흔쾌히 그러자고 말했다.



<그루카페>

제주시 아라일동 385-12

4월~10월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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