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감수성’은 더 이상 사적인 취향이나 정서적 민감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성숙도와 문명의 방향을 가늠하는 핵심 기준이며, 한 국가가 진정으로 선진국인가를 판별하는 결정적 잣대다. 인지감수성은 국민총생산보다 그 사회의 질서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국방력보다 더 오래 공동체를 지탱하는 구조적 힘이다. 이는 타인의 존재와 경험에 대한 시스템적 반응 능력이며, 문명의 내면을 구성하는 가장 깊은 토대다.
인권을 감지하는 인권인지 감수성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인종·민족 감수성은 타인의 역사와 문화를 하나의 동등한 존엄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성인지 감수성은 일상에 스며든 권력 비대칭을 알아차리게 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지감수성은 말없는 고통의 구조를 외면하지 않게 만든다. 생태인지 감수성은 인간 중심주의의 착시를 벗겨내고 생명과 환경의 연결성을 직관하게 하며, 디지털인지 감수성은 메타버스와 온라인 공간에서도 인간성과 윤리가 실재함을 인식하게 한다. 이모티콘 하나, 댓글 한 줄에도 공감과 존중이 깃들어야 한다는 자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인지감수성은 이질성과 낯섦을 포용하는 역량이며, 이는 결국 공존이라는 문명의 핵심 조건을 가능케 한다.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지감수성이 깊을수록 사회는 유연하게 흐른다. 반대로 그것이 얕거나 얽히면, 사회는 혐오와 단절의 늪에 빠진다. 그러나 늪처럼 깊은 인지감수성은 곧 수로가 되어 문명을 흐르게 한다. 감수성이 많다는 것은 예민하다는 뜻이 아니라, 더 많은 존재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적 여백을 가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청결한 거리, 낮은 범죄율, 높은 기술력과 국방력, 국민총생산과 같은 외형적 지표만으로 문명의 수준을 측정할 수는 없다. 어떤 나라는 단지 넓은 국토와 풍부한 인구, 유리한 지정학 덕분에 전쟁을 피하고 성장했을 뿐이며, 어떤 국가는 소매치기가 많더라도 문화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종교적·역사적 사유 속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사회를 미개냐 문명이냐로 이분화할 수는 없다.
진정한 선진문명의 기준은 그 사회가 각 분야의 인지감수성을 얼마나 체계화하고 제도화했는가에 있다. 진짜 문명국은 기술이 앞선 나라가 아니라, 타자의 고통과 신음에 귀 기울이고, 상대를 존중하는 구조를 법과 문화로 구현해 낸 나라다.
오늘날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문명 수준을 본다. 기원전부터 2,500km 이상의 아쿠아덕트를 만들 정도의 국력과 기술을 가진 로마조차, 인지감수성이 무뎌지면서 멸망했다. 대제국들의 몰락은 대부분, 이민족과 피지배 집단을 수용하지 못하고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내부의 인지감수성 결핍이었다.
문명이란 기술의 진보나 문화의 확장을 넘어, 인지감수성의 진화다. 부모로서, 형제로서, 동료로서, 그리고 국가 간 동맹자로서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인지감수성을 잃는 순간, 획일성을 강요하게 되는 국가는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로마의 뒤를 따르게 된다. 인지감수성은 선진문명의 절대척도이며, 그것을 잃는 순간 문명의 리더가 될 자격은 자동 상실된다.
최근 K-팝, K-푸드, K-드라마, K-국방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의 반열에 들고자 한다면, 이제부터는 ‘인지감수성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국어, 영어, 사회, 과학 같은 ‘입시용 과목’이 아니라, 인권·환경·인종·사회적 약자·성·젠더·안전·디지털 분야의 인지감수성 교육을 통하여 삶의 윤리와 공존의 감각을 키우는 교육이 절실하다. 전자교과서, 법정교과서, 우익사상 등을 두고 논쟁할 시간이 없다. 어떤 방식이든, 인지감수성 교육이 실현된다면, 배우는 학생들이 분별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며 그 성과로 우리는 K문화를 가진 21세기 진정한 문명의 주도자가 될 수 있다. 기술과 콘텐츠를 앞세우는 강국이 아니라, 인지감수성을 시스템화한 나라가 진짜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반려가족누림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 저서. 더마켓 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 이노비즈 CEO독서클럽 선정도서 21選 (사회관 편) (세계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