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기 위해 떠나는 판타지 여행

프롤로그

by 새초록





“좋아하는 일이 뭐야?”


얼마 전, 한 리얼리티 예능 방송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질문을 맞닥뜨린 젊은 여성이 한참을 머뭇거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아직 세 살 된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힘에 부치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제가 그 인생의 무게를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눈물의 공감과 마음속 응원을 보냈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뭘까?’


이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져보는 것으로 이 글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고백하는 이 여정이 시간이나 감정의 낭비가 절대 아니라고 말해주는 한 책이 있어서, 이 여정을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꽤 긴 시간 전업주부로 살아온 저는 경제적인 이유로 작은 회사에 입사했다가 2005년 봄에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과도한 업무와 여러 사정으로 정신적인 파산에 먼저 이르게 될까 봐 고민 끝에 퇴사를 실행에 옮겼지만, 집에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너무 바빠서,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책을 거의 보지 못했던 저는 한동안 〈리틀 포레스트〉 같은 작품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아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여주인공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화면 속 초록색 풍경에서 얻는 위안이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초록색을 좋아하여, 아이들이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엄마, 이건 초록색이니까 사 주세요” 할 정도이지만, 퇴사 이후 한동안 더욱 초록색에 매달렸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날 방법을 너무나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우선 그 책의 제목이 제가 꿈꾸는 삶을 그려내고 있었기에, 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젠가 나도 숲속에 이층집을 지어 1층의 서재를 개방하고 싶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상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우연히도, 입사하기 전에 앞부분만 끄적거리다가 결국 끝내지 못한 제 소설 속 여주인공도 숲속 휴게소 안에 있는 작은 책방의 아르바이트생이었습니다.


그 여주인공과 저와 그 책의 저자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많았습니다. 저자 아오키 미아코는 사서 자격증을 가진 진짜 사서로서,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도시를 떠나 숲속의 70년 된 고택으로 이사하여 사설 도서관을 열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개인 장서를 공유하며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진초록색 표지의 책을 읽다가 소제목 하나를 보고, 그동안 혼자서 생각이나 감정의 낭비가 아닐까 생각했던 일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그 제목은 이것이었습니다.


‘살아가기 위한 판타지 모임.’


아오키 미아코 씨는 책을 추천해 달라는 어느 한 분의 요청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분에게는 다른 세상이 필요한지도 몰라.’


그래서 판타지 문학을 추천하다가, 나중에는 판타지 문학을 읽는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이 창문(판타지 문학)을 통해 풍경을 보며 꽃향기를 맡고 햇볕을 쬐는 것으로 살아남은 시절”이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저야말로 사실 그런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판타지 문학의 갈래에서도 좀 더 동화적인 요소가 짙은 책을 좋아하고, 더 나아가서 사실은 숱한 시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들을 상상하거나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파트 단지 내 분리 수거장 앞에서 낡은 벽시계를 보게 되면, 어느새 제 머릿속에는 몇몇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때로는 실제 경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고, 제가 바라고 상상해 온 장면과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단편적인 상상을 자주 하고 있었습니다.


힘든 날이면 자주 상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호호 할머니가 된 내가 석양이 드는 문가 앞 안락의자에 코바늘뜨기로 이어 만든 무릎 담요를 덮고 평온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라든가, 좋아하는 손때 묻은 살림이 가득한 낡은 부엌이라든가, 산책로 끝에 있는 나만을 위한 비밀 카페라든가…. 추억과 소망이 절묘하게 뒤섞인 시공간에서 저는 오늘을 버틸 힘과 위로를 얻어오곤 했습니다.


‘결국 이 일도 지나갈 거야.’

‘시간은 흐를 거야.’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별한 방법으로 순간순간을 보내면서도, 이 방법이 남들 눈에는 유치하게 보일까 봐 비밀로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의 의미가 ‘살아가기 위한 것’에 있다는 자각에 이르자, 더 이상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제 이 방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진땀을 흘리며 오늘을 버티는 이들에게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 하나를 소개해 주고 싶습니다.





어느 날, 저는 나만 탈 수 있는 지하철 이야기를 상상했습니다. 정확하게는 그날, 친정엄마와 여동생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정엄마에게는 제가 아픈 손가락처럼 여겨지고 있었기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은 여행이었습니다.


그때 기다란 지하철이 칸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싣고 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기차가 떠오르더니, 제가 탈 수 있을 만큼 커져서 정확히 제 앞에서 멈춰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가끔 틈이 날 때마다 나만의 지하철을 상상하고, 그 여정을 기록했습니다. 상상 속 그 지하철을 타고 나만의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떠나는 판타지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낮은 자존감과 패배의식과 불안감으로 제 마음은 캄캄한 동굴 속에 있는 듯했습니다. 어느 날에는 괜찮은 듯하지만, 또 어느 날에는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 주목하기를 원했습니다. 자유롭게 상상할 자유를 저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회복의 시간을 진정으로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떠나는 판타지 여행에 누군가를 초대하고 저라는 사람을 보여주기까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누군가 이 글을 읽은 한 사람이라도, 이 여정 어느 한 지점에서라도 잠시 잔잔한 미소를 띠게 된다면, 또는 공감의 눈물을 살짝이라도 머금게 된다면, 오랜 시간 혼자 상상해온 이야기를 꺼내놓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 자신은 이 글을 쓰면서 혼자 웃고 혼자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시간이 의미 있었습니다.





오늘, 좋아하는 것들을 잊고 살아가는, 또는 숨기고 살아가는 분들에게 이 글을 드립니다.


엄마, 꽃 값이 제일 아깝다면서도 사실은 좋아했다는 우리 엄마도 이 글을 보며 웃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