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오랫동안 경력이 단절된 채 시간 대부분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우울한 파랑으로 점철된 시간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색 무지개나 봄의 연초록색에 가까운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하네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정말 많았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저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쪽을 선택하고 싶어요. 전업주부로 아이들과 함께 일상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저의 선택이었고, 어릴 때부터 마음에 품은 바람이었어요.
제가 어릴 때 저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늘 바쁘셨고, 그런 어머니께 감사하고 어머니의 헌신을 안타깝고 고귀하게 생각하면서도 저는 늘 마음 한편에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채워지지 않는 어떤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구멍을 지니고 있었어요.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제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아주 가까이서 많은 시간 함께 살아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따금 아이들과 도토리를 줍던 기억의 세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당시 저희 가족이 살던, 도시와 시골이 반쯤 섞인 듯한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상수리나무가 꽤 심겨 있었어요. 저는 거기서 한창 자연의 모든 것이 신기했던 첫째와,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형아를 따라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던 둘째(걸을 때면 기저귀를 찬 빵빵한 엉덩이와 그 짧은 다리가 얼마나 귀여웠던지요)와 함께 도토리를 줍곤 했어요. 저희는 그 도토리를 둘째의 유모차 발판 뒤쪽의 작은 짐칸에 수북이 쌓아놓곤 했어요.
아, 기억하다 보니 그날들이 너무 그립네요! 이제는 제 키를 훌쩍 넘어선 중2 첫째 아들은 이미 오래전에 휴대폰 액정 화면과 둘도 없는 사랑에 빠진 듯하지만, 그때는 손수 그린 도토리나무 그림과 함께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너무 사랑한다는 편지를 하루에도 몇 장이나 써서 싱크대 위에 올려두곤 했지요.
그 숲의 기억 속에서 저는 있지도 않은 딸 하나도 키우고 있었습니다. 저를 꼭 닮은 아이이지요. 제가 엄마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제가 엄마가 되어 저의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상상 속에서는 어린 시절의 저도 초대하곤 했었습니다.
‘이제라도 괜찮아.’
제가 무언으로 마음을 전하면 그 숲의 소녀도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숲에서 아이들을 키웠고, 저도 키웠습니다. 집에서 아이들이 자랐고, 그 아이들을 보는 저도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도 집안에 기쁘고 즐거운 일만 넘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유독 힘든 일이 겹쳐서,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인 저도 그날들의 계절을 제대로 떠올리기가 어렵습니다.
아직까지 남은 기억의 파편을 따라가보면, 그해 거의 모든 계절 제가 참 추워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갑상선염을 앓고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었는데 그 증상 중 하나가 추위를 잘 타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늦봄까지나 늦가을부터 보일러를 떼기에는 난방비가 너무 아까워, 오히려 날씨가 더 추워지면 마음 편하게 보일러를 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만약 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추위를 잘 탔다면 좀 더 집을 따뜻하게 유지했을 테지만요).
냉기 때문에 새벽 일찍 깨곤 해서 추위로 굳은 손을 또 다른 한 손으로 연신 번갈아 감싸며 따뜻한 밀크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창밖에 커다란 회색 괴물이 우리 집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는, 아이 같은 생각이 종종 의도하지 않은 닭살처럼 머릿속에서 돋곤 했어요. 그 괴물이 내뿜는 냉기로, 제 몸이 꽁꽁 얼어붙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요.
동화를 좋아하는 저는, 슬픔과 불안이라는 그 회색 괴물이 노리는 것은, 그 옛날 돼지 형제의 집을 악한 숨으로 날려버리려 했던 늑대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을 무너뜨리는 것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에게 결코 지지 않기로 마음먹곤 했어요.
그는 우리 집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올 틈을 호시탐탐 노리며 커다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저를 관찰하고 있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살아가리라, 이 냉방을 사랑으로 데우리라, 아이들이 이 현실의 냉기를 느끼지 못하게 하리라 다짐하곤 했답니다.
저는 조금 연극처럼이라도, 그 괴물에게 지지 않기 위하여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살아왔습니다. 늘 그런 상태를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저 자신을 토닥여주고 싶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기 위하여 예쁜 상상의 날개를 일부러 더 활짝 펼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떤 상상은 실제로도 비슷하게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초록색에서 큰 위안을 받곤 하는데, 몇 년 전 이사해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바로 앞에 주말농장이 있는 곳입니다. 제가 직접 가꾸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돌보는 초록 텃밭과 그곳을 아늑하게 감싸 안은 작은 산을 창밖으로 보면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순간이면, 나의 바람을 전부 아시는 나의 신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의 소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인생에 몇 번은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소원이 작은 일상의 것이라면, 아마 더 자주 기쁨을 맛볼 수도 있겠지요.
오랜 시간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더 넓게 보더라도 아파트 단지와 집 근처의 초록 숲과 아이들 등굣길의 산책로, 그리고 가끔 들르는 동네의 마트와 카페와 작은 도서관에서만 주로 살아가다가, 저로서는 정말 큰 용기를 내어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한 작은 회사에 입사했답니다.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기까지 고민은 깊어졌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동안 남모르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끝날 것을, 왜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시작해야 했지?’
‘왜 나는 이렇게 포기하고 돌아와야만 했지?’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당시 입사할 때 정말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퇴사하고 나면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서 금세 불안해질 것 같은데도 겉으로는 의연하고 단호하게 퇴사 의사를 굽히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이유는, 저를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도저히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업무량에 쫓겨 저라는 사람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답답한 현실 가운데서 자꾸 한숨이 나왔습니다. 역시 재취업은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고, 저도 쉽게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는 건강이 썩 좋은 편이 아니고, 특히 청력이 좋지 못합니다. 성실함과 부단한 노력으로 그 구멍을 메워보려 늘 애쓰기 때문에,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한없이 피곤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혼자서 한숨 짓다가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노트북 컴퓨터의 한 폴더에는 쓰다 만 이야기들이 몇 개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다시 읽어보니 제가 쓴 글이 거의 판타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일상의 에세이라도, 제가 포착한 소재에는 대개 판타지적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를 봐도 저는 사람에 따라서 다소 뜬금없이 펼쳐진다고 생각할 수 있는 환상의 장면을 좋아했습니다.
이를테면 〈리틀 포레스트〉를 보아도 주인공의 엄마가 기억 속에서 걸어 나와 주인공과 나란히 싱크대 앞에 선 장면이 그렇게 인상 깊을 수가 없었고, 〈라라랜드〉를 보아도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가 상상이 이어지는 장면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오래전 보았던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주인공의 과거가 식구들에게는 현재가 되는 설정은 오래도록 제 가슴에 남아 저도 시공간을 뛰어넘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회복을 꿈꾸었습니다.
그 외에도 〈슬럼버랜드〉, 《오두막》, 《사자왕 형제의 모험》, 《나니아 연대기》 등을 좋아했고, 그 작품들의 어느 장면은 제가 평소 상상하던 것과 너무 닮아서 늘 그리워하며 사랑하던 것을 마주한 느낌에 사로잡힌 적도 있습니다.
저는 상상으로 오늘을 버틸 힘을 얻어오곤 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시 상상의 세계로 기꺼이 들어가 그 여정을 글로 남겼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떠나는 판타지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부로 생각하고 써 내려간 〈나만의 지하철〉에는 제가 오래 상상해왔고, 흔들리는 저를 붙잡아주었으며, 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던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실제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그 글의 처음을 시작했습니다. 휴대폰 메모장에 끄적이던 것을, 오랜만에 간 친정집에서 이어 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몇 주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혼자 웃고 혼자 울었고 때로는 충만한 느낌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과연 남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부끄럽고 남에게도 의미 있을지 자신 없는 순간도 있었는데, 우선은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으로 내 마음이 회복되고 있으니 끝까지 써보자는 생각으로 계속했습니다. 이 글은 적어도 저 자신이라는 한 사람에게는 울림을 주었고, 그 여정 가운데서 상상의 지하철 한 칸 한 칸을 옮겨 다니면서 다시 기쁨과 희망을 찾게 되었습니다.
만약 또 다른 누군가도 저의 여정을 함께 돌아보는 길에서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래서 그의 삶이 잠시라도 조금 더 밝아지게 된다면, 저는 같은 하늘 아래 인생의 끝날까지 삶을 지속해가는 동행으로서 너무나 기쁘고 감사할 것 같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떠나는 판타지 여행》은 아마 계속될 듯합니다. 〈나만의 지하철〉 이후에 또 다른 여행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이름 모를 당신도 당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를, 그러다 다시 만나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그리고 우리 집 창밖의 주말농장에서 온갖 작물을 키워 자기도 모르게 저에게 회복의 풍경을 선물해주시는 고마운 분들, 이 계절에 산을 노랗고 빨갛게 물들이는 분이자 모든 선한 열매를 맺는 과수원의 동산지기인 나의 하나님, 함께 버티고 살아가는 저의 식구들, 특히 제가 퇴사하고 돌아왔을 때 “지금까지 회사 일 하느라 애썼고 즐거운 시간 많이 보내자”라며 손편지를 건넨 초등학생 막내아들에게 감사합니다.
그 손편지처럼 이 글이 희망의 싹이 되기를.
추신: 아, 이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지금, 저는 또다시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고 있네요! 손편지에서 정말 새싹이 돋아나는 그런 장면 말입니다. 당신의 세계도 상상으로 조금 더 밝고 따뜻해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