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지하철 (11)
{지난 편까지의 이야기}
어두운 동굴 속에 갇힌 것만 같을 때 나는 나만의 지하철을 상상해요.
그 지하철을 타고 한 칸 한 칸 거닐며 여행하다가 이제 마지막 역에 도착했어요...
동화를 좋아하는 나는, 해피엔딩을 꿈꿔요.
곧 낯설고도 낯익은 누군가가 이곳으로 들어오겠죠.
이제 마법 열차는 밤의 거리를 지나 하늘 사이의 구름다리를 건너요.
나는 여기서 사랑하는 할머니의 손때 묻은 살림을 구경하는 손녀딸처럼, 아버지의 품을 떠나 이국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이제 막 집으로 돌아와 자기 옛 물건을 보고 행복한 추억에 잠긴 어느 시골 아가씨처럼, 그리고 꼭 가보고 싶던 유서 깊은 골동품 가게에서 오래 찾아 헤매던 가장 귀한 선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걷다가, 보다가, 만지다가, 미소 짓다가, 다시 걸어요.
어느새 마법 열차는 가장 깊은 밤의 역에 잠시 정차해 있어요.
나는 기다란 소파가 앞에 놓인 통유리창 한 면에 두 손바닥을 펴서 붙이고 가만히 우주를 느껴요.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순간이에요.
창밖으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얀 별이 반짝이면서 나의 여행을 응원해요.
나는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나를 보고 있다며.
아직은 여행을 계속해야 할 때라는 별들의 노래가 들리면
나도 마음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며 나만의 답가를 지어 불러요.
나는 오늘 그 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다시 내일로 이어져요.
아주 가까이에 있는 듯한 그분도 오늘은 만나지 못하나 봐요.
반짝이는 눈물 병만 내 눈동자에 사진처럼 담은 채, 나만의 마법 열차는 다시 출발해요.
어느 때는 순간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주 순식간에 현실로 옮겨오기도 하고,
어느 때는 복도를 걷다가 현관문에 도착하거나, 동틀 무렵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반환점에 다다르거나,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가슴이 먹먹해 한참 그대로 있다가 결국 뒤표지로 넘기거나, 틀어놓았던 음악 한 곡이 아련히 끝나거나, 기다리던 지하철이나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에 딱 맞춰 돌아와요.
나는 나만 탈 수 있는 지하철을 알아요.
기다란 지하철이 칸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싣고 와요.
내가 어디 서 있건 내 앞에 딱 멈춰 서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나를 구조해서 꿈속의 시간을 달려요.
나는 천천히 올라타고, 또 천천히 내려요.
문이 닫힌다는 벨은 어느 때나 울리지 않아요.
그는 나의 속도를 탓하지 않고 기다리죠.
이제 마흔이 넘었으니 마법이 통하지 않을 거란 제한도 없죠.
내가 아늑한 상상의 그 긴 좌석에 앉으면
지하철은 오늘을 출발해요.
먼저 기다란 한숨부터 내쉴 때에도
그는 나를 받아들이고 회복의 시간 속을 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