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1장 번역과 해설

만물의 시작을 무라고 한다.

by 도반스키

도덕경 1장

-만물의 시작을 무라고 한다(無名 萬物之始)


[원문]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無名 萬物之始. 有名 萬物之母.
무명 만물지시. 유명 만물지모.
故 常無欲以 觀其妙. 常有欲以 觀其所徼.
고 상무욕이 관기묘. 상유욕이 관기소요.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차량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번역]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항상한 도가 아니고,

이름할 수 있는 이름은 항상한 이름이 아니다.


만물의 시작을 무(無)라고 하고,

만물의 어머니를 유(有)라고 한다.


그러므로

항상한 무를 구하면

그것의 오묘함을 관찰할 수 있고,

항상한 유를 구하면

그것이 드러남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둘은

동시에 나와서 다르게 이름하지만,

동일한 것을 가리키니 현묘하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니,

온갖 오묘함이 드나드는 문이다!


[해설]


1.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 도(道)와 이름(名)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가끔 현타가 오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누구인지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살다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여기는 어떤 길 위에 있고, 나는 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 길을, 지루하고 당연한 그 일상을, 터벅터벅 걸어 갑니다. 일상은 스트레스의 바다입니다. 누군가는,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내 삶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노자는, 그런 생각은 항상한 것이 아니라고합니다.


2. 항상한 것 : 무(無)와 유(有)


노자가 말하는 ‘항상’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항상(恒常)은 영어로 Constant로 번역되며, 시간이 흐르더라도 변하지 않는 지속성을 의미합니다. 영원이라는 말과 같지만, 영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지속성이라는 느낌이 강하다면, 항상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지속성이라는 느낌을 더 살려 줍니다.


노자는 먼저 항상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제시하여 항상한 것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항상하지 않은 첫번째는 ‘도라 할 수 있는 도’입니다. 도(道)는 로고스(Logos)입니다. 로고스는 진리, 즉 신(God)입니다.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이데올로기화된 진리’, ‘종교화된 신’을 말합니다. 이데올로기화된 진리, 종교화된 신은 항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화 되지 않은 진리’, ‘종교화 되지 않은 신’은 항상하다는 뜻이겠지요.


항상하지 않은 두번째는 ‘이름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존재하는 것들에게 이름을 붙입니다. 나는 나의 이름이 있고, 당신에게는 당신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가진 나와 당신이라는 존재는 죽습니다. 죽기 때문에 그 이름은 항상하지 않지요. 그런데 노자는 항상한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와 당신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존재는, 죽지 않고 항상하다는 뜻이겠지요.


항상한 것이 있습니다. 항상한 것은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으로 흐르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항상 역사하고 있습니다.


항상한 첫번째는 무(無)입니다. 무는 ‘이데올로기화되지 않은 진리’, ‘종교화되지 않은 신’입니다. 무는 만물의 시작입니다(無名 萬物之始). 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시작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시작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지요. 무는 보이지 않는 근원이, 보이는 만물로 드러나게 하는 ‘창조’의 시공입니다. 만물을 창조하는 무의 오묘함은 자세히 관찰해야만 볼 수 있습니다.


항상한 두번째는 유(有)입니다. 유는 ‘나와 남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존재’입니다. 유는 보입니다. 보이는 것은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떤 존재든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에 존재할 수 있지요. 유는 보이는 만물이, 보이지 않는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성장’의 시공입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만물은, 무의 오묘함이 드러난, 유라는 시공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를 만물의 어머니라고 합니다(有名 萬物之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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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와 유의 중첩 : 도덕(道德)


요약하자면 무는 신(아빠)이고, 유는 신의 작용(엄마)입니다. 우리 내면의 뿌리인 신의 영(Spirit)을 도라고 하고, 그 신성을 외부로 드러내는 마음(Mind)을 덕이라고 합니다. 이 둘은 이름은 다르지만 동일한 것을 가리키니, 도덕이라 합니다. 우리 내면의 도덕(양심)이 곧 신입니다. 도덕경은 도덕에 관한 경전입니다. 도덕경은 신에 대한 찬가입니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신론적 유물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신론적 유물론 또한 물신숭배(Fetishism)라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무신론적 유물론은 중생의 아편입니다. ‘항상’의 관점은, 신이 없다는 ‘무-신론’에서, 무가 신이라는 ‘무=신론’으로, 물질만 존재한다는 ‘유물론’에서, 유와 무는 함께 존재한다는 ‘유무론’으로, 전도된 가치를 전복합니다.


항상한 것은 인간 내면의 도덕이며, 도덕이 곧 신성입니다. 도덕은 창조와 성장이라는 인류문명의 역사가 흐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항상의 관점은 삶의 현묘함을 회복시켜 주는 가능성의 문입니다. 그 문을 열면 온갖 오묘함이 삶 속으로 드나드는 것을 관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https://youtube.com/shorts/qoYnHr9Gfbc?si=CQjWcbg61apFuq_L

도덕경 1장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