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내기를 멈추면 근심이 없다(絶學無憂)
絶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절학무우. 유지여아, 상거기하.
善之與惡, 相去何若. 人之所畏, 不可不畏.
선지여악, 상거하약. 인지소외, 불가불외.
荒兮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亨太牢, 如春登臺.
황혜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형태뢰, 여춘등대.
我獨泊兮其未兆, 如孀兒之未孩. 내래兮若無所歸.
아독박혜기미조, 여상아지미해. 내래혜약무소귀.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아우인지심야재,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혼혼.
俗人察察, 我獨悶悶, 澹兮其若海, 요兮若無止.
속인찰찰, 아독민민, 담혜기약해, 요혜약무지.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而貴食母.
중인개유이, 이아독완사비. 아독이어인이귀식모.
흉내내기를 멈추면 근심이 없다.
높임말과 반말이 얼마만큼 차이가 있는가?
아름다움과 추악함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것을 그냥 똑같이 꺼리는구나.
허황되다! 재앙이 있으리라.
군중(衆人)들은 희희낙락하며
함께 고기잔치를 열고, 함께 봄나들이를 즐긴다.
나는 홀로 조용하다(我獨泊)!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어수룩하다! 젖을 먹는 어린아이와 같이 웃으리라.
나른하다! 무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군중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는 홀로 버려져 있다.
나는 바보의 마음을 가졌구나! 어수룩하다.
속물들(俗人)은 명랑한데, 나는 홀로 어둡다.
속물들은 똑똑한데, 나는 홀로 답답하다.
시커멓게 깊은 바다처럼 황홀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처럼 황홀하다!
군중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데,
나는 홀로 고집불통이라 비천하다.
나는 홀로 사람들과 다르고자 하니,
길러 주는 어머니(食母)를 귀하게 여긴다.
-도덕경 20장
-절학무우(絶學無憂) : 흉내내기(學)를 멈추면 근심이 없다. 배울 학(學)자는 ‘흉내내다’, ‘모방하다’는 뜻이 있다. 도덕경 20장에서는 ‘나(我)’라는 주체성 없이, 그저 남들을 맹목적으로 흉내내는(學) 사람들을 ‘군중(衆人)’, ‘속물(俗人)’이라는 표현으로 비판하고 있다.
-길러 주는 어머니(食母) : 신을 지칭하는 이름. “천하의 시작이 있는데 이것이 천하의 어머니다.-도덕경52장”. 신은 모든 존재를 낳고, 기르는 존재다. “만물의 시작(아버지)을 무라고 이름한다. 만물의 어머니를 유라고 이름한다.-도덕경 1장”, “도는 낳고 덕은 기른다.-도덕경 51장”.
도덕경 20장은 “절학무우(絶學無憂: 흉내내기를 멈추면 근심이 없다)”라는 강렬한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학(學)’은 단지 배우는 행위가 아닙니다. 노자가 말하는 학습은 남들을 무작정 흉내내며, 군중의 흐름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유행과 군중의 흐름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끝없이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나(我)’가 없기 때문입니다. 노자는 말합니다. “흉내내기를 멈추면 근심이 없다.” 진정한 행복과 자유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노자는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쉽게 휩쓸린다고 경고합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웃고 떠들며, 화려한 잔치와 축제를 벌이는 가운데, 노자는 정반대의 길을 택합니다.
군중은 모두 희희낙락하지만,
나는 홀로 조용하다.
어수룩하다!
마치 젖먹는 어린아이와 같구나.
이 ‘어수룩함’과 ‘어린아이’는 단순히 미성숙한 상태가 아닙니다. 여기서 노자가 말하는 어린아이는 신(神)의 섭리 아래에서 순수하게 길러지고 있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먹으며, 어머니와 연결되어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노자는 바로 그런 어린아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추구합니다. 신과 교감하며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하는 삶. 이것이 바로 군중과 다르게 사는 도(道)입니다.
도덕경 20장의 핵심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나는 홀로 사람들과 다르고자 하니,
길러주는 어머니(食母)를 귀하게 여긴다.
'식모(食母: 길러주는 어머니)'는 젖먹이 아기를 기르는 어머니를 뜻합니다. 노자가 말하는 식모는 우리 존재를 낳고 기르는, 신(God)을 의미합니다. 도덕경 6장에서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데, 이것을 현묘한 여성성이라 한다”는 구절이 있었지요. 이 골짜기의 신이 '식모(食母)'입니다.
노자는 군중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신의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순박한 상태로 돌아갈 것을 주장합니다. 이는 세상의 기준이나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 안의 신과 연결되어 진정한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온전히 자라는 것처럼, 인간 또한 신의 섭리 안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노자의 삶은 매우 어리석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속물들은 똑똑하고 민첩한데,
나는 어수룩하고 느리다.
하지만 노자의 이 어수룩함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신의 지혜와 연결된 깊은 순박함입니다. 아이처럼 신을 믿고 신의 뜻에 맡기며, 자연스럽게 인도받는 삶을 말합니다. 그것은 순수한 신뢰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결국, 군중들이 보지 못하는 진정한 지혜는 바로 이 어린아이 같은 신뢰와 순수함에 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 20장에서 우리에게 명확한 길을 제시합니다.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말고,
흉내내기를 멈추며,
진정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라고.
이 길은 쉽지 않고, 때론 외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을 홀로 걷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안고 보호하듯,
신(食母)이 우리를 품에 안고 끊임없이 길러주고 계십니다.
노자의 도는 이 어머니의 품에서, 어린아이의 순박한 마음으로 성장하는 삶입니다.
https://youtu.be/SzCKYqPeIdw?si=C2R3YOP0rYPYq-v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