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보통날이라면 9시쯤에 일어나는 내가 왜 이 시간에 눈을 떴을까.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하고선 한숨만 나왔다. 이불을 깔아도 딱딱한 마룻바닥에 등이 배겼다. 그때, 머리맡으로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엄마의 분주한 움직임 소리가 들렸다. 이러니까 내가 잠에서 깼구나. 분명 11시에 출발한다고 했는데 도대체 새벽부터 뭘 하는 걸까. 그래, 엄마랑 나는 이런 게 안 맞았지. 짜증이 나며 잠이 달아났다.
엄마와 나의 시차는 늘 달랐다. 어둑한 조명의 힘을 빌려 새벽의 사색 시간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엄마는 늘 내 새벽 시간을 깨고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하루의 시작을 같이하고 싶은 마음일까? 그녀는 늘 요란했다. 알 수 없는 음악을 틀어두고 체조를 하기도 했고 가끔은 집 안을 환기하기도 하며 (겨울에 자는 동안 강제 환기를 당해보면 정말 고역이다.)주방에서 무언갈 만들며 부딪히는 소리는 심벌즈 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각자의 생활 패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우리는 많이 다퉜고, 포기도 해보고, 이해도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내가 집을 나와서 산 지 1년이 넘어간 지금,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문제 때문에 집을 나온 건 아니지만) 생활 패턴이 다른 사람들은 다른 공간에 사는 것이 좋다는 걸.
그런데 내가 지금 또 왜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냐. 힘들어 죽겠다. 진짜로. 명절이 뭐라고. 부글거리는 마음을 안고 화는 차마 내지 못해 얼굴을 있는 힘껏 찌푸리는데, 시야로 분홍색으로 물든 무언가를 보았다. 자기주장이 강렬하지 않고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빛은 나의 마음을 진정하게 만들었다. 저녁에 보는 노을과는 달랐다. 마음속 어딘가 깨어나며 활기참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저 빛을 맞으면 새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파스텔로 문댄 듯한 뿌연 구름이 분홍빛의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깜짝 놀란 마음에 잠은 더 도망가고 어딘가 몽롱한 채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숨도 자지 못한 탓에 피곤한 컨디션으로 차에 올랐다. 할머니를 뵈러 요양 병원에 처음 가는 길이었다. 삶을 살면서 요양 병원을 처음 가보는데 그냥 느낌으로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적 암으로 입원한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간 일이 떠올랐다. 어딘가 무거운 분위기와 몸에 붙어있는 각종 무서운 장비들이 나를 할아버지에게 맘껏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할아버지를 보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에게 푹 안겨서 세게 안아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후회가 된다. 그런 후회를 또 하게 될지 걱정되는 마음이었을까. 요양 병원이 그렇게도 가기 싫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보고 머리를 가리셨다. 듬성듬성 빠져있는 머리카락을 보여주기 싫으신 것 같았다. 특별히 기념할 만한 날도 아닌데 우리 가족은 말없이 셀카를 찍었다. 셀카라면 질색하는 내 남동생도 어쩐지 토를 달지 않고 열심히 참여했다. 할머니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냈는데, 할머니는 자신을 예쁘게 찍어달라며 다시 찍자고 했다. 웃음이 배슬배슬 나왔다. 할머니 눈에 지워지지 않고 붙어있는 영구 아이라이너가 웃겼다.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의 셀카를 다시 찍고 난 후 할머니는 울었다. 손주 시집가는 것도 못 보고 가서 어떡하냐고 했다. 웃다가 우는 건 큰일 날 일인데 나도 눈물이 났다. 엄마는 우는 할머니를 유머로 달랬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거래. 어차피 결혼식 못 봐.’ 우는 탓에 숨이 가쁜지 할머니는 호흡기를 입에 가져다 댔다. 호흡기에서 나오는 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아침에 보았던 연기 같은 하늘이 생각났다.
할머니를 현란한 유머로 위로하던 엄마는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음식을 펼쳤다. 삼키기 어려운 할머니를 위해서 음식은 잘게 잘라져 있었다. 분주한 새벽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락앤락 통에는 잘게 잘려진 소고기, 앙버터 호두과자, 곶감, 명절 음식다운 것들이 있었다. 할머니는 다 싫다고 하셨다. 엄마는 익숙하다는 듯이 대수로워하지도 않았다. 먹기 싫어하는 할머니와 맛있는데 한 번만 먹어보라는 엄마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그 모습이 웃기는데 슬프기도 했다.
집으로 와서 엄마는 자신도 요양 병원에서 많이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같이 울면 할머니 호흡이 더 가빠져서 울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아침부터 분주했던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낮잠을 자려고 거실에 누웠다. 엄마는 자신이 요양 병원에 있게 되면 시대가 발달해서 로봇이 수발을 들어줄 거라고 했다. 나는 요양 병원에 누워서도 새벽부터 요란하게 분주한 엄마를 상상한다. 거실에 누우니 창문으로 하늘이 보였다. 눈이 스륵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