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가 내린 뒤

by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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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가을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성큼 친한 척을 하는 가을이 낯설어 아직 반팔을 입고 집에 가만히 있다. 그러자 가을을 동반한 우울도 함께 왔다. 새파랗고 새하얀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이미 지나간 무언가를 맥락 없이 그리워한다.


어쩌면 나는 평생 공허를 달고 살았을지도. 처음 이런 기분을 느낀 건 달리는 아빠 차 안에서였다. 몸집이 작은 어린 나는 뒷좌석에 누워도 자리가 충분했다. 머리를 창가 쪽으로 누우면 모든 건 빠르게 지나갔다. 구름도, 가로등도, 너무 빨라서 사물이 휘어 보였다. 차가 막히면 아빠는 짜증을 냈지만 나는 좋았다.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기를 바랐다. 아빠와의 시간은 현실 도피처였다. 아빠는 나에게 무엇이든 사주었고, 원하는 곳은 다 가주었으며, 먹고픈 음식도 모두 허락해 줬다. 아마 떨어져 사는 시간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아빠와 떨어져 산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아빠와 놀다가 집에 들어갈 때면 시간이 느리길 바랐다. 가끔 차에서 내리기 싫어 자는 척을 하는 날도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허했다. 이게 무슨 마음인지 몰라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인형을 가슴에 묻고 잠들곤 했다.


사라질 시간에 대한 두려움 아니었을까. 시간을 잊고는 공허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시간을 잊었을까 잃었을까. 아빠가 나에게 사준 모든 건 엄마 카드로 결제되었음을 알았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놀이공원에 갔을 때 함께 놀았던 이모가 아빠와 그런 사이라는 걸 알았다. 먹고픈 음식은 늘 할머니가 챙겨주던 기억이 났다. 기대가 크면 빈자리도 크다. 가슴에 구멍이 크게 뻥 뚫려서 그 안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습관이 되었나, 어른이 되어서도 좋아하는 사람과 마음이 꽉 찬 시간을 보낸 뒤에도 공허는 찾아왔다.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공허하다. 사라질까 두려워 좋아하는 마음이 무섭다. 걱정 없이 누군가와 가을 날씨를 즐기며 뛰어놀고 싶었다. 혼자는 할 수 없다. 같은 장면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누구와? 누군가 나와 함께 뛰어준대도 마음이 나아질까.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갈망은 커질수록 무거워져 나중엔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될테지. 갈망하지 않는 관계가 오히려 건강하다. 가을 공기에 코끝만 상쾌할 뿐 마음이 시리진 않다.


바보같은 나는 그래, 그렇지. 혼자가 좋아. 하다가도 문득 사랑을 잃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고는 세상 살아갈 힘을 어디서 얻을까. 기대 속 공허를 느끼지 않는 방법은 꽉 찬 내가 되는 것. 나를 채우고 다른 이도 채워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창문을 열어 환기한다. 그리곤 옷장 속에서 묵은 긴팔 옷을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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