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은 항상 안 챙긴다. 그렇다고 비 맞는 행위를 즐기는 인간은 아니다. 일기예보를 불신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우산을 챙기지 않는 이유는 하나, 잘 잃어버려서다. 비가 오지 않으면 나에게 우산은 잊힌다. 버스에도 두고, 택시에도 두고, 회사에도 두고, 밥 먹은 가게에도 두고 온다. 그래서 어차피 잃어버릴 거 두고 다니기로 한다.
우산을 챙기지 않는 사람은 매번 비를 쫄딱 맞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번 여름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국지성 폭풍우가 기승을 부렸다. 아주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무서운 비구름 같은 거다. 일을 하다가 커다란 소리에 눈이 번쩍 뜨여 밖을 내다보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이 비를 퍼붓는다. 빗소리를 백색소음처럼 들으며 집중해서 일하다 보면 어느새 조용히 날이 개어 있다. 눈치 게임처럼 비가 내리는 시간을 잘 피하기만 하면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그러나 눈치 게임에 실패하면 비로 샤워하는 일이 생긴다. 우산을 챙기지 않는 나도 비는 피하고 싶은 존재다. 가끔은 가방 속의 노트북이 걱정되어 편의점에서 얇은 비닐로 된 우산을 구매하곤 하지만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또다시 보고는 그마저도 지구에 미안해 망설인다. 맞을만한 비라고 생각되면 맞고 간다. 빗물에 눈이 흐려진다. 퇴근길에 갑작스레 찾아온 비를 맞는 게 가장 기분 나쁘다. 축축하고 찝찝하다. 집에 오면 물에 젖은 시래기처럼 축 늘어진다. 흠뻑 젖은 양말은 방바닥에 물 자국을 남긴다.
장마가 조금 잦아든 어느 날, 음악을 들으러 재즈 페스티벌에 갔다. 오랜만에 가는 페스티벌이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팅하고 예쁘게 준비했다. 장시간 음악을 즐겨야 해서 돗자리로 자리를 잡고 종이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를 샀다. 음악을 배경으로 친구와 건배하고 생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이마에 비가 한 방울 톡 떨어졌다. 애써 무시했으나 빗방울은 맥주 속으로 세팅된 내 머리 위로 점점 뛰어들었다. 사람들은 업체 측에서 챙겨준 우비를 부랴부랴 입었다. 천둥은 치고, 비는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종이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도 다 젖어버리고 돗자리엔 물이 고였다. 설상가상 인기 많은 가수가 등장하자 빗물 웅덩이를 밟으며 모두가 무대 앞으로 일어섰다. 여름밤의 상쾌한 페스티벌을 기대했던 나는 순식간에 울상이 됐다. 우산을 써도 소용없는 비였다. 얇은 일회용 우비는 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찢겼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잔나비’의 노래를 듣겠노라는 일념 하나로 비를 맞으며 꿋꿋하게 서 있었다.
무대 위에는 가수를 위한 천막이 쳐졌다. 관객은 기다리며 비를 계속 맞았다. 드디어 잔나비의 무대가 시작되고, 빗소리마저 숨죽이는 시간이었다. 천막 아래서 노래를 부르던 그는 천막 밖으로 나와 우리와 함께 비를 맞았다. 갑자기 온 하늘이 무대 장치가 되었다. 비는 천둥번개를 동반하며 효과를 톡톡히 냈다. 우리는 다 함께 비를 맞으며 노래하고 감성에 취했다. 옆사람과 같이 뛰기도 하고 목이 다 쉬어라 소리를 질렀다. 우비 같은 건 벗어던졌다. 가방도 이미 다 젖어 포기했다. 포기를 하니 더 즐거웠다. 빗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옷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비를 즐겁게 맞아본 건 처음이었다.
지킬 게 있어 비 맞는 것이 싫었던 게 아닐까. 모든 걸 내려두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니 자유로웠다. 한번 쫄딱 젖으면 말리면 되지, 빨래하면 되지, 그게 어려운 일일까! 쓸데없이 쌓여있는 단톡방의 카톡도, 다음 주에 처리해야 할 업무도, 생각날 필요 없는 옛 기억도 비에 씻겨 내려간다. 박하사탕을 품은 것처럼 상쾌하며 시원하고 달달했다. 부디 태어나서 한 번쯤은 몸의 짐도 마음의 짐도 내려둔 채 하염없이 비를 맞아보길 바란다.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한바탕 뛰고 앵콜까지 마치고 나니 놀랍게도 비가 그쳤다. 하늘을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뗀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의자가 젖을까 자리에 앉지 못했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웬 미친 여자가 비를 쫄딱 맞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웃음이 베슬베슬 나왔다. 그날 밤은 모든 걸 비운 채 아주 달콤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