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제법 추워졌다. 찬바람이 살짝 느껴지는 가을의 하늘은 청명하다. 사람들은 햇볕을 쐬러 밖으로 나온다. 짧은 가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어느 곳이든 줄을 길게 만든다. 그 인파 속에 나도 들어있다. 도망가는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한다. 떨어지는 낙엽 하나도 유심히 본다. 가을은 다시 돌아오겠지만, 현재에 충실하기 위하여.
따스하고도 날카로운 공기를 가진 가을이 좋다. 아침엔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서 덮는다. 뜨끈한 공기를 이불 안에 가득 품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든다. 이불을 살짝 걷어내면 그새 추위가 파고들어 소름이 돋는다. 유독 일으키기 어려운 몸을 이끌고 집 밖을 나선다. 손에는 수영가방이 들려있다. 곧 전기장판까지 켜고 누우면 몸이 녹아서 흐물거리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수영가방은 투명하다. 남들에게 수영을 간다는 걸 자랑하기 위함은 아니다. 투명한 수영가방은 예쁘다. 고심하여 고른 남색 땡땡이 하트모양 수영복과 조화를 위해 골라서 매치한 수영 모자가 들어있다. 투명 가방에 비친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수영을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줄을 서 있는데 내 가방을 본 할머니가 말을 건네셨다. 낯선 사람의 관심을 제법 어색해하기도 하지만 상냥함을 잃지 않은 태도로 적절히 웃음을 섞어서 답해드렸다. 할머니는 30년간 수영을 하셨다고 했다. 고작 3개월 수영을 배운 나에겐 엄청난 대선배님이셨다. 나이가 들어 어깨가 아픈 탓에 병원에서 수영 금지령을 받았다고 한다. 수영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도 한쪽 팔로만 수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팔 헤엄은 무리였다고. 할머니는 어쩐지 슬픈 표정으로 수영을 할 수 있어서 부럽다고 하면서 앞으로 꾸준하게 열심히 수영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기처럼 어깨를 다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할머니의 말을 들으니 어쩐지 내가 할머니의 몫까지 수영을 더 열정적으로 하겠노라! 라는 정의감이 생겼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다가 요즘 하는 운동에 대해 공유하게 되어, 수영한다고 말했다. 한 선배는 어렸을 적 강물에 빠져 떠내려간 트라우마로 수영하고 싶어도 몸이 뜨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선배는 자신도 어렸을 적 물에 빠졌다가 구해졌는데, 그때 트라우마로 차 안에서 음악을 듣지 못한다고 한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들었던 음악이 너무 시끄럽고 커서 싫어졌다고 했다. 나도 문득 좋지 않은 기억이나 트라우마를 떠올릴 만한 일이 있는지 고민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슬프거나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함이 낯설게 다가왔다. 좋은 기억을 나누어 채워줌으로 나쁜 기억을 상쇄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에게 수영은 고된 일상의 한 줄기 빛 같은 존재다.
수영할 때 행복함을 느낀다. 물속은 고요하다. 핸드폰 속에 있는 사람들도 나를 찾을 수 없으며, 연락을 보지 못한다는 불안도 없어진다. 물 안에 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으니까. 아무 생각을 들지 않게 한다. 가을의 물은 춥다. 아니 춥지 않다. 처음 발끝에 물이 닿을 때 머리까지 소름이 돋지만, 나의 체온으로 물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물에 뜨기 위해 몸에 힘을 뺀다. 팔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추위 따위는 금방 잊는다. 원래 고향이 물이었던 동물처럼 신이 난다.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잘못된 나의 몸 움직임을 고쳐보려 노력한다. 그렇게 몰입하다 보면 수영 시간은 끝난다. 수영이 끝나면 고요했던 세상은 다시 깨어난다. 마치 노이즈캔슬링을 했던 세상에서 벗어난 느낌이랄까.
수영을 끝내고 머리를 덜 말린 채로, 밖으로 나왔다. 젖은 머리에 바람이 닿으며 더 차갑다. 오늘은 수영할 수 없는 세 사람을 등에 태우고 수영했다. 세 배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풍요의 가을이 더 깊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