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부는 공정이다.
기술자가 아닌 현장관리자(소장)의 입장이 되면, 잡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물론 저도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고, 사수를 만나 일을 배우면서 절실하게 알게 되었죠. 현장관리자도 경험과 능력치에 따라 레벨이 천지차이가 납니다. 고수일수록 잡부를 활용해 다양한 변수를 억제하고 공사금액을 절약할 수 있죠.
쉬운 예를 들자면, 제주도의 경우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며 처치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당연히 건축폐기물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죠. 육지라면 차량으로 폐기물을 타 지역으로 옮기면 그만이지만, 제주도의 특성상 모두 배로 이동해야 합니다. 폐기물을 모아서 다시 배를 태워 다른 곳으로 보낸다? 물류비가 얼마나 중폭 될까요? 이런 상황은 현장에 직접적인 타격을 줍니다. 바로 폐기물 처리 비용의 증가로 말이죠. 해서 제주도의 경우 공사 폐기물을 처리할 때 목재, 석고, 혼합 이렇게 3개로 나뉘어서 따로따로 처리를 합니다.
처리비용 순은 혼합(300) > 석고(50) > 목재(30)입니다. 금액차이가 혼합과 목재가 10배나 차이가 나기에 당연히 분리를 해서 버려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혼합과 목재의 처리비용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 분리를 하는 인건비를 대입하면 손해인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의 현장은 왕창 모아서 혼합으로 처리했었죠. 이런 상황이다 보니 폐기물 처리비용의 증가는 결국 환경오염을 줄이고, 잡부의 수요를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잡부를 잘만 활용하면 공사현장을 보다 쾌적하고 운영하며, 빠르게 공기를 당길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공사 견적을 산정할 때 공사금액을 낮추다 보니 업체에서 잡부를 사용할 계획을 전혀 세우지 못한다는 거죠. 잡부를 평상시에 불러서 현장을 관리하면 전체 현장 근로자의 안전성이 매우 높아지고, 항상 정리되고 깔끔한 현장 상태를 반영하듯 기술자들의 작업 속도 또한 눈에 띄게 빨라집니다. 더 중요한 건 작업 마감 품질이 더 높아진다는 겁니다. 이는 길거리에 쓰레기가 없으면 담배꽁초도 버리기 애매한 사람의 심리와 같습니다. 주변이 워낙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으면 작업에 임하는 자세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죠.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장 큰 이점은 기타 놓칠 수 있는 변수들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것입니다. 현장관리자가 매일 현장을 매의 눈으로 살펴봐도 결국 놓치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마감공정이 들어오기 이전에 발견하면 해결방안이 어렵지 않지만, 마감공정 이후에 발견되거나 하자가 생긴다면 그때부터는 지옥문이 열리기 시작하죠. 결국 전체 그림을 그려보면 당장 나가는 하루 일당보다, 사고가 안 생기고 변수를 찾아서 세이브하는 금액이 몇십 배는 크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빠른 발전 속에 공사업도 정말 눈부시게 양적 팽창을 했지만, 내부적인 시스템과 사회적으로 공사업을 바라보는 '노가다'라는 시선 속에서 바뀌어야 할 부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잡부라는 역할도 하나의 공정으로 생각해서 공정표에 넣어 예산 확충을 하는 게 보편화되면 좋겠습니다.
이 업의 특성상 회사 소속이 아닌 이상은 매일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저는 휴식기가 생기는 날에는 머리도 식힐 겸 인력사무소를 통해 현장 잡부로 나가서 다른 현장들을 구경하며 용돈벌이도 하곤 합니다. 관리자로 일할 때와 잡부로 일할 때는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져서 인지 제가 몰랐던 부분들을 매번 공부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