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 씨 셋째 딸

할머니의 손끝에서 피어난 내 인생

by 다온홍쌤

우리 할머니는 경주 최 씨 셋째 딸이셨다.
고운 이목구비에 단정한 한복 자락이 참 잘 어울리던 분.
마을 어귀를 지나던 사람들도 종종걸음을 멈추고 말하곤 했다고 하셨다.
“참 곱다, 저 집 셋째 딸.”


나는 약사로 바쁘게 살아가던 부모님 대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하루의 냄새, 밥 냄새, 살결의 기억까지, 어린 시절 내 세상은 할머니로 가득했다.

할머니는 늘 나를 무릎에 앉혀 말씀하셨다.

“여자는 솜씨, 말씨, 맵씨를 늘 가꾸며 살아야 한다.”

그 말씀이 어린 나에게는 마냥 어려웠다.

솜씨는 손재주 같고, 말씨는 목소리 톤인가 싶었고, 맵시는 매운 건가 싶었던 시절.
하지만 지금, 사람을 돌보는 일을 천직처럼 이어오며 나는 그 말씀이 결국 자신을 정성스레 가꾸는 삶의 태도였음을 깨닫는다.

할머니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됐다.
염주를 돌리며 조용히 기도하시고, 세수를 마친 뒤엔 경대 앞에 앉아

참빗으로 머리를 정갈히 빗고 비녀를 꽂으셨다.
고요한 그 장면은 마치 작은 의식 같았다.

기도가 끝나면 내 잠을 깨우셨다.
“일어나야지, 학교 가야지.”

ChatGPT Image 2025년 7월 12일 오후 09_12_13.png

오빠와 남동생은 단정하게 머리를 빗겨주시고, 나는 항상 하나로 묶은 머리에
예쁜 작은 비녀를 꽂아 주셨다.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나설 때면 할머니는 내 등을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이쁘게 다녀와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그렇게 등굣길에 오르면, 동네 어른들이 나를 보며 미소 지으셨다.
“아이고, 예쁘다. 할머니 손이 야무지네.”
“비녀 꽂은 게 꼭 옛날 아씨 같네~”

그러고는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셨다.
그건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라, 거의 매일 아침 반복되던 정겨운 풍경이었다.

나는 그저 학교에 가던 길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들이 내 안에 깊게 새겨져
지금도 내 마음을 곧게 세워주는 기억이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할머니가 내 머리를 빗어주시던 손길이 내 마음을, 내 태도를,
그리고 나의 삶을 단정히 다듬고 있었다는 것을.

할머니의 정갈함은 목욕탕에서도 이어졌다.
매주 일요일, 새벽 다섯 시 반이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나를 깨워
동네 목욕탕으로 이끌었다.

“첫물이 가장 깨끗하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문이 열리기 전부터 목욕탕 문을 두드리셨다.

졸린 눈으로 목욕탕 타일 바닥을 밟던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욕탕 안에서 내 등을 부드럽게 밀어주시던 그 손길만큼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물이 끓는 듯 김이 오르는 그 공간 안에서, 나는 언제나 할머니의 품을 느꼈다.

지금은 안다.
그 시간이 단지 씻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손길은 내 몸만이 아니라, 삶의 자세와 마음까지 정화해 주고 있었음을.

나는 그렇게 자라 30년 넘게 피부를 만지는 일을 해왔다.
지금은 시니어 뷰티 전문가로, 어르신들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그분들의 주름에 깃든 인생을 경청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내 손끝에서 전해지는 이 따뜻함은 바로 할머니의 손길에서 이어져 온 것임을.
솜씨와 말씨, 그리고 맵씨를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내 모든 삶의 뿌리는
그분의 새벽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지금,
시니어들의 웰에이징과 웰다잉을 함께 돕는 길 위에 서 있다.
누군가의 삶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조용히 정리될 수 있도록,
그 마지막 순간까지 품위 있게 닿을 수 있도록,
나는 내 손끝에 정성을 담는다.

경주 최 씨 셋째 딸.
곱고 단정했던 나의 할머니.
그 손끝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이 내게 물려주신 그 단정한 사랑을 다시 사람들에게 전해주며 살아간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