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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가 나를 부를 때

포르투갈 - 호카곶(Cabo da Roca)

by 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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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 중 고르라면 저는 무조건 산이었어요.

바다에 대한 로망이 없었거든요.

고향은 바닷가예요.

익숙한 게 더 그리운 이들도 있겠지만

저는 반대였어요.

바다가 생의 터전인 사람들을 보며 자라다 보니

그게 그저 응시의 대상이거나 휴가철 물놀이 장소가 아닌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받아들여졌거든요.

내 부모는 어업이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바다에서 여러 번 고비를 넘기셨다는 얘긴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 제게 지각 변동의 감정이 찾아옵니다.

포르투갈에서요.

여행지로는 그 옆 나라가 더 유명하지만

저는 예전부터 이 나라에 더 끌렸어요.

아날로그와 낭만이 살아있는 유럽의 서쪽 끝.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나오기 전부터

저는 리스본을 동경했죠.

초등학교 때 부루마블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됐는데

어디 있는지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이름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어느 해 1월 1일, 저는 리스본에 있었어요.

공휴일이라 별 계획을 안 하고 있다가 정오가 가까울 무렵,

신트라(Sintra)행 기차를 탔어요.

당시 티켓 기계도 고장 나고 여행객들도 많아

역이 엄청나게 소란하고 줄이 줄지를 않았던 게 기억나네요.

아무튼 신트라까지 무사히 도착해 버스로 갈아탔고

저는 마침내 호카곶에 도착했어요.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 바다 쪽으로 걸어갔는데,

이게 뭐죠?

이 바다는 내가 보고 자란 그런 바다가 아니었어요.

전방에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고깃배도, 섬도, 사람도, 갈매기도, 육지와 이어진 그 어떤 것도.

오직 광활한 바다뿐이었습니다.

저는 속이 점점 시원해졌어요.

가슴이 벅차 올라 터져버릴 것 같았지요.

심박수도 빨라지는 것 같고 숨도 가빠지더군요.

옛날에 왜 여기를 지구의 끝이라 믿었는지

삼백프로 납득이 되었어요.

누가 감히 이 너머에 다른 땅이 있다고 믿었겠습니까.

저 바다를 호령하려 떠난 탐험가들의 용기와,

시야에서 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배웅객들의 기도가 이 바다 위를 가득 메웼을테죠.


늦게 온 탓에 금방 노을이 지고 해가 졌어요.

깜깜해지고 버스도 막차라 더 있을 수가 없었어요.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아쉬웠어요.

내 평생 이 바다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만큼의 쾌감을 다른 데서 느낄 수 있을까?

갑작스런 만남, 짧은 인사라 더 강렬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때 내 감정이 왜 그렇게 고조되었던건지 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어요.

어쨌든, 제 일생 손에 꼽는 느낌이란 게 중요한거니까요.


그 후 포르투갈에 또 가진 않았어요.

기회가 없었다기보단

이 넓은 세상, 못 가본 곳부터 가자는 주의라서요.

그리고 두 번 가면 감동이 이전과 같지 않다고 해서요.

좋아서 리바이벌했다가 실망했던 적이 여러 번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언젠간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그땐 아침 일찍 가서 오래 있다가 오고 싶어요.

당장은 전세계에 희뿌연 안개가 두껍게 드리워져 있지만

인생 길게 보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죠.


그 바다가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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