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츠와나의 대중교통
내 차를 전달받기 전인 1월 13일, 나는 발령지에서 첫 일주일을 보내고 일요일을 맞아 수도의 한인교회에 가보기로 했다. 버스 시간표는 교육청 직원에게 문의해서 미리 알아놓은 상태였고, 당일 아침 나는 같은 지역으로 발령받은 중등 파견 선생님과 함께 동네 터미널로 가서 수도 가는 8시 버스를 찾았다. 터미널은 동네의 중심이었다. 마트의 양대 산맥인 SPAR와 Choppies가 위치한 곳이기도 해서 그 일대는 늘 차와 사람으로 혼잡했는데, 일요일 아침이라 모처럼 한산했다. 출발 10분 전에 도착한 나는 버스의 이모저모를 살피며 차의 시동이 걸리기만을 기다렸다.
버스의 첫인상은 우리나라의 시골버스 같았다. 외관은 하얗게 도색되어 깔끔했고 앞 유리에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팻말에 출발지인 KANYE와 최종 목적지인 GABORONE가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차에 오르니 외부의 느낌과는 다르게 오래되고 낡았었다. 버스의 맨 뒷좌석까지 걸어가 보니 버스는 2+3으로 배열된 좌석으로 여유 공간 없이 꽉 차고, 좌석 시트는 멀쩡한 것 하나도 없이 모두 때로 얼룩지고 찢어져있었다. 나는 버스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가장 늦게 차에 올라탄 청년이 버스 차장인지 승객들에게 버스비 25 뿔라(약 3천 원)를 걷었다. 출입문은 고장이 나서 두꺼운 고무 밴드로 고정시켜놓았는데, 버스가 중간 정류장에 도착하면 밴드를 풀어 문을 열고 출발할 때 다시 묶었다. 운전석 옆 1인 좌석에 앉은 아저씨 승객이 묵묵히 이 일을 도왔다.
도로가 매끄러운 아스팔트라 차는 그다지 덜컹거리지 않았다. 나는 창밖으로 펼쳐진 이 마을 저 마을의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했고, 버스의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 뻑뻑한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한 줄기는 아프리카 시골 버스의 운치를 더했다. 직접 운전하면 1시간 반 거리인데 버스는 수도와 우리 동네 사이에 있는 마을들을 다 거치느라 2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나를 목적지에 내려주었다. 수도의 터미널은 전국의 버스 노선이 집합하기 때문에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했고, 주변에 대형 쇼핑몰도 많아서 그 일대는 차와 사람으로 가득했다.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한 바람에 픽업하러 오신 목사님도 시간을 허비하시고, 10시에 시작하는 예배도 그만큼 지연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탔던 게 완행이고, 급행을 탔더라면 제 시간에 도착했을 거란다. 이후엔 차가 생겨서 버스 탈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만약을 위해 알아두려고 동네 사람들에게 급행에 대해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터미널에 표를 파는 창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답을 알만한 관계자를 찾을 수도 없었다.
나에게 자차 운전의 시대가 열리고, 혼자 수도도 여러 번 다니며 운전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져갔다. 그러다 불현듯, 시골버스로 지나갔던 길을 드라이브 삼아 가보고 싶어졌다. 당시엔 생경했지만 이젠 일상이 된 그 풍경을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일까도 궁금하고, 주말이어도 갈 데가 없으니 이벤트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찾지 못했다. 길도 모르는 나 홀로 외국인 운전자가 믿을 것은 오직 구글맵 뿐이라 나는 운전을 할 때 항상 추천 경로를 따랐는데, 짧고 쉬운 길을 보여주는 내비게이션의 특성상 버스가 구비구비 지나던 그때 그 코스는 여기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똑같은 길로 수도를 오가게 되었다. 인생에 리바이벌은 없다. 평생 단 한 번인 일들이 너무나 많으니,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치열하게 싸워 현재에 머물러야한다.
대중교통에는 시외버스 외에도 택시와 콤비가 있다. 택시의 차종은 거의 경차이고 도로 어디나 많이 돌아다니는데, 나는 길에서 손 흔들어 차를 쉽게 잡을 수 있는 줄 알고 ‘걷다보면 지나가겠지’하며 땡볕을 거닐다 큰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택시는 쇼핑몰, 터미널, 공항에서만 잡아탈 수 있었다. 가격은 합승용 5뿔라(약 550원)와 스페셜(Special)이라 하는 개인용 25뿔라(약 3000원)로 구분되는데, 차에는 미터기가 없고 목적지에 따라 기사님이 가격을 부르기 때문에 적정 가격을 모르는 외국인은 바가지를 쓰기 쉬웠다. 나도 우리 동네와 수도에서 스페셜 택시를 타봤는데, 얼마차이는 안 나지만 손해 봤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흥정의 불편함이 따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스페셜 택시는 외국인이 이용할 수 있는 최선의 대중교통인 것 같다. 신뢰할만한 택시 기사분의 전화번호를 받아놓고 콜택시처럼 이용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콤비는 목적지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요금이 4뿔라(약 440원)로 싸고, 우리의 마을버스처럼 동네 구석구석을 이어주기 때문에 서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이동 수단이었다. 차종은 우리가 주로 어린이집이나 학원 통학용으로 쓰는 중형 승합차이고, 비교적 가까운 두 도시를 오가는 노선에도 많이 이용되었다. 그 허름한 차량들이 펑크 나지 않고 운행되는 게 신기할 정도로 콤비는 항상 사람들로 꽉 차 있는데, 우리의 어린이들이 타는 좌석에 거구의 남자들이 몸을 구겨 앉아 있는 걸 보면 밖에서 보는 나조차도 답답해졌다. 경험으로라도 콤비를 탈 엄두가 안 났던 건 사실 그 때문이었다.
외국에 나와 보면 서울 대중교통의 체계적인 시스템, 비싸지 않은 가격, 쾌적한 시설에 자부심이 더욱 생긴다. 아프리카에서 느끼는 마음은 오죽하랴. 그러나 이 넓은 국토 곳곳을 이어주는 수단이 현지 사정에 맞게 구축되어있으니, 나는 남의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떠올리거나 이곳 상황을 우리 기준으로 평가하는 과오를 범치 않기로 했다. 수도에는 최고급 브랜드의 새 차들도 많지만 보통의 현지인들에겐 중고차 구입도 엄청난 일이라 한 번 사면 오래 타고, 우리나라에서라면 진작 폐차됐을 차들도 여기선 그 명을 한참 더 이어갈 수 있다. 대중교통은 그런 헌 차라도 없는 사람들에게 발이 되어 주고, 뜨겁고도 먼 길을 동행해주는 친구였다. 자동차는 오늘도 사람들을 싣고 도로 위를 힘차게 달려간다. 그 차에서 스르륵 잠든 사람들은, 어쩜 잠시라도 그 삶의 무게까지 차에 의탁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모두 안전한 여행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