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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건강해 보여 다행이야

청결을 논하기 버거운 현실에 대하여

by 다온

우리 학교 학생들의 집안 형편이 다들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려운 것만은 확실했다. 물론 윤기 나는 얼굴, 빳빳하게 다린 셔츠, 깔끔한 헤어스타일, 예쁜 양말이나 머리핀, 향수 냄새 등 딱 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의 손길이 느껴지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교복의 하의는 회색이라 때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상의는 연한 하늘색이라 청결 상태가 금방 드러났는데, 상당수의 학생들이 항상 찌든 때로 얼룩진 셔츠를 입고 있었고 셔츠 위에 입는 스웨터는 때가 있는 것뿐만 아니라 크고 작게 해지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가장 충격을 주는 것은 몇 발짝 떨어져 있어도 악취가 풍긴다는 사실이었다. 아침 조회 시간에 교사들은 학생들 뒤편에 일렬로 서있는데, 바람은 어째서 꼭 앞에서 뒤로 불어오는지 학생들을 훑고 뒤로 전해진 공기는 늘 현기증이 나도록 불쾌했다. 그래도 야외일 때는 그나마 나았다. 교실에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구역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학생들이 어릴수록 상황은 심각했는데, 3학년 수업이 든 목요일이 두려워질 정도였다. 후각이 아무리 적응에 빠른 감각이라 해도 30여 명에게서 일제히 진동하는 특정한 냄새에는 감히 익숙해질 수 없었고, 환기를 위해 항상 출입문을 열어 놓고 수업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런 내 상태를 겉으로 표현할 수도 없고,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숨을 참고 있다가 학생들이 개인 작업에 들어간 타이밍에 조용히 밖에 나가 크게 숨을 몰아쉰 다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시 교실로 들어오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고, 학생들 옆에 서서 일일이 학습을 체크하는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에는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하며 솔직히 울컥했다.

양말.jpg 왼쪽 남학생들은 모두 회색 양말인데 오른쪽 한 여학생의 양말은 마치 공주처럼 돋보이네요

나는 비위가 약하고 위생에 민감한 사람인데,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나도 어떤 생각으로 아프리카 파견을 지원하게 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보츠와나의 타 지역 파견자들과 얘기해보면 위생이 이 정도로 열악한 곳은 없다고 하니, 아프리카라고 상황이 다 심각한 것이 아니긴 하다. 우리 지역의 문제는, 가난도 가난이지만 주범은 물이었다. 당장 식수도 없는데 몸과 옷을 깨끗하게 할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청결은 당장 배 채우기도 힘든 이들에게 사치이며, 먹을 물도 없는데 몸을 씻는데 물을 '낭비'할 순 없는 게 이곳의 현실이었다.


개인적인 성향이기도 하지만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보니 위생의 기본인 ‘손 씻기’를 항상 강조하며 살아왔고, 이것은 내가 아프리카에 가서 더하면 더했지 빠뜨릴 수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교육 기관에서 손 씻기가 왜 중요하고 어떻게 씻어야 하는지를 꾸준히 배워 내면화시키게 되지만,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직접 눈앞에서 보여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데 막상 발령지에 오니 물이 안 나와서 개별적으로 실습을 시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에는 2000L짜리 물탱크가 2개 있고, 이것이 학교가 가진 물의 전부였다. 관청에서 보낸 급수차가 탱크를 채워주는데 제 때 오지 않기도 하므로 물은 항상 아껴야 했다. 당장 실습한다고 호들갑을 떨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수업 중 간간히 학생들에게 ‘밥 먹기 전과 화장실 사용 후에는 손을 꼭 씻어야 한다’고 말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물탱크가 급식실 앞에 있어서 전자는 가능할지 몰라도, 학생용 화장실은 건물 뒤편 수풀에 쳐진 간이 천막이라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으니 내가 그 말을 하면서도 현실감 없는 소리로 느껴졌다. 참고로 교사들은 건물 내부의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되, 본인이 매번 물통에 물을 길어다 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학생들이 가끔씩이라도 각자 깨끗하게 손 씻는 경험을 하도록 핸드 워시를 구비해 놓기로 했다. 나는 두 개의 탱크에 'Wash your hands for your health'라고 쪽지를 붙이고 핸드 워시를 테이프로 고정시켜 놓았다. 그런데 그 날 바로 몇 시간 만에 두 통이 다 깨끗하게 비워졌다. ‘펌핑은 한 번만 하고 절대 이걸로 장난하지 말라'고 아침 조회 때 목청껏 외쳤건만 우려가 현실이 됐다. 6학년이 장난치는 걸 봤다는 3학년들의 신고를 받고 찾아갔더니 6학년은 7학년이 했단다. 화가 솟구쳤다. 어차피 범인은 찾을 수 없고 이미 다 끝난 일이니 흥분하지 말자. 아이들이 평소에 핸드 워시를 써본 일이 없고, 놀 거리가 없어 거품 내면서 놀았을 거라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이후 몇 번 더 핸드 워시를 구비했는데 나의 주기적인 잔소리 덕분인지 점점 정상적인 속도로 비누가 소모되었다.

20190614_091930.jpg 핸드 워시를 사용해 손을 씻어본 게 처음이라고 해요

이런 환경에 사는 동안 나는 보츠와나에서 응급실에 세 번을 갔다. 외국인이 갈만한 병원은 수도의 사립 종합 병원인 Life Gaborone Private Hospital (GPH) 한 곳뿐인데, 겨울이 시작되던 6월에 처음 갔던 그 병원 응급실을 귀국 한 달 전인 11월 말과 12월 초에도 가게 됐다. 모두 다른 원인으로 긴급하게 갔었는데, 다행히 링거를 맞으면 금방 회복했다. 학생들은 어리고 먹는 것도 부실하고 씻지도 못하고 주거환경도 열악한데, 딱히 누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배가 아파서 학교에 안 갔다는 옆집 아이를 보기는 있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 좋은 영양 상태에 각종 예방 주사도 맞고 나름의 지식도 갖춰 한국에서 온 나는, 보츠와나에서도 그들보다 잘 먹고 개인위생에도 노력을 기울이며 더 나은 환경에서 지냈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게 생활했다고 볼 수 없었다. 기온, 음식, 물, 나를 둘러싼 인적 환경 등 내게 피로감을 주는 것들에 대해 면역력이 더 필요했었나 보다.


나에게는 이곳이 적응의 대상이었지만 이 땅은 보츠와나 사람들에게 신토불이였다. 이 불모지를 견디고 살아온 사람들의 생존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인류 최초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데, 첨단 기술로도 해결하지 못할 위기가 지구에 찾아온다면 아마 인류 마지막 생존자도 아프리카 사람들이지 않을까. 모쪼록 물 문제도 해결되고 알맞은 교육도 병행되어 환경이 더 깨끗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청결함을 영위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내내 건강하게 잘 성장하길 빈다. 만약 아프더라도, 보츠와나는 의료가 무상이니 돈이 없어도 누구나 공립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우선은 안심이 된다.

20191005_022419.jpg 수도에서 가장 큰 사립 종합 병원 GPH의 응급식
병원.JPG 동네 공립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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