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요한복음 11장 17~27절

매일성경, 3월 7일

by 양승언

3월 7일(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11장 17~27절


나사로의 죽음과 조문 17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의 아쉬움과 믿음 20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과 마르다의 이해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의 신앙 고백 27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묵상하기

1. 예수님은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나사로의 상태는 어떠했으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17~19절)


2. 마르다는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했는가?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20~27절)


3. “네가 이것을 믿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4. 마르다처럼 당신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는 과거의 아쉬움에 매여 있거나, "마지막 날에는 살아날 줄 아나이다"라며 막연한 미래의 소망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오늘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제목은 무엇인가?


길잡이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하셔서 슬픔에 잠긴 마르다를 위로하시고,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선포하시는 단락이다.

• 나사로의 죽음과 조문(17~19절)

예수님이 도착하셨을 때 나사로는 이미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 지났다. 유대 전통에서 나흘은 영혼마저 떠나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한, 완전한 죽음과 끝을 의미한다. 많은 유대인이 위문하러 왔지만 그들의 위로는 죽음이라는 실존적 절망을 해결할 수 없었다.

• 마르다의 아쉬움과 믿음(20~22절)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는 곧바로 맞으러 나갔다. 그녀는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은 병을 고치실 수 있었다는 확신을 드러낸다. 물론 이는 예수님의 능력을 과거의 기적에 가두는 것이기도 했다.

•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과 마르다의 이해(23~24절)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을 안다고 마르다는 고백했지, 예수님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말하셨을 때 이를 먼 미래인 마지막 날 부활로만 이해했다.

•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25~26절)

예수님은 부활이 어떤 '사건'이나 '때'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을 선포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요한복음의 가장 위대한 선언 중 하나다. 예수님과 연합한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부활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생명이신 주님을 신뢰함으로 누리는 현재적 실제인 것이다.

• 마르다의 신앙 고백(27절)

"이것을 네가 믿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한다. 이는 예수님이 단순한 치유자나 훌륭한 선생님을 넘어, 사망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참된 제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르다처럼 당신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는 과거의 아쉬움에 매여 있거나, "마지막 날에는 살아날 줄 아나이다"라며 막연한 미래의 소망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오늘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제목은 무엇인가?


기도

나의 믿음이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막연함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신뢰함으로 어떤 절망 앞에서도 소망을 노래하게 하소서.


삶속으로

1859년, 전설적인 곡예사 찰스 블론딘이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줄을 매달고 외발자전거를 타며 건너가는 묘기를 선보였다. 거센 물살 위를 아슬아슬하게 건너온 그에게 수많은 인파가 환호했다. 그러자 그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제가 이 자전거 뒤에 사람 한 명을 태우고도 건너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사람들은 일제히 "믿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그는 가장 크게 소리친 한 사람을 지목하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당신이 이 자전거 뒤에 타십시오." 그러자 방금까지 믿는다고 외치던 사람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뒤로 도망쳤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했지만, 자기 생명을 온전히 맡길 '실제적 믿음'은 없었던 것이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을 믿느냐"는 질문엔 "예"라고 답했다. 하지만 지금 나사로가 살아날 것을 기대하지는 못했다. 우리도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라고 고백하지만, 정작 삶의 위기 앞에서는 그분을 신뢰하지 못한 채 절망하곤 한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물으신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주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우리의 삶을 문제를 맡길 줄 아는 하루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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