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이 주는 3가지 (부정적인) 자극
지금까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혹은 '피드백 드릴게 있는데...'라는 말을 듣고 기분 좋았던 적은 없다. 잘해봐야 '다행이다'라는 느낌 정도. 일을 하면, 피드백을 피할 수 없는데 도무지 피드백이라는 것이 익숙해지거나 잘한다는 느낌은 1도 없다.
그래서, 한 번 '들어도 기분 나쁘지 않는 피드백'에 대해 찾아보려고 한다. 찾다보면 조금은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으로. 일본의 디자이너 미즈노 마나부는 '센스'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동안 피드백을 못한다고 생각만했지, 한 번도 피드백에 대해 진지하게 궁리해본 적이 없다보니, 이번 기회에 궁리를 해봐야겠다.
피드백은 기본적으로 3가지 측면에서 사람에게 자극을 준다. 진실 자극(truth tirgger), 관계 자극(Relationshiotrigger), 정체성 자극(identity trigger)이다. (하버드 피드백의 기술/더글러스 스톤) 여기서 자극이라는 표현이 사람을 좀 헷갈리게 한다. 처음에 나는 교류분석에서 나오는 '스트로크' 개념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자극이다. 영어를 보면 트리거로 되어 있는데, 쉽게 말하면 피드백 받다가 언제 긁히냐. 이 긁힘에 대한 분류다.
피드백을 받다가 약간 뚜껑이 열리는 순간 중에 하나가 아예 틀린 이야기를 할 때다. '형이 아무에게나 이런 이야기안하는데, 너니까 특별히 이야기해주는거야'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가 틀렸다. 이럴 때 우리는 피드백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1) 피드백의 분류
그런데, 저자들의 글을 읽고 보면, 섣불리 피드백에 대해 판단하기 전에 분류를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피드백은 '인정'(고마움)과 '조언(더 나은 방법의 제시) 그리고 평가(자신의 위치)를 달려주는 것으로 분류된다. 피드백을 받는 사람은 보통 한 가지 유형의 피드백으로 해석하거나, 내가 원하는 피드백의 유형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내가 농구를 할 때, 덩크슛을 했다. 생전처음 덩크슛을 한 것때문에 너무 뿌듯해서 미치도록 좋다. 이럴 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인정 피드백이다. 혹은 평가 피드백일 수도 있다. '와~~ 우리 학교에서 이렇게 덩크슛 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을거야.' 이런 류의 방정 섞인 피드백
하지만, 나의 덩크슛을 보고서는 '이봐~ 그렇게 덩크슛 한 후에 림을 잡는 행위는 골대가 부서질 수도 있고, 그러면 부상을 당할 수도 있어. 게다가 덩크슛할 때 점프를 뛰는 위치가 너무 골밑과 가까웠어. 잘못하면 허리를 다칠 수도 있다고. 다음 번에는..................' 이런 피드백이 '조언'이다. 나는 당연히 짜증이 올라올 것이다. 그리곤 판단한다. 덩크슛해보지도 못한게 무슨 충고랍시고... 그의 피드백을 '틀렸다'고 여기기 쉽다. 아니...내가 기분나쁘면 피드백이 틀린거다. 반대로 내가 덩크슛에 실패해서 좌절할 때, 이 때는 조언이 필요하지 인정이나 평가는 원하지 않는다.
진실자극때문에 긁히는 순간이 온다면, 일단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상대방이 들려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분류해야 한다.
(2) 사각지대
피드백에 긁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사각지대때문이다. 나는 보지 못하는데, 타인들은 보고 있는 것. 아...이것, 당연히 있다. 그런데, 내가 못보는 것을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오.........나에게 이런 게 있었구나.'하고 감사하게 맏아들이기 힘들다. 내가 상상치도 못한 내용으로 피드백을 받았는데, 심지어 맞는 내용 같으면 역시나 기분 나쁘다. 이 글을 쓰면 쓸수록 난 좀스러운 놈이구나를 느낀다.
"피드백의 90%가 과녁을 빗나갔다 하더라도 나머지 10퍼센트가 당신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통찰일 수도 있다."
저자 선생님의 말에 동의하고 싶은데, 입이 안떨어진다. 90%의 잘못된 피드백을 구분하기는 정말 힘들다. 확률적으로 피드백을 하는 상황은 상대가 나보다 높은 위치이거나 연차가 높거나..하여튼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위치다. 그런 사람이 피드백을 하는데, 확률적으로 90%가 틀리다면 멀리해야한다. 그가 주는 10%의 통찰보다는 잘돗된 90%의 피드백이 가져다 줄 리스크가 커 보인다. 저자 둘은 하버드 법대 교수다. 그 둘이 법조계 혹은 학계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는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현실에서는 리스크가 큰 선택으로 보인다.
피드백의 인식은 당연히 '누가' 피드백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메세지보다 메신저를 먼저 판단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이건 오류가 아니라, 본능이고 아주 효율적인 선택이다. 메신저를 신뢰하면, 방금 이야기했던 피드백의 분류나 사각지대에 대한 판단을 안할 수도 있다.
(1) 선로 변경
저자들은 '늦지마'라고 피드백을 줬는데, 듣는 사람들은 '나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마'라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늦으면 안되는 내용을 전달했는데, 누가'라는 주제가 내용을 압도한 것이다. 피드백을 들을 때에는 초점을 이동시키면 안된다. '선로를 변경하지 말라'라고 했는데, 피드백을 들을 때의 태도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옳은 이야기니까 더 이상 반박은 하지 않겠다.
(2) 관계 시스템을 파악하라
피드백은 관계의 맥락에서 생성된다. 피드백을 전하고 들을 때, 상대방이 누구고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그와 나 사이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이 부분은 저자의 설명이 모호하다. 글은 길게 썼지만, 100% 이해하기 어렵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단 저자의 주장이 장점은 명확하다. 내가 듣기 싫은 피드백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방에 대해서 비난이나 적개심을 갖기 쉽다. 하지만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위치에서 왜 나에게 이런 피드백을 했을까?'를 떠올리게 된다. 결국 피드백의 출발점은 둘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육성해야 하는 관계, 누군가를 팀원으로 두고 성과를 내야 하는 관계. ㄱ
관계 시스템을 파악하다보면, 그의 의도가 좀더 명확해질 수 있다. 그의 시선에서 잠시라도 피드백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기분 나쁜 피드백의 대부분은 이 정체성 자극이다. 내가 만들어온 정체성에 대한 위협. 여기서 벗어나기 어렵다.
(1) 왜곡을 없애라
피드백을 실제 크기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지나치게 확대할 필요도 없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게 말은 쉽지. 저자들이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를 한다. 김훈 작가님이 '칼의 노래'에서 가지고 있는 세계관. 즉, '사실을 사실로만 받아들인다'는 것은 문학의 세계에서는 작동할 수 있다. (김훈 작가님이 바라본) 이순신에게는 가능한 사고방식이지만, 우리같은 범인이 과연 가능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하니까, 하버드 교수님들이 이 책을 썼다고 믿겠다.
(2) 성장형 정체성
결국은 성장형 마인드셋을 갖춰라..이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성장형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도, 관계가 뒤틀린 사람이 피드백을 한다면, '성장을 위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성장형 정체성으로 피드백의 부정적인 자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피드백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둘 다, 서로의 관계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게 없다면, 정체성 자극이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
'하버드 피드백의 기술', 피드백에 대한 이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나의 언어로 피드백에 대해 정리해 볼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