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불꽃

질량과 양자장 이론으로 본 인생

by 작은길벗 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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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질량'에 관한 과학 칼럼을 읽었다. 시처럼 아름다운 칼럼이어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자들이 생각했던 사고방식을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물질은 우주의 근본적인 구성요소로 여겨졌다. 물질을 아주 작은 단위로 계속 쪼갠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 요소가 질량을 가진 물질일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은 그런 생각에 반하는 결론을 내린다. 물질을 원자로 나누고, 원자를 소립자로, 소립자를 양자장과 힘으로 나누게 되면 물질은 사라진다고 한다. 이 단계가 되면 물질은 더 이상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질량은 무형의 양자장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만들어지는 파생적인 양에 불과하다.

우리가 질량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양자장이 만들어내는 현상일 뿐이다. 우리 세상은 질량을 가진 여러 물질로 가득하지만, 사실 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양자장의 에너지이다. 질량이라는 본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양자장이 만들어낸 현상이 본질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초기 노트를 보면 우리가 흔히 외우는 E=mc^2이 아니라, M=E/(c^2)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질량이 에너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질량을 결정한다고 통찰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질량을 상대화해서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량은 달이든 지구이든 어디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값이라고 여겼지만 알고 보니, 질량이 본질이 아니다.
양자장의 작용으로 소립자들이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춤을 추고 회전하는 것. 그것이 본질이다.

그런데 소립자는 왜 춤을 출까? 그건 제일 의지가 소립자에게 춤을 추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질량의 원인은 현상이며, 그 현상은 에너지가 만들어 내는 춤이다. 그 춤을 만드는 최초의 기저 원인, 제1 의지가 근원적 본질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불꽃을 본다. 불은 물질이 에너지를 교환하며 춤을 추는 것이다.
불의 실체는 없다. 현상만 있다. 그러나 현상 자체로서 불은 실존한다.

우리 인생도 불꽃이다. 우리도 춤을 춘다. 내 본질이 춤을 추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추는 춤 그 자체가 바로 나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우주에서 우리 지구를 본다면 어떠할까? 지구가 자체로 빛을 발하는 행성은 아니지만, 아마 나는 지구도 가시광선의 대역을 넘어서 은은한 빛을 비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 모인 수많은 개체들이 서로 에너지를 교환하며 춤을 추고 있으니깐.

새 날이 밝으면 다시 춤을 출 때이다.
내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다. 내가 추는 춤이 바로 나이다.

기쁨의 춤, 자유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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