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말인데, 요즘은 촌스러운 말들이 있다.
전에는 막대형 얼음과자를 '하드'라 했는데, 요즘은 아이스크림이라 한다. 하드는 Bar형이고, 아이스크림은 Con형이었다. 기하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지금은 모양이 어떻든 다 아이스크림이다.
언젠가 후배분에게 월남국수 좋아하냐고 물으니, 눈을 똥그렇게 뜨고는 쳐다본다. 그러자 옆에 앉은 다른 분이 베트남 쌀국수라고 고쳐 일러 준다.
그러자 모두들 '아~'
지금은 광고와 선전의 개념이 다르지만 예전에는 구분이 희미했다. 아직도 60대 분들이 '선전 따라 하냐?" '선전하고는 다른데..."라고 말씀하시는 걸 본다.
그때 한국외대에는 화란어, 서반아어, 불란서어 등 학과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젊었을때 할머니는 내게 "이제 컷으니, 차도 부리재? 대단타" 하셨다. "운전면허 잘 땄다." 하신 것이다.
그 때는 약간 촌스럽게 느껴졌는데 (마치 소를 부리듯이, 차를 부린다고 하셨으니), 지금은 그런 말을 좀 더 오래 들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그 세대들의 말은 왜 촌스러울까? 그건 우리가 서로 다른 세월을 살았기 때문이다. 세월은 공간의 분리보다 더 다른 세상이다. 그 다른 세상의 언어가 왜 촌스럽게 들릴까? 그건 그 분이 시간의 벽을 넘어 내게 다가 왔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젊다는 뜻이다.
어떤 오랜 타자 앞에 내가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식론적 관점에선 타자가 없다면 나도 없다. 촌스런 언어가 내 귀에 들린다는 것은 내 삶이 그래도 다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 중에 어떤 이들은, 타 부족에게 촌스럽게 보임을 감수하더라도 꾸준히 말을 건넨다.
“아들~. 국 다 식는데이” 어머니가 부엌에서 소리친다.
대부분의 사랑은 촌스럽고 귀찮은 형태로 온다. 이제 내가 그런 촌스런 언어를 쓸 차례가 점점 다가온다. 나중에라도 그 언어의 청자가 몇이라도 있길 바란다.
또 그런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언어들이 병원이나, 요양원, 고교 68회 동문회가 아닌 우리들의 일상과 삶의 터전에서 더 많이 자주 들리길 바란다.
지난 여름, 길을 걸을때 누군가 고대 갈릭어로 말했다.
"날도 더븐데 하드 한개씩 무까?"
그때 그의 말을 알아듣고, 또 다른 이가 웰치어로 답했다.
"네. 더울 땐 역시 하드죠...근데 사무실 들어가는 길에 다른 부서원들 위해서 '아아'도 좀 사가는게 어떨까요?"
"그러췌. 사무실 들어가는 길에는 역시 '아아'지..."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