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축구는 전쟁의 대리다. 베스트 11을 스쿼드, 주장을 캡틴이라 부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시각 대로라면 감독은 지휘관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지휘관, 또는 감독의 일차적 자질은 뭘까. 자신이 맡은 조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는 방법론과 지향점을 구축한다.
클린스만은 지향과 방법론이 아니라 소망으로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이 말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헤르타 베를린 재임 시절부터의 모든 인터뷰 전문을 보건대, 이게 그냥 그의 세계관이다. 내가 간절히 원하면 될거야!
나는 거기서 '온 우주의 기운'이 화제가 됐던 2016년이 생각났다.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의 화법.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세상을 자신의 도구 및 연장으로 인식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목표란 그저 바람을 투사하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저 내가 바라니까.
대개의 경우 이런 사람들이 리더가 되면 모두가 고생한다. 방법을 위한 기술적인 고민을 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나를 도와줄 사람들에게 맡기면 끝이다. 이런 이들이 조직의 목적과 기술적 방밥론에 정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조직 운영 방식도 '해 줘!' 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누구도 이걸 통솔이나 지휘라 부르지 않는다. 김성근 감독이 예전에 말했듯 리더는 늘 방법론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방법론 부재의 끝은 결국 리더십 붕괴다. 이미 선수들끼리의 집단지성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는 정황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나는 웨일즈와의 평가전에서 이미 그 흐름을 읽기 시작했다. 추측이 아닌 확신을 한 계기는 아시안컵 조별리그 2차전이었다. 참다참다 폭발했다. 브런치에 쓰던 전술 리뷰를 16강전부터 쓰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전술 체계의 문제라고 하면 그를 너무 높게 평가한 것이다. 대표팀은 사실상 방임상태에 빠져 있었다.
아시안컵이 참사로 끝난 건 끝난거고, 나는 이런 유형의 리더들이 권한을 행사할 때 사회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다시금 곱씹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