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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May 10. 2018

제주 4.3 문학 | 화산도 완독기

내가 70년 전 제주의 청년이었다면?

원고지 2만 2천 장, <화산도>를 읽다.


제주 4·3 평화상 1회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는 기사를 통해 처음 <화산도>라는 책을 알게 됐다. (그때 김석범 선생님의 수상소감 때문에 꽤 시끄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였다. 읽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방대한 분량이 부담이 돼 선뜻 책을 시작할 용기를 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4월 초 4.3 70주년을 맞아 제주를 방문했던 <화산도>의 저자인 제일제주인 김석범 선생님의 강연을 듣게 됐다.


부끄러움. 사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는 없었겠지만, 어찌 되었든 <화산도>를 실제로 읽게 만든 것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때문이었다. 사실 김석범 선생님의 강연을 참석한 것은 <화산도>에 대한 줄거리와 더불어 4.3을 알기 쉽게 정리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나의 안일한 기대감이 있어서였다.


그래서였을까? 강연을 들을수록 표면적으로만 4.3을 이해하려고 했던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들었고, <화산도>를 읽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도 왠지 염치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내게 쉬운 정보들만 골라 아는 체할 줄만 알았지, '적극적으로 4.3을 알려는 노력은 얼마나 했을까'라는 물음에 솔직히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마치  결심을  사람처럼 4월이 끝나기 전에 완독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화산도> 읽기 시작했다. 이후   며칠을 밤을 새워가며 4   동안 <화산도> 빠져 살게 했다. (처음 찾아간 도서관에는 1987 발간됐던 5권짜리 화산도밖에 없어 중간에 2015년에 발간된 으로 바꿔 읽었다.)



내가 70년 전 제주의 청년이었다면?


<화산도>는 12권에 걸쳐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1948년 2월 26일부터 이듬해인 1949년 6월, 무장대가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의 15개월 동안의 여정만을 담고 있다. 작품의 주요 무대는 제주도이지만, 서울과 목포뿐만 아니라 일본을 배경으로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주요 배경이 제주도라 소설의 배경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어 더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 않았나 싶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시작이 어려웠을 뿐, 생각보다 읽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생동감 있게 70년 전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 읽을수록 책 읽는 속도가 붙는 책이었다. 소설을 통해 70년 전 이 땅의 청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왔는지를 소설 속 등장인물과 현재의 우리가 오버랩되면서 읽는 재미를 더했다.


소설은 독립 운동가였으나 전향을 약속하고 병보석으로 출옥한 이방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방근은 해방 후에도 친일파가 친일에서 반공으로 이름을 바꿔 득세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하지만 분노는 허무함으로 바뀌고 하는 일이라곤 소파에만 붙어있거나 술만 마시며 방종한 생활을 이어간다. 표면적으로는 허무주의자로 생활하고 있지만 이방근은 게릴라 측과 서북 양쪽으로부터 인정받아 활동을 끊임없이 강요받는 인물이다. 이방근은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타락한 부르주아’, ‘반혁명’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시대의 유행을 타거나 권력 쪽에 서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이방근은 서서히 사건의 깊숙이 관여하게 되고 결국은 "단지 친구를 위해, 친구를 죽게 하고 싶지 않아서"(10권) 어떻게 될지 모르는 비현실적인 게릴라 탈출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이야기는 또 다른 주인공인 게릴라 남승지의 시선을 따라 일본을 오가기도 하고 제주 성내와 성 밖을 오가며, 4.3 당시 같은 제주 내에서도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 있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간혹 (제주 4.3을 겪었을 세대의) 어른들 중에 4.3을 겪지 않았다고 하거나 제주 4.3이라는 것은 없었다고 말하는 분이 계셨는데, 책을 읽고 나서 당시 성내에 사셨던 분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내의 국민학생과 중학생들은 노역에서 제외되었다. R리와 그 외 지방에서는 4.3 봉기 후, 교원들이 모습을 감추기도 해서 반년 이상 휴교가 이어졌기 때문에, 소년들은 하루 종일 돌을 나르는 등 노역에 동원되었다. 동란이 한창인 마을의 아이들이 보기에는 성내는 안전하고 마치 다른 세계, 돌을 나르지도 않고 학교에 갈 수 있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11권)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70년 전 제주의 청년이었다면?’이라는 상상을 계속해서 했고,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난 어떤 분류의 사람이었을까?’, ‘나는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그 시대의 청년이라면, 어찌 되었든 선택은 숙명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이방근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그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선택을 강요를 거절할 수 있었을까?


'왜 항쟁을 시작했는지', '정말 승리를 확신한 것인지?’, '제주를 탈출한 간부들에 대한 마음은 어땠는지?', '동료들이 배신할까 두렵지는 않았는지',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는지', '이런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왜 게릴라가 되었는지', '혹시 저 사람이 내일이면 나를 배신하지 않을까?' 등 <화산도>를 읽으면서 질문들은 쌓여만 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병든 조국’이 아니라, ‘미친 조국’의 상황입니다. 우리에게 절망만 주는 조국의 상황입니다. 우리 청년들은 괴로움으로 번민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타파하고, 일대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입니다. 조국의 분단을 막고, 신생 조국의 통일과 건설은 우리 청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4권)
“... 노예 민족은 노예로 있는 한, 인간이 아니다. 독립을 위해 저항하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고, 그것이 자유이다.”(6권)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냐'라고 소설은 내게 자꾸 질문을 던져왔다.


독자로 하여금 이런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 만큼 <화산도>를 통해 제주 4.3이 왜 일어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으며, 또한 현재 4.3은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4.3이란 무엇인가.


소설을 읽으며, 나름 이 질문에 답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해방 이후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의 질서가 냉전구도로 재편되면서 미국에 의해 세워진 이승만 정부는 권위와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반공을 내걸고 제주을 말살시키고자 했다. <화산도>에서는 이런 시대적 상황을 그려내면서 제주를 말살시키기 위해 '태평양 너머에서 온 외적(미군정)과, 제주해 너머에서 온 같은 조선인이라는 외적(이승만 정부의 군경, 서북 등)'에 맞서 싸운 항쟁이라고 4.3을 정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4.3은 제주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이며, 4.3의 원인을 제주에서만 찾아야 하는 게 아니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우리 제주도민은 빨갱이이고,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니 죽여도 된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정부의 고관이나 현지의 토벌부대 사령관 중에는, 가솔린을 섬 전체 여기저기에 뿌리고 불을 질러 30만 도민이 전멸해도, 대한민국의 존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 놈도 있습니다." (9권)



그들은 왜 게릴라가 되었나?


<화산도>는 제주만의 이야기이거나 제주 4.3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친일파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다. '친일 애국에서 반공 애국'으로 친일파들은 생존을 위해 4.3 진압을 했다고 말하며 친일파 문제가 어떻게 제주 4.3과 연결되어 있는지 꾸준히 이야기한다. 그래서 제주 4.3을 좌와 우 한쪽의 이데올로기에 치우쳐 바라보기보다는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과오로 인한 비극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 내의 친일파 숙청. 반민특위의 승리는 제주도의 승리가 된다.”(12권) 해방 후 친일청산이 되었다면, 제주는 다른 역사를 맞이했을 것이다.


제주는 “옛날부터 중앙으로부터 멸시당하고 학대받아온 반항의 땅”(7권)이었다며, "왜 제주도 사람은 살해되어도, 포학, 기아에 허덕여도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빨갱이’ 사냥으로 수많은 도민들이 체포되고 사살되는 현실, 그러한 잔혹 행위와 폭행, 약탈을 피해 산으로 올라 간 도민들은 자연스럽게 게릴라가 되거나 산속의 피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4.28 정전 협상마저 모략으로 파괴되고 만다.


"아무도 게릴라 투쟁이 좋아서 계속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4.28 정전 협상을 파괴하고, 빨갱이 섬 소탕이란 명목으로 탄압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적입니다. 게다가 이 또한 모두 외적. 태평양 너머에서 온 외적과, 제주해 너머에서 온 같은 조선인이라는 외적들. 아닙니까? 화평의 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그저 굴복할 것인지 철저히 항전해서 거기에서부터 최후의 살 곳을 찾을 것인지가 아닙니까! 이방근의 논리는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10권)



그들의 판단은 틀렸다


소설은 어쩔 수 없이 게릴라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을 대변하지만, 제주를 반공의 희생양으로 삼은 정부와 토벌대뿐 아니라 무장대에 대한 비판도 신랄하게 한다.


중앙당의 지시 없이 제주에서 투쟁을 시작했던 게릴라 사령관은 제주를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도층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10.24 선전포고 삐라 살포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무책임한 게릴라 지도층을 꼬집고 이들의 잘못된 판단과 무모한 결정이 곧 수많은 희생으로 이어졌음을 비판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남승지는 이동 중 추운 겨울 눈사태로 죽은 소를 발견하여 "고기는 혁명이다."라고 외치지만 이내 눈보라로 인해 게릴라들의 식량이 될 소를 구할 수 없게 되자, "눈보라는 반혁명"(12권)이라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노골적으로 신앙과 다름없는 절대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내세운 좌익 만능주의와 ‘혁명’ 아니면 ‘비혁명’, ‘인민영웅’ 혹은 ‘반동분자’, ‘투쟁’ 아니면 ‘투항’ 등으로 분리되는 조직의 이분법적인 논리를 비꼬았다. 이 단순한 의식 구도는 '반혁명'이거나, '투항주의', '기회주의'라는 이유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하루라도 유혈을 보지 않은 날이 없는 이 땅. 여수•순천 땅에서 반란군 측과 정부군 측이 살해한 사망자는 수천 명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개천에 트럭으로 버려진 쓰레기처럼 트럭으로 바다에 버려진 사체는 무엇인가. 반란군과 행동을 함께하는 좌익단체가 많은 주민을 자신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살해한다. 혁명세력이 말이다. 살해는 ‘혁명’도 ‘비혁명’도 마찬가지로 살인하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다. 살해의 명분은 무너지고, 이름을 바꾸면 게릴라가 ‘서북’이 된다. (11권)


소설의 이름을 빌렸을 뿐, 70년 전 바로 이 땅에서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실제로 겪었을 4.3의 비극과 마주해야 했기 때문에 두꺼운 책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압박감이 책을 읽는 내내 이어졌다.


책의 후반, 초토화 작전으로 이야기가 흐르면서 책 읽기는 버거워졌다. 한 숨을 쉬며 자꾸만 책을 내려놓고 쉬게 된다. ‘토끼 몰이식’ 초토화 작전에는 인간은 없었다. 인민 해방을 외쳤던 게릴라 역시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고 수세에 몰린 혼돈 속에서는 토벌대와 다름없었음을 비판하고 괴로워했다.



반드시 그날이 온다!


사건이 발생한 원인에는 5.10 선거라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중 하나는 분명 제주로 내려온 ‘서북’에 있었음 빼놓지 않는다. 제주사람들은 3·1절 총격사건 이후 내려온 ‘서북’과 경찰들의 테러와 잔혹행위로 인해 게릴라가 되거나 산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 끼워진 역사로 안타까운 순간이 너무도 많았다. 4.28 화평 협상을 파괴하기 위해 계략을 꾸몄던 경찰은 이후 그 거대한 비극을 상상이나 했었을까?


언젠가 장래에, 네 생일과 4월 3일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4월 3일이 결코 저주받은 날이 아니었다는 것을.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너는 내 나이에 가까워진다. 30년 후, 이 불행한 민족과 나라 위에 행복이 있을까. 들어보거라, 난 우리 나이로 서른넷이다. 30년 후에는, 난 지금 아버지의 나이가 된다. 그전에 세상에 있을지 없을지는 차치하고 말이다. 아아, 형님, 저는 이틀 먼저, 4월 3일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그래, 그런 날이 반드시 찾아온다. (12권)


소설은 무장대장 이성운(이덕구)이 사살되고 무장대 세력이 사실상 완전히 진압된 6월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제주 4.3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반세기가 넘어서야 정부 차원의 사과가 이루어졌지만, 유해발굴부터 유족들에 대한 제대로 된 배보상 문제는 여전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상규명 역시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4.3에 대한 정명 문제도 숙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방근의 바람처럼 이 모든 숙제를 푸는 날이 반드시 찾아오리라고 믿는다.



<화산도>를 읽자


12권의 책을 읽는 동안 수없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관련 자료를 찾아봐야만 했다. 놓치고 있던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동안 4.3을 이해하기보다는 시험을 보는 수험생처럼 국사책을 암기하듯 외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화산도>는 독자에게 자꾸만 질문을 던진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남승지와 이유원, 오남주, 박산봉과 부엌이 등 역사책에 담기지 못 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수없이 그려봤다. 책을 읽는 내내 소설 속 인물이 되어 의심하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처럼 생각하고 고민했다. 날짜순으로 나열되어 숫자로만 점철된 역사 속에서 비로소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참담한 비극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것일까?'

소설은 묻고 또 묻는다. 불편하다고 해서 침묵하고 우리가 편한 정보만 취하는 순간, 역사는 왜곡된다. 그리고 지워져 사라진다. 우리에게 오랜 시간 침묵하도록 강요되어 온 역사가 이제야 조금씩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제부터 정말 시작이다. 제주 4.3이 단순히 '비극'으로만 기록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로써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우리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불편한 진실에 눈 감지 않는다면 그날이 반드시 찾아오리라 믿는다.


읽는 내내 메모한 분량도 어마 무시했다. 더 늦기 전에 읽는 내용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개인의 기록을 위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쓴 글이라 두서가 없다. 조금씩 다시 정리하고 수정을 해나가야겠다. 다시금 원고지 2만 2천 장의 글을 쓴 작가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온다.


김석범
1925년 오사카(大板)에서 태어난 김석범은 평생에 걸쳐 ‘제주 4·3 사건’에 관련된 작품 집필에 매달렸다. 그는 18세인 1943년에 제주도에서 일 년여 머물며 의기투합한 청년들과 조선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1945년 3월에는 중국으로 탈출해서 임시정부를 찾아간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오사카로 돌아가야 했다. 해방 후인 1946년에도 그는 서울로 돌아와 국학자 정인보 선생이 설립한 국학 전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사카로 밀항한 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김석범이 ‘제주 4·3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주도에서 밀항해 온 친척으로부터 제주 민중들의 참혹한 학살 소식을 접하면서부터였다. 이후로 그는 야만적인 권력에 의해 자행된 ‘제주 4·3 사건’의 문학적 형상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나이 32세 때인 1957년에 발표한 [간수 박 서방(看守朴書房)]과 [까마귀의 죽음(鴉の死)]에서 시작해, [관덕정(觀德亭)](1961), [만덕 유령 기담(万德幽靈奇譚)](1970)과 [ 月](2001)에 이르기까지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김석범은 1988년 다시 고국을 찾을 때까지 정권의 회유와 압박으로 많은 괴로움과 좌절을 겪어야 했으며, 제주 4·3 평화상 1회 수상자가 되었을 때도 이념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조국의 진정한 통일과 미래를 위한 망명 문학이 부정되는 현실에 맞서 자신의 문학은 ‘망명 문학’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만약 그가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면 [화산도]는 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문학계에서도 김석범은 일본어로부터 자유와 해방이라는 고뇌를 안고 작가 활동을 해왔다. 일본어를 절대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보편성에 근거한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면서, 조선인 작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는 길을 지향했다. [화산도]로 1983년 아사히신문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상과 1998년 마이니치(每日) 예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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