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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Jul 26. 2022

그럼에도 사소하지 않은 나의 일상에 대하여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은근슬쩍 당한 인종차별에 대해 일러도 아빠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애들이 네가 인도 사람인지 알았을까? 넌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는데.”  
p.93-4


이민에 대한 많은 것은 상실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첫 번째로, 사람들을 잃는다. 앞으로 죽을 사람들과 이미 죽은 사람들. 그리고 역사를 잃는다. 고국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다음 세대는 점점 더 서구화된다. 그리고 추억을 잃는다.  p.134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는 인도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부모를 둔 이민 2세대 여성, 사치 코울이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캐나다인이면서 동시에 인도인이면서 동시에 캐나다와 인도 그 어디에서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 사치의 고민과 삶을 무겁지 않게 담아냈다.


사치는 가족과 사랑, 우정, 술, 트위터, 왁싱, 페미니즘, 피부색, 인도의 문화 등 일상에서 겪어온 경험을 통해 20대 여성으로서, 저널리스트로서, 비백인 이민 2세대로서 대면해야 했던 다양한 삶의 순간을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거침없이 풀어낸다.


자라온 배경이나 환경도 너무도 다르지만,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만나게 된다. 나는 90년대생도 아니고, 캐나다나 인도에 살지도 않고, 더더욱 나의 부모는 머나먼 타국으로 이민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삶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직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사회적 편견과 불의에 분노하고, 지나간 과거에 후회하고.... 이런 사치의 모습은 분명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던 모습들과 다르지 않다.



밝든 어둡든 어차피 다 갈색이어도 밝은 갈색 쪽이 낫다고 여겼다. 그건 판에 막힌 셰이디즘(피부색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 인종차별과 다른 점은 같은 인종 내에서도 피부색의 명도 차이로 차별한다는 것이다)이었다.
p.79

북미 대륙으로 처음 온 이민자 부모들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신들을 백인주의와 동화주의의 파도에 내맡긴다. 자연스럽게 자녀들도 삶의 절반 정도는 똑같은 과정을 겪는다. 대개 이렇게 살다 결국 반대 방향으로 기울게 되는데, 그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그저 숨어 살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p.73


생존을 위해 자신의 뿌리 정체성이 배제되는 상황에 분노하면서도 인도에 잘못된 관습에도 문화라는 이유로 모른 척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인종 차별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백색 피부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사치의 모습은 모순적이지만,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고 엮이는 그 지점, 지점에서 나와 사치는 만나고 헤어졌다. 국적과 인종, 나이 등 다른 점은 무수히 많았지만, 우리는 같은 역사적 큰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같은 성별이며, 비슷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있다는 것 등 이미 많은 부분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동안 사치는 점점 가깝게 다가왔다.


9ㆍ11 테러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어디 출신인지 그리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문제였더라도 그전까지 나는 기억도 안 날 만큼 미묘하게 선 넘는 먼지 차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p.74


비혼 여성, 비백인, 지방 거주자, 채식주의자..... 등 다양한 정체성과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주류가 되었다가 비주류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이런 목소리를 냈다가 어떤 경우에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모순적인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어쩌면 개개인 각자의 삶 속 다양한 모습이 삶은 단순하지 않고 다양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와 동시에 내편, 네 편 아웅다웅해도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거기서 거기더라. 뭐 아무리 세상 소란 시끄러워도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


- 사치 코울 | 작은미미 | 문학과지성사, 2021  

- 분야/페이지 | 문학 > 영미에세이 /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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