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계속 가보겠습니다>
<검사 선서>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p.318
사회적 약자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검사, 그들 대신 싸워주겠다고 나선 검사?
솔직히 책에 적힌 활자 그대로 믿지 못해 읽는 내내 불편했다. 임은정 검사가 계속해서 되뇌는 검사 선서를 읽을 때마다 금세 웅장해지는 내 얄팍한 마음 때문에 더 불편했다. '정신 차려! 저건 단지 텍스트일 뿐이라고!'
피해자들 대신 세상을 향해 울부짖어 주는 것. 이들 대신 싸워주는 것. 그리하여 이들에게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 변호사들이 피고인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해야겠지. p.25-6
‘대한민국에 이런 검사가 있다고?’ 내가 아는 검사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속고만 살았냐고?,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용기가 참 부럽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겐 그런 용기가 없었다. 분명 임은정 검사에 대한 호감으로 책을 들었지만, ‘정의’와 ‘진실’을 이야기하며 국민의 편에 있다는 책 속의 검사의 모습(혹은 마음)은 익숙하지 않았다. 권력과 자본의 곁이 아니고? 그만큼 검사와 검찰 조직에 대한 불신은 깊었다.
검사의 언행과 결정의 무게, 그 파급력을 안다면 생각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수 없지요. 책임은 위가 아니라 검사가 지는 거니까. 짊어진 하늘을 버거워했던 아틀라스처럼 모든 검사가 검사의 권한과 책임의 무게를 버거워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모든 검사가 그 무게를 버거워하며 신중하게 권한을 행사하고 그 책임을 감당했다면,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이렇게 거세지 않았을 텐데.... p.56-7
검사는 법정에서 피해자의 고통과 절망, 우리 사회의 분노와 자책, 피고인에 대한 연민과 충고 등을 모두를 대신하여 법정에서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재심 사건이어서 공소 취소를 할 수 없어 무죄가 선고되어야 할 사건이라면, 검사는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분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를 우리 사회를 대신하여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p.67
그러면서도 내심 저런 검사들로 검찰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검찰조직을 조금 더 내 삶 가까이에 있는 다른 곳으로 상상해 봤다. 내가 경험해 왔던 조직… 사실 다르지 않았다. 직장 내 정치, 갑질, 잘못된 줄 알면서도 끊이지 않는 관행, 보신주의 그리고 조금만 자신과 다른 소리를 해도 ‘너 정치할 거야?’라고 비꼬는 사람들까지… 노력해도 바꾸지 않는다는 절망감, 혼자서 떠는 듯한 외로움, 외면하고 있다는 죄책감… 비단 검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잘못이라면 바로잡아야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하는 자성은 자성이 아닙니다. 검찰이 사건 관련자들의 인권과 명예를 짓밟고 사법 정의를 조롱할 때 침묵하다가, 손에 움켜쥔 검찰권을 내어주어야 할 때 국민과 인권 보호를 앞세우며 목소리를 높이고서야 공익의 대표자라 할 수 있을까요? p.162-3
‘나였다면…’ 굳이 무엇을 위해서 그런 험한 길을 간다 말인가…
세상의 야속한 소리에 주저하게 될 때마다 하늘을 우러러 더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를, 살아내기를 다짐하는 검사 임은정. 외로이 홀로 앞서 가고 있는 사람이 실수를 기다려 손가락질하는 사람보다는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늦게서야 비뚤어진 마음으로 보던 편견을 덜어내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사법은 소리입니다. 법정에서 당사자의 잘못을 충고하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소리입니다. 그리하여 사법은 개개인의 양심을 일깨우고, 이 시대와 우리 사회에 따뜻한 정의를 일깨워 사회적 약자들의 의지처가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막중한 사명을 법원과 나눠가진 검사에게 법률과 국민이 어떠한 자세를 요구하는지, 법원은 아름다운 합창을 위하여 검사에게 어떠한 하모니를 원하는지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p.89
이제는 더 이상 나만 옳은 척 편하게 누군가를 손가락질만 하며 살 수 없다. 나도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있다면,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행동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편하고 쉬운 선택보다는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마무리는 부탁과 다짐과 같은 약속으로…
임은정 검사님, 부디 굳건히 버텨주시길…
검사님의 옆에 함께 하겠습니다.
역사에 헛됨은 없습니다. 문이 열릴 때까지, 벽이 부서질 때까지 저는 두드릴 것이고, 결국 검찰은 바뀔 것입니다. 그 벽이 아니라 벽을 부수는 귀한 역할이 제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계속 두드려 보겠습니다. p.227
보태기 | 책 이후 이야기
지난해 12월 22일 법원은 임은정 검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집중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는, 이른바 ‘검사 블랙리스트’(검사 집중관리제도)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국가가 10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이에 지난 1월 10일 법무부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계속 가보겠습니다>
- 임은정 지음 | 메디치미디어, 2022
- 분야/페이지 | 사회과학 > 정치 / 3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