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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Jul 29. 2024

용서의 의미

책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2차 세계대전 독일의 패전 이후 ‘나치 헌터’로 알려진 시몬 비젠탈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대한 경험을 다룬 1부 「해바라기」와 시몬 비젠탈의 글에 대한 53명의 답변을 담은 2부 「심포지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에서 시몬 비젠탈은 1940년대 초반 수용소 생활에서 겼었던 경험을 풀어낸다. 비젠탈은 외부 작업에 투입되었다가 우연히 죽어가는 나치 장교를 만난다. 죽음을 앞둔 나치장교는 간호사에게 유대인을 불러달라고 요청을 했고, 마침 작업을 위해 병원에 있었던 비젠탈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 나치장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유대인 학살에 참여했음을 고백하고 비젠탈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비젠탈은 침묵을 유지한 채 병실을 나온다.


"제가 애초부터 타고난 살인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더니 갑자기 잠잠해졌다. "저는 슈투트가르트 출신이고, 올해 스물한 살입니다. 죽기에는 이른 나이죠.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다 못 했고요." (p.57-8)


외부 작업을 마치고 수용소로 돌아온 비젠탈은 ‘죽어가는 나치장교를 용서해야 했을까’ 질문을 되뇌며 동료 수감자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공유한다.


"누군가가 자네에게 저지른 짓에 관한 한, 자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용서하고 잊어버려도 되지.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문제니까 말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자네의 양심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오히려 끔찍한 죄가 될 수 있을 거야." (p.109)


"그가 자네에게 용서를 구한 이유는, 유대인을 단지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에게 자네는 그 집단의 일원이었고, 또한 그에겐 마지막 기회인 셈이었지." (p.133)



비젠탈의 질문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된다.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시몬 비젠탈의 질문에 53명의 전 세계 지식인과 종교인, 지도자, 예술가들이 응답한다. 응답자 중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유대인뿐만 아니라, 보스니아 학살의 생존자와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생존자, 인권운동가, 작가, 언론인, 사회학자 그리고 가톨릭과 유대교의 성직자, 달라이 라마와 이슬람교의 종교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질문에 응답한다. 그들의 대답은 공통된 하나의 진리를 이야기할 것 같지만, 그들의 응답은 다양하게 나뉜다. 용서할 권리와 용서받을 권리에 대한 주체, 용서의 의미와 조건, 정의 회복 등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하며, 용서에 대한 다각적 고찰을 이끈다.


물론 시몬의 질문은 화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용서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화해 없는 용서는 어차피 불가능하며, 또 한 일말의 용서조차 없는 화해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용서는 살인자 자신이나 대량학살을 지휘한 자들, 또는 임종의 자리에서 마음 편히 죽고 싶어 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스벤 알칼라이, p.163)
이 세상의 정의라는 팔이, 비록 약하고 무력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장 아메리, p.172)
그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 비극을 잊지 않도록 해 준다. 이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우리는 훗날 다른 사람들을 억울한 죽음으로부터 구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매튜 폭스, p.241-2)
이야기하기를 잊어버리는 것은 과거의 희생자들로부터 그들이 한 행동의 의미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라고 말이다. (마틴 E. 마티, p.358)
지금 한창 선과 악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 또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을 실제보다 더 숭고하게 미화시키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경고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우리는 결코 생존자들에게 도덕적 태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용서하지 않음'이 곧 잔인함이나 타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고통과 슬픔을 치유하고 존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앙드레 스타인, p.429)
만약 우리가 복수만을 위해 정의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용서란 뭔가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 정치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용서가 없다면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데스먼드 투투, p.454)


역사책이면서 철학책이고 동시에 많은 종교적 질문을 던지는 책. 그 어떤 범죄도 뉘우치기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가? 한 개인이 수많은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시몬 비젠탈 지음 | 박중서 옮김 | 뜨인돌출판사, 2019
분야/페이지 | 인문 > 교양 / 472쪽
#홀로코스트 #나치전범 #용서

책계정 | @boi_w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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