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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Sep 06. 2022

<책 리뷰> 울분


필립 로스 (1933~2018)



1933년 미국의 폴란드계 유대인 출신의 미국 현대 영미문학의 거장

유대인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와 허구를 넘나드는 작품 스타일로 미국의 중산층 유대인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유대인의 문제를 미국 현대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해 조망했다고 평가받는다. 


필립 로스가 75세에 발표한 미국 소설 울분 <indignation>은 시작은 

1950년 6월 25일 소련과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지원으로 무장한 북한의 정예 사단들이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들어가면서 한국전쟁의 고통이 시작되었고,....

예기치 못한 6.25 전쟁으로 시작된 소설은 왠지 시작부터 불길한 기운이 가득했다. 

한국전에 참전하여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마커스가 모르핀을 맞고 가사상태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는 형식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전쟁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아버지,

피와 칼로 삶을 꾸려가는 아버지의 삶에서 멀어지기 위해 전력투구하던 아들 마커스,

이들의 울분은 긴 시간을 흘러, 태평양을 건너 내게도 전해졌다.


유대인 정육점 집 외아들로 자란 마커스는 전 과목에서 A를 받고 대학에 진학한 모범생이었다.

대학 입학 전 7개월 동안 아버지를 도와 정육점 일도 착실히 배운 어디든 자랑할 만한 아들이었다.

미국에서 유대계를 위해 정결한 고기만 파는 정육점 아들 마커스에게는 유대계 출신이란 점과 가난은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그러나 피와 함께 자란 마커스는 피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버지 역시 자신을 뛰어넘어 더 큰 세상에서 우뚝 설 수 있도록 염원하고 마커스 역시 기대에 부응하는 건실한 청년으로 자란다.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으로, 비주류 이방인으로 삶을 꾸려야 했던 마커스의 아버지가 으뜸으로 여기는 덕목은 근면이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주인공 마커스는 로버트 트리트 대학에 입학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전쟁에 끌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잠식당했다.


인생이 그래서 그래. 발을 아주 조금만 잘못 디뎌도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아버지의 통제와 간섭과 구속과 억압으로 갈등이 걷잡을 수 없자

마커스는 800km 떨어진 와인스버그 대학으로 편입하여 멀리 떠난다.


기독교 계통 와인스버그에서의 대학생활은 혼란과 불안 그 자체였다.

법률가를 꿈꾸며 학업에 매진하고 싶었지만, 4차원 룸메이트와의 충돌, 첫사랑 올리비아 허턴의 개방적이고 대담한 성적 표현에 대한 후폭풍까지.


무엇보다도 권위적이고 독실한 기독교 교인인 학장에게 무신론자 버트런트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의 주장을 인용하며 종교에 관한 설전을 벌였고, 채플 수업 거부라는 관습의 탈피를 외친 마커스는 학교에서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고 만다. 관습과 권위에 도발한 죄로 한국전쟁에 징집되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지성의 옷을 살짝 걸친 채, 자유의 날개가 막 깃든 여물지 않은 청춘의 시간은 불안하고 불운했다.

경험하지 않았기에 미숙하고, 처음 겪는 일들에 열광하고, 내 생각과 다른 세상에 도전하는 것이 청춘의 특권이다.

그러나, 공고히 다져진 보수적인 세상에 반항하는 젊음에게 관용 따위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 세대 간의 갈등은 지금도 유효하다. 색깔과 무늬만 다를 뿐.

혁명과 전쟁으로 변화한 듯한 세상은 여전히 또 다른 갈등과 분열로 들끓고 있다.


이 소설 전체를 감도는 감정은 제목의 [울분]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괴로움과 고통이 느껴진다.

한 개인의 울분만이 아닌 시대에 대한 울분이었다. 


룸메이트와의 갈등, 종교의 자유, 이성 교제 이런 청춘의 필수 요소들의 일탈이 바로 전쟁터로 내쳐져야 하는 명목이었다니 마커스 아버지의 걱정이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거대한 헤게모니의 회오리 틈에서 이역만리 멀리 떨어진 한국전에서 무참히 희생된 마커스의 짧은 인생에 겹쳐지는 인물이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 [엄마의 말뚝]에서 작가의 어머니가 아들을 6.25 전쟁통에 잃고 평생 가슴속에 고통을 숨기고 살다 죽음을 앞두고 의식이 혼미해질 때서야 아들이 죽던 순간을 떠올리며 절규하는 장면이었다.


개인사와 시대의 역사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전쟁과 혁명과 같은 혼란의 시절에 희생된 넋들에게 미안함에 가슴이 먹먹했다.

모두가 원하는 전쟁은 이 세상에 없다. 또한 개인의 희생 없는 전쟁 또한 없다.


마커스와 마커스의 부모님, 박완서의 오빠와 어머님... 이 같은 많은 분들의 희생과 울분 위에 세워진 지금의 시대를 투덜거리며 사는 소시민으로서 한없이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필립 로스 작품은 처음이었다. 깊은 내공과 세련됨이 돋보였다. 

짧은 분량으로, 개인의 개인적인 이야기 안에 어우러진 층층이 묵직한 이야기를 풀어내어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했다.

앞으로 작품을 더 읽어가면서 그의 작품 세계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또한 필립 로스 작품을 거의 번역하셨다는 정영목 교수님의 번역은 찰떡같이 읽히는 맛이 있었다.

진심으로 작가를 애정 한다는 느낌이 행간 사이사이 느껴졌다.


제 생각에 아마 필립 로스는 각 개인의 삶, 그들이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더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가 필립 로스를 좋아하게 된 건, 자기가 처한 상황을 알고 이해하려 하면서 작품을 쓰는 작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필립 로스를 보면 그것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철저하게 밀고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마치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듯이 쫓아가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잔인할 정도로 가차 없이 메스를 들이대는 거죠. 그런 철저함 단호함 냉혹함 같은 것들이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영목 번역가의 인터뷰 중


       

영화 인디그네이션


내게 청춘이었던 시절을 말하라고 하면 떠오르는 한 장면은 22살 여름 지리산이다. 

우리는 2박3일 야영코스로 노고단에서 찬왕봉까지 40km 종주를 계획했다. 

지리산은 우리의 젊음을 환대했고, 우리는 비명과 환호로 지리산에게 응답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예기치 못한 집중호우로 대피소에 고립되었다.

기약 없이 대피 중이던 우리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중산리 계곡을 타고 하산을 감행했다.

당시에는 하루가 될지 이틀이 될지 모르는 막연한 기다림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불어나는 계곡물에 쓸려내려 오다시피 한 위험천만한 무모함이었다.


지리산 국립공원 입구석 앞에서 흠뻑 젖은 채 비닐을 뒤집어쓰고 그 주위에 계신 어른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걱정 어린 눈빛으로 염려해주신 그분의 눈에는 젊음에 기대어 날뛰던 철없는 요즘 것들이었을 것이다.


책을 다 읽었을 때 느닷없이 떠오른 나의 젊은 날,

그 젊은 날의 객기가 간간히 그리웠는데, 마커스를 생각하니 그 무모함이 사정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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