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잦네요? 라는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이 글은 "또 퇴사해?","퇴사가 잦으시네요", "어딜가나 다 비슷해" 등의 말을 듣곤 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연대와 응원의 글이자,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퇴사도 경쟁력이다.
그렇다 나는 벌써 7번째 퇴사이다.
퇴사를 할 때마다 모아둔 돈 많냐, 정해둔 게 없이 나가는 거 안 불안하냐, 넌 자유로워 보여서 부럽다 등등의 얘기를 듣는다. 모두 사실이 아니다. 모아둔 돈 많지 않고, 안 불안하지 않고 당연히 불안하다, '자유롭다'의 정의가 서로 다르겠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유롭고 싶어서, 불안하지 않아서, 돈이 필요없어서 퇴사한 건 아니다.
퇴사할 때마다 항상 더 나은 이직을 했고, 여러 회사를 경험하면서 좋은 점이 많다.
내가 N번째 퇴사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장점은 이런 것들이 있다.
일하다 보면 관성에 젖을 때가 있다. 그 지속성이 어쩔 때는 편안함, 어쩔 때는 권태로움, 어느 날은 '정체'로 다가온다. 한 회사에 오래다니면 아무래도 comfort zone에 머물게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일 외에 개인사 (결혼, 이사, 취미 등등) 가 겹치면 예측 가능한 comfort zone이 고마울 때가 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대치, 스스로 설정한 기대치가 없거나 낮기 때문에 컴포트 존에서는 인생이 편하다. 그걸 벗어나는 건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매일의 업무도 예측 가능하고, 매 주제도 회의도 별 탈 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 comfort zone이 '편안함' 으로 느껴지다가 어느 순간 다른 양상의 '불안'으로 다가왔다. 1년뒤에도 이 상태라면,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그래서 소속된 회사에서 다양한 시도와 제안을 했지만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두의 comfort zone 이 유지되는 거겠지. 떠나기로 결심한 사람은 꽤나 큰 용기를 낸 것이다.
수년간 일하면서 깨달은 건 '나는 한 번에 하나의 일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 이라는 거다. 재직하면서 이직준비를 시도한 적은 있지만 단 한번도 어딘가 합격하고 이직한 적은 없다. 현재 맡고 있는 일과 고민하는 서비스가 머리에 가득차서 다음 행보라던가, 다른 회사에 대한 공부를 원하는 만큼 하기 어려웠다.
우선 맡은 일을 정리하고 퇴사했고,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들여서 이직을 준비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도피성 혹은 무비판적 이직이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서 하나씩 질문할 수 있었다. 1) 일을 해야 하는가? 2) 이 일을 해야 하는가? 3) 어떤 규모/산업군/역할에서 일을 할 것인가 4) 나는 그 역할에 적합한 사람이 맞나? 혹은 그 회사도 나를 적합한 사람으로 볼 것인가? 5) 내 입장과 나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어떻게 전달될까? 등등..
본업과 병행할 때 보다 깊이있게 나의 욕구, 재능, 경험을 돌아보기도 하고, 어떻게 비춰질지, 밥 값할 수 있는 지를 고민하며 진지하게 다음 여정을 기획할 수 있었다.
커리어 초반을 떠올려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겠다고 계획하거나 다짐한 적은 없다. 돌이켜보니 다양한 산업군, 규모, 형태로 일해왔다. 내 경험상 한 곳에서 10년을 일하는 것보다 2년씩 5곳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더 넓은 관점을 갖게 하고, 유연하게 사고하게 되고, 겸손해지게 한다. 이 곳에서 정답이었던 것이 옮긴 곳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일하기도 하고, 이 방법이 최선이었는데 다른 방법이 있기도 했다. 업무 체계 혹은 비지니스 접근성 혹은 협업하는 사람들의 특징 등등 모든 것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한국에서 '다양성'의 가치가 평가절하된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한 회사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성' 보다 다른 회사를 여럿 다님으로써 겪은 '다양성'이 주는 배움이 컸다. 아는 것을 무너뜨리고, 또 다른 방법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음은 확신한다. 한 회사에 오래 다녔다면 (그럴 수 없을 것 같긴 한데) 하나의 방법/경험/정답에 고착된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번 이직을 하고, 승진을 하기도 하고 직무가 바뀌기도 했다. 매 변화의 과정에서 설레기도 하고 당연히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지난 시간들을 복기해보면 잘하고 싶은 욕심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끝없이 불어넣으며 성장해왔다. 사실 스스로도 '나 또 어떡하려고 퇴사했지', '난 끈기가 없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니까 늘 긍정적이진 않았고 자책하고 의심하면서도 노력만을 믿으며 어째저째 일해온거다.
커리어를 처음 시작하던 10년 전에는 퇴사하면 진짜 인생 망하는 줄 알았고, 나만 적응 못한 낙오자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보니 그 누가 함부로 조언하고 평가해도 나는 용기를 냈고, 내 선택에 대해 온전히 내가 다 책임졌다. 그래서 이번 퇴사는 그렇게까지 겁나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내가 책임질 수 있다고 믿고, 그 길을 벗어났을 때에는 또 다른 풍광이 있다는 걸,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다.
이건 여러번 퇴사해봐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쌓인 것이다. 그리고 '실력'은 의지하던 여러 조건을 떠나봐야 비로소 드러난다.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는 지 알 수 있다.' 는 워런 버핏의 말 처럼. 회사를 떠나보면 내가 무엇을 잘하는 지, 얼마나 잘하는 지, 그리고 무엇을 못하는 지, 싫어하는 지 선명하게 알 수 있다. 그건 단순히 '다음 회사'를 위한 앎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수영장 물이 빠지는 게 두렵지 않다.
자주 이직하는 사람들이 가진 강점.
'자주 이직한 걸 나중에 설명하느라 애 먹을거야' 라는 말을 최근에도 들었다. 일하는 형태/관계/구조가 정말 많이 바뀌고 있는 요즘이다. 장기 근속이 무조건적 미덕이 아닌 시대이다. 버티는 게 정답이 아닐 때가 있다. 도전하고,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이직한 사람들에 대해 '못 버티는' 혹은 '도망친/도망갈' 사람이라는 프레임 대신 그들의 용기/새로운 배움/신선한 관점 등을 봐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