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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Studio Bleu May 22. 2021

더 레이디

Dear My Friend


<< 마야씨에게 >>


<< The Lady, (2011년, 프랑스, 영국) >>


안녕하세요, 마야씨.

오랜만에 편지를 보내요.


한국은 점점 더워지고 있답니다.

그곳 날씨는 어떤가요?


아마도 그 어느 때보다

덥고 긴 한 해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해요.


우리가 중국 광저우 전시회에서 만난지도 벌써 4년이 되어가요. 저는 요즘에 부쩍 광저우의 그 날이 생각납니다.


아마도 뉴스에 계속 나오던

마야씨의 나라 이야기 때문일 거 같아요.


얼마 전,

무서운 군부를 상대로 당신의 나라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지도 벌써 1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뉴스를 보았답니다.


저는 기사를 보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어요.

오늘 그곳의 봄날은 어떤 색깔일지 말이에요.


4년 전 그 날이 생각나세요?


광저우의 바쁜 일정 마지막 날,

무슨 마음에선지 전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던 저의 눈에 마야씨가 있던 작은 부스가 눈에 들어왔답니다.

오늘에서야 처음 말씀드리지만,

여러 나라의 커다란 전시부스들을 보다가,

마야씨의 부스를 보면서 조금 걱정을 했었더랬죠.


아무리 좋은 가게도 자리가 좋지 않으면,

음... 글쎄요?


하지만,

마야씨와 어머니의 환대를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곤 저는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답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모습이지만,

마야씨의 나라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 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순박한 당신들의 모습과.

희망이 차서 이야기하던 마야씨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당신 나라의 희망을 보였답니다.

전시회에서 방문한 마야씨의 부스에서...  안전을 위해(저를 포함하여^^;;) 얼굴은 가림 처리하였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참을 미루며 보지 못했던 영화를 꺼내어 보았어요.

<The Lady> 라는 영화였죠.

그리고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답니다.


이 영화를 마야씨를 만나기 전에 보았다면,

우리들의 대화가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니 말이에요.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왜 이 영화를 계속 보지 않고 있었지?'


이 영화의 감독은 무려 '뤽 베송' 이거든요.

거기다가 양자경, 데이빗 듈리스, 윌리엄 호프, 베네딕트 웡.... 영화를 보다 보면 어디선가 만났을 유명한 배우들이 총출동해 있죠.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선뜻 선택하지 못했던 이유는, 너무나도 생소한..., 그래서 관심 밖이었던 나라 '미얀마' 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일 거예요.


이야기는 단순한 플롯을 따라갑니다.

한 여성에 대한 일대기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요.


영화 처음은 아버지 아웅산 장군의 팔에 안겨

이야기를 듣는 어린 수지 여사의 모습이 보입니다.


호랑이와 코끼리가 사는 나라,

오랜 전설 속의 나라의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아버지 아웅산 장군과 어린 수지여사, 이야기 속의 미얀마는 호랑이와 코끼리가 사는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비극적인 이야기가 등장해요.

미얀마의 독립을 주도하던 실질적인 구심점인 아웅산 장군이 테러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합니다.


불과 4명의 군인들.


지금도 의혹만 가득한 소수의 범인들이 독립 이후를 준비하고 있던 아웅산과 일행들을 습격하였고, 그렇게 독립을 위해 영국과 일본 사이를 넘나들며, 헌신적으로 일했던 영웅이 쓰러지고 말아요.


소수 군인들의 습격으로 미얀마 독립의 영웅은 쓰러지고 맙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미얀마는 어떤 모습일까요?


언젠가 제가 SNS로

마야씨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기억나나요?


저는 아웅산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김구' 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가 떠오른답니다.

.

그분도 젊은 나이에 대담하게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고집스럽게 잃어버린 나라를 사랑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기에 결국 암살당하고 말았어요.


김구의 죽음으로 대한민국이 큰 혼란에 휩싸였듯이,

아웅산의 죽음으로 미얀마 역시 오랜 분열과 군부통치를 겪게 되죠.


어쩌면 우리는 평행한 두 역사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영국에서 돌아온 수지여사
그녀의 눈에 군부 통치에 신음하는 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시간이 흘러 영화는

영국에서 돌아온 수지여사를 보여줍니다.


호랑이의 딸,

아버지 '아웅산' 의 이름을 물려받은 유일한 혈육.


사람들은 그녀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기대하고,

오랫동안 국민들을 억압했던 군부는 다시 돌아온 그녀를 보며 긴장합니다.


병원 창 밖에서 들리던

시끄러운 소리에 이끌려 문 밖으로 나서는 그녀.


그런 그녀의 눈에는 전설 속의 호랑이와 코끼리가 사는 신비로운 미얀마의 모습이 아닌, 거리에서 저항하다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시위가 이어지자 군인들이 투입되고,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저는 지금의 미얀마 모습을 보면서,

영화에 모습들이 계속 오버랩이 되어요.


사람들이 모여서 불의함에 항거하고,

두려워하는 지배층이 힘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억압합니다.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고,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가죠.


마야씨,

영화 속의 미얀마의 모습은 지금과 너무 닮아 있어요. 끝나지 않은 미얀마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


라는 말이 맞을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따르려는 민주주의는 얼마나 많은 피를 필요로 하는 걸까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라는 말은 어떤가요?


그렇게 탄생한 정권들이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무시무시한 집단으로 변질되고 몰락한 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우리가 믿는 신념을 힘없이 지킨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신념을 가질 힘을 얻었을 때,

처음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들에겐

여전히 힘든 이야기여야 할까요?



무자비한 군인들은 병원으로 난입합니다.
사람들은 끌려나가고.....
저항하던 정의로운 사람들은 살해당합니다.


공포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이들에게

자비라는 선택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들 역시,

무자비한 군인들의 손에 끌려나가고,

이를 막기 위해 저항하던 양심있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살해당합니다.


처음 랑군에서 총성이 울렸을 때,

걱정하는 마음으로 SNS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저에게 돌아온 마야씨의 첫 대답은 '무섭다' 는 말이었어요.


'군인들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세상이 미쳐버린 것 같다고.'


마야씨가 노련한 정치가처럼,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라거나, '민주주의는 시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 같은 말을 했다면, 저는 그냥 웃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마야씨가 말하던 '무섭다' 는 단어 한 마디가 저에게는 진솔하게 와닿았답니다.


그 한마디처럼 간단하게,

지금의 이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저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지금 당장,

길을 다니다 위험을 맞이할 수도 있을 당신들에게,


'죽음' 이라는 단어는 눈 앞의 현실이고,

'자유' '민주주의' 라는 단어는 너무나 멀게 느껴질 것 같은.... 그런 생각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감히 마야씨에게

우리가 겪었던 여러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

선생님이 용기를 주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미얀마의 시민들이 겪고 있는 두려움은 현재이고,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고통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대한민국의 그 시절 보다 미얀마는 덜 아프고 희생 없이, 모두가 바라는 자유로운 삶을 얻기를...  하는 바램이 든답니다..



언제까지 우리는 지켜보아야만 할까요?


UN에서 미얀마의 일을 논의하던 날,

마야씨와의 대화를 잊을 수 없어요.


"UN 이 우리를 버리지 않을거예요.

  분명 다른 국가들이 우리를 도와주겠죠?"


라고 희망 섞인 메시지로

저에게 말하던 모습 말이에요.


그리고, 아무런 성과 없이 논의가 끝나던 날.

마야씨가 보이던 실망과 분노 역시 잊을 수가 없었답니다.


미얀마 시내에서 회의를 보이콧하던 중국의 기업체들은 불타올랐고, 선량하던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를 무장하기 시작했죠.


벌써 8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자유를 외치다가 사라졌다고 해요.


그들 중에는 학생도 있고,

어린아이와 여성들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UN 의 도움을 바라는 마야씨의 기대를 들으면서,

저는 얼마 전 들었던 수업이 생각이 났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성이란 단어를 믿으며 정해놓은, <국제법> 이라는 이름의 약속에 따른다면, 미얀마에게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답니다.


외부의 침입에 대항하여 수행하는 전쟁,

UN 이 결의한 전쟁,

그리고,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 행위에 대한 전쟁.


미얀마를 위해 총을들고 국제사회가 들어갈 수 있을 조건이예요. 이것이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랍니다.


무미건조한 여러 텍스트들 아무리 찾아봐도,

UN 의 몇몇 나라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미얀마가 지금 도움받기는 힘들어 보여요...


철저하게 국내 문제라고 규정된 미얀마의 항쟁은 이제, 135 민족 이라고 규정되는 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들의 복잡한 입장들에 엮여선, 내전으로 번지면서 해결하기 힘들게 변하고 있답니다.



1991년 국제사회는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지지를 보냅니다.


1991년 국제사회는 그녀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상합니다.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에 상징적으로 지지를 보낸 샘이었죠.


그리고,

그녀의 오랜 가택연금 역시 풀리게 됩니다

.

떠나가는 군인들 사이로...,

오랜 기간 그녀를 지켜보던 한 군인이 손짓합니다.


떠나가는 군인들은 의미심장한 제스처를 남기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들의 민주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계속해서 지켜보겠다.'


스크린으로 손가락을 겨누던 그의 모습이,

마치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머릿속에 남았답니다.


민주주의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여린 존재임을,


그래서 이루어낸 만큼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이 한 장면에서 저는 깨달을 수 있었답니다.


슬프지만 영화의 복선은 현실이 되었고

2021년 봄, 미얀마는 다시 군인들의 통치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언젠가 마야씨가 저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죠?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말이에요.


'30년?' 


이라고 저는 대답했었답니다.

하지만 사실 반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민주주의' 의 비슷한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아직도 민주주의의 진짜 모습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답니다.


쿠데타가 일어나던 날 아침,

도로를 질주하는 장갑차와 군인들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고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도와줄 수 없다면..., 우리가 만든 수많은 국제기구들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리고, 인간의 선함을 믿고 만든 <국제법> 과 그 많은 조약들은 또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띤짠 물축제, 미얀마의 전통축제입니다. 마야씨의 홈페이지에서


4월은 띤잔 축제가 있는 달이에요.


오래전 마야씨가 공유해준 아름다운 축제의 풍경 사진들을 보면서, 띤잔때의 미얀마를 꼭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마야씨가 저에게 설명해준 띤잔의 의미는

오랜 것, 나쁜 것들을 정화하고

새로움을 맞이하는 의식이라고 했답니다.


국제사회가 미얀마를 돕지 못할 수도 있다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이제 많은 미얀마의 시민들이 조금씩 충격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지킬 무기들을 들고 저항하고 있어요.


그리고,

총을 들지 않은 시민들은 핸드폰을 들곤

실시간으로 군부의 악행들을 전 세계로 알리고 있죠.


올해의 축제는 열리진 못하겠지만,

마야씨가 말해준 띤잔의 의미처럼,


많은 군인들이 저지른 악행들은 정화되고,

자유를 찾기 위해 행동에 나선 미얀마의 시민들의 무용담이 대대손손 전해질, 그런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해요.

 

저는 아직도 믿고 있답니다.

제가 예전 광저우의 작은 부스에서 느꼈듯,

미얀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시간' 임을 말이에요.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마야씨의 나라는 이런 '용기' 를 가지고 있어요.
자유라는 열매를 쟁취해본 사람들은 노예의 삶을 살 수 없답니다.


부처님이 오신 날에 생각해 봅니다.


수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모여서 부처님이 모셔진

쉐다곤 파고다 앞에 모여 '민주주의' 를 외치던 영화 속의 그 모습을 말이에요.


마야씨,

마야씨 나라의 사람들은

이미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어요.

자유의 소중함을 맛본 사람들은 또다시

노예의 삶으로 돌아갈 순 없답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시간이라는 강에 발을 담그고 있는 우리가, 인연이라는 그물에 걸려 만나고 다시 또 헤어짐을 반복하듯,


이 어려운 시간은 연기처럼 지나가고,

아름다운 미얀마의 땅 위로, 전설 속의 코끼리와 호랑이가 다시 노니는 그런 날이 다시 오기를 바래요.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면,

같이 모여 미얀마 시민들의 승리를 축하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향을 피우고 불탑을 돌며,

신비로운 삶이 선물해 재회라는 이벤트에 같이 기뻐하겠지요.


그 날이 올 때까지,

마야씨. 언제나 건강하고 안전하시길.....

모두가 자유로울 그 날까지

* 글 속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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