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그런 것

변화하는 중국에서 산다는 것

by Le Studio Bleu

<< 마지막 날 >>


도시 한편에 위치한 조용하던 공원 풍경, 수저우는 이런 작은 공원들이 많다.


수저우에서 마지막 날,

나는 체크아웃 준비를 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그전에 택시비 영수증을 들고 프런트에 가서 이야기를 했다. 도착 때부터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제가 기차역에서 여기까지

택시를 타고 왔어요."


"네."


프런트에 있는 직원들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 금액이 나올 수 있나요?"


"수저우 역에서 왔단 말이죠?"'


"네"


수저우 역과 시내의 거리는 가깝다.

아담한 사이즈의 이 동내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금액이 3만 원가량이 나왔다.


여행책의 지도로 봤을 때 이렇게나 10분도 안 걸릴 가까운 거리인데.., 사기를 당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상한게 맞네요.

여기로 전화해 보세요."


친절한 직원들 같으니,

관광택시 신고센터의 번호를 알려준 것이었다.


나는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불량택시 신고센터에 기사님을 고발했다!


어떻게 그렇게 순진한 얼굴로 말야,

사기를 치고 말이지!

사람 잘못 봤어~

내가 중국 돌아다녀봐서 아는데 말이지!


자유여행을 다니면 가끔씩 이렇게 필요 없는 일들로 감정소모가 있기도 하다. 이럴 땐 똑 부러지게 이야기해야 한다.



<< 내가 다 아는데! >>



수저우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도시 외곽에 위치한 가이드북에 나온 절로 가보기로 했다. 호수 위에 있는 다리를 지나서 경내로 들어갔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잔잔한 물결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곳에 오는 길이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절 안을 가득 매운 연기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서호 게스트 하우스에서 쫓겨났던 기억,

기차표 사려고 고생스럽던 기억,

저녁 기차에서 마늘빵 먹으며 쪽잠 자던 기억,

그 기차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간 기억,

정원에서 사자를 찾지 못해 황당해하던 기억,

길 위에 불쌍한 가마우지들 (응?)


이제 여행의 마지막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홀가분해진다.


"회사에 관리부 남자들하곤 연애하지마."


영수증을 보다가 갑자기 예전 병아리 사원 시절,

순하디 순한 J형이 푸념 섞인 목소리로 여직원들에게 우스개 소리로 하던 말이 생각났다.


맞다,

나도 동의한다.


숫자를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예민하기도 하고

음....약간은 ㅈㄹ 맞기도 하다.


그런 ㅈㄹ 맞은 사람이 되기싫어 나왔는데,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 택시기사님을

그냥 놔둘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바가지 쓴 돈의 금액 보다도,

'감히 나를 속여?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말야!'

하는 괘씸한 마음이 더 컸기에 화가 났던 건데...


여기서의 나의 소득에 비하면,

사기당한 돈은 푼돈이기도 하다.


내가 그렇게 마음 좋은 적선가는 아니지만

이게 이렇게 열내가며 싸울 일일까?


불당 앞에 서서 향냄새를 맡으니

수십 가지 생각이 들어왔다..


만수무강과 돈 잘 벌기를 바라는 모습들, 사람 사는 곳 모습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 ^^


경내를 구경하다가

공원처럼 꾸며진 공간의 벤치에 앉았다.

사람들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소원빌기에 여념이 없다.


맞은 편에는 나이 답지 않게 기품 있어 보이시는

할머니 두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언제나 큰 목소리로 사납게 이야기하는 여성분들만 보았던 탓인지, 톤 하나만 낮아져도 중국어가 저렇게 기품 있게 들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연륜에 맞는 몸가짐이 필요한가 보다)


갑자기 전화기 벨이 올렸다.


모르는 번호...

끊을까 하다가 왠지 오전에 신고한 택시 건과 관련이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화를 조심 스래 받았다.


"웨이?(누구세요?)"


"아,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택시 기삽니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아니 신고를 하면 알아서 처리해주면 될 것을 당사자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면 어떡하냐. 나는 약간 소리를 높여 이야기했다.


"저한테 왜 요금 높게 받으셨어요?

제가 다른 도시에서 왔다고 속이신 거예요?"


"아니 선생님, 제 이야기 들어보세요.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제가 아침 호텔 프런트에도 확인했어요,

그 요금 나올 수 없다고 하더군요. 외국인인 제가

여기까지 와서 바가지나 써야 해요?”


"아니, 선생님. 그 영수증 다시 한번 봐주시구요..."


"됐어요, 제가 중국 다녀봐서 아는데!

기사님 같은 분들 다 하시는 말이 똑같아요.!"


"아니, 선생님..."


나는 그만 말씀드리겠다고 하곤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런 나의 모습을 살짝살짝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두 기품 있는 여사님들은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란도란 거리는 대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저기 저 외국인 여기서 사기 당했나봐."


"중국이 그렇지 뭐. 사람이 많아서 그래."


나는 왠지 내편이 생긴 것 같아 우쭐해졌다.

무심한 듯 두 분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어 귀를 쫑긋 세워 들어보았다.


두 분은 조금은 무서운 정치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당시 '보시라이' 라고 하는 중경시에 시장님이 밑에 사람 관리를 잘못해서, 나라가 뒤집힐 정도로 크게 떠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밑에 있던 오른팔 노릇을 하던 사람이 비리 자료를 가지고 미국으로 망명하려 했었다.


이걸 또 잡겠다고 경찰들을 풀어서

그가 도망간 미국 영사관을 포위해 버리고,

이걸 또 막겠다고 중앙에서 경찰들이 출동해

그들을 다시 포위하고... 아무튼.


그 일로 유력하던 정치인은 낙마했고,

권력 암투에 밀려 지금까지도 감방에 가셔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계신다.


"그 사람 인물도 멀쩡하고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뒷 돈을 그렇게 많이 챙겼나봐."


"중국이 그렇지 뭐,

어디 그 사람만 그랬겠어,

이놈이나 저놈이나 정치하는 놈들은 똑같아.

다들 그렇게 해 먹었는데 꼬투리가 잡힌 거지."


말 끝마다 '중국이 그렇지 뭐'라고 하는

여사님들의 대화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나라 사람들의 정치를 대하는 방식은 약간은 냉소적이다.


정치란 어차피 '최선' 은 없으니,

'최악' 을 피하기 위해선 '차악' 이라도 인정한다는 걸까?


왠지 그 공식에 우리도

예외일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역시 사람은 다녀봐야 해.

나도 이젠 싸울 줄도 알고, 나도 이 나라에 대해 적응이 된 걸까?


시내로 돌아와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 넉넉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택시를 타고 까오티에(고속철) 역으로 가주세요 라고 말했다.


택시가 신나게 시내를 가로질러 한참을 달린다.


'어? 왜 시외로 멀리 나가지?'


나는 다급하게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본다.


"아니 아니, 내가 책을 봐서 아는데,

아저씨 지금 돌아가는 거 아니에요?"


택시기사 아저씨는 길가에 차를 세우곤 나에게 기차표를 보여달라고 한다. 손으로 받아본 아저씨는 다시 표를 돌려주곤 시동을 걸고 계속 운전을 한다.


"이 방향이 맞아요."


뭐야?

나는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를 꺼내 보여주며

기사 아저씨에게 이야기한다.


"여기 이거 보세요,

여기 보면 기차역이 시내 바로 근처에...."


"손님,

수저우에 신역이 생긴 지가 언젠데,

옛날 기차역 이야기를 해요?"


"?"


세상에나.... 예전 데이터가 필요 없는 나라 같으니....


기사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앞만 보며 차를 몰았고,

30여 분의 시간을 달려 정말 아슬아슬하게 나는 기차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세상에나.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중국에서 최신 가이드북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나 혼자 다 안다고 깝치니 또 이런 일이 생기지.


그놈의 말, 말, 말...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다녀봐서 아는데,

내가 다 아는데,

... ‘


고속철을 겨우 타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한 번 돌아보라고

이렇게 고생을 시키며 가르쳐주고 있는 것,


'성급함', '부주의함', '오만한 마음'....


이번 여행은 나에게 미숙한 모든 것을 보여주곤,

아직도 한참은 멀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왠지 이번 여행은 기억에 오래 남을것 같다.

나는 공원에서 만났던 여사님들이 생각났다.


중국이 그렇지 뭐.


내가 아무리 다녀본들 이 커다란 나라의 모습을 온전히 알 수 있을까? 잠깐 내가 중국 전문가라 생각했던 오만한 마음 같으니...


플랫폼에서 기차를 타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 예전엔 휑한 땅들이 고속철도역이 되어 벼렸다.
수저우 역이 아닌, 수저우북 역~ 한 농민공 아저씨가 고속철을 보고 있었다.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오전에 통화했던 기사님의 번호를 눌렀다.

짧은 신호음들이 들려왔다,.


아....

다 안다고 우쭐하는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리는 것.


여행이 그렇지 뭐,

인생도 그렇지 뭐


《 수저우 북역, 플랫폼 위에서 》